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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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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공화국(Republic of Honduras)
온두라스(스페인어: República de Honduras 레푸블리카 데 온두라스)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테구시갈파, 주민 구성은 메스티소가 다수를 차지하며, 공용어는 스페인어를 다수 사용한다.
===자세한 정보===
면적 : 112,492㎢
인구 : 9,112,867명 (2016년)
수도 : 테구시갈파
대통령 :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GDP : 213억 6,700만 달러 (2016)
1인당 GDP : 2,609 달러 (2016)
화폐단위 : 렘피라(Lempira)
==역사==
온두라스는 마야 문명의 영향권의 동쪽 끝으로 코판 등에서 1500년이 넘은 마야 유적지가 발견된다. 그리고 동부의 황량한 평원 지대엔 여러 부족이 살았다. 16세기 콜럼버스가 온두라스에 도착한 이래 스페인의 침략을 받았다. 렝카 족의 렘피라 등이 강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식민지가 되었다.
온두라스의 수도는 처음엔 온두라스 북부 해안의 트루히요였으나 코마야과를 거쳐 남부 고원의 테구시갈파로 옮겨 갔다. 스페인 식민 시기 동안 온두라스는 자원도 부족하고 인구도 적어 낙후되어 있었으며, 그나마 은을 캐서 경제가 유지되었다. 한편 영국은 동부의 모스키토모기 족의 지원으로 동부 해안을 점거하고 목재를 가져갔다.
19세기부터 중남미 곳곳에서 엘리트층이 주도한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1821년 온두라스는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을 선언해 1823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로스알토스[1]와 함께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중미 연방은 20년도 못 버텼지만 그 동안 무려 18명의 국가원수가 재임하는 등 혼란상을 보이다 1838년 온두라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비슷한 시기 와해되었다.
독립 이후에도 온두라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1876년까지 82명이 권력을 잡았고 수백 건의 내란이 발생했다. 1876년 이후에도 혼란상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나 온두라스는 근대화를 추진하고 바나나 농장과 광산을 외국에 개방했다. 외국 바나나 회사는 나중엔 철도 부설권까지 따냈고, 정권에 붙어 타 산업을 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두라스는 바나나 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바나나 회사 외에 미국도 온두라스에 개입했으며 내부적으로 혼란이 심해 20세기 초반만 해도 159번의 반란과 18회의 정권 교체가 이어졌다. 1930년대엔 안디노의 군사 독재가 이어지다 물러났고 민간 정부가 세워졌지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다. 한편 온두라스의 이웃나라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 면적의 5분의 1에 불과한 소국이었으나 인구는 서로 비슷했는데, 땅이 부족한 엘살바도르인들은 일을 찾아 온두라스로 건너왔다. 온두라스에선 1963년 기업이 외국인을 10% 이상 고용 못 하게 했고 1968년 엘살바도르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했으며, 결국 1969년 갈등 속에 그 유명한 축구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축구전쟁에서 어떻게든 승리한 이후로 토지배분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나며 엘살바도르인이 경작하고 있던 농경지들이 속속 대기업과 부농들에게 들어가는 바람에[2] 정국이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1972년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1981년까지 군부독재는 계속되었으며, 온두라스의 상태는 군부독재 때나 민주화 이후나 이웃나라들과 비슷하게 영 좋지 않았고, 1990년대 이후로 빈부격차도 날이 심화되는 추세이다.[3] 온두라스에 있는 미군기지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 기지로 이용되었는데 당시 오요 대통령은 이들의 온두라스 주둔 금지를 공약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로 온두라스의 정치체제는 우파 국민당과 중도우파 자유당간[4]의 양당제가 지속되었다.[5] 어쨌든 이후로 양당체제가 지속되었고 2005년 대선에서 당선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은 자유당 소속으로 출신성향에 맞지않게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무상교육 제도를 시행하고 형편이 어려운 빈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 등 좌파성향을 보였기에[6] 보수적인 언론과 충돌이 잦아지고 당내에서도 잡음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지지율이 점차적으로 떨어졌고 그 와중에 석유수급을 위해서 미주 볼리바르 연합에 가입하기로 하고[7] 우고 차베스와도 꽤나 절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며 親 우고차베스 성향으로 낙인 찍혔다. 여하간 그렇게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자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2009년에 헌법을 고치는 국민투표를 예정했는데 국민투표를 앞두고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고 미국은 처음엔 이를 비난하다 나중에 이를 승인했다. 군부와 야권 세력은 이것을 헌법 유린으로 트집잡아 쿠데타가 아니라 헌정 질서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여하간 여러 의혹이 있었지만 2009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서 우파인 국민당이 집권했고 총선에서도 국민당이 압승했다.마누알 셀리아는 쫓겨난 상태였지만 2010년에 귀국했고 귀국후에 자유당의 일부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모아서 자유당을 탈당하고 새로운 좌파정당인 자유재건당을 창당했고 국민당도 별다를것 없는 모습을 보이며 2013년 대선에서 국민당이 재집권했지만 득표율이 36%에 불과한데다가, 총선에서는 국민당과 자유당의 의석수가 크게 감소했고[8] 자유재건당이 제1야당인으로 등극했기에 일단 정계에서 나름대로 힘을 쓰는 상태이기는 하다. 이후로는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 재선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다가, 빈곤문제 해결에도 실패해서 악평이 많기는 하나, 국정운영 능력이 아주 나쁜건 아닌데다가[9]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야권이 분열된 상태이기 때문에[10]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은 유지하고 있고 그런탓에 법원사유화 논란에도 압도적으로 재선이 예측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여론조사 결과와는 개표결과에서는 살바도르 나스라야[11]야당연합 후보가 5%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것으로 나타나면서 선거 전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정권교체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개표가 완료된다해도 여론조사 기관들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친다면 20대 총선 여론조사급의대 참사가 벌어진 셈이다. 선거전에는 살바도르 나스라야가 참패할것으로 에측되었는데 이게 확 뒤짚힌 셈이니... 여하튼 최종집계에서는 역전에 성공하여 에르난데스 대통령이 재선하는것으로 나왔지만 50% 가까운 표를 얻어 낙승할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대통령 선거에서 간신히 승리한데다가 개표가 1주 가까이 지연되면서 선거부정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상처뿐인 승리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그 동안 에르난데스가 압승할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온 온두라스 여론조사 기관들과 언론들도 신뢰도가 폭락하는 등 후폭풍을 겪고 있으며 개표가 57%진행될 때 선거개표시스템이 멈추다가 수십시간이 지나서야 개표가 재개된데다가 그 이후로 역전까지 일어나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고, 미주기구 참관단이 선거 과정에서 개표시스템에 문제가 있는데다가 외국인 투표참관인들이 선거 과정이나 개표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증언까지 내놓았고 대규모 시위사태까지 일어나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까지 할정도로 정국이 혼미해지고 있다. 정국이 혼란에 빠지고 난 뒤에, 미주기구가 선거과정에서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아 결과가 어떤지 확신할수없다는 보고서까지 나오자 궁지에 몰린 에르난데스 대통령측이 재검표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참관인들이 개표과정이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는판인지라 재검표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미국입장에서는 친미성향의 우파 에르난데스 재선이 호재이며(미군기지의 존속을 선거기간 강력히 주창하였다), 존 켈리는 대놓고 에르난데스를 지지하기 까지 했다. 그렇지만 선거 개표후에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마자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인데 자국민들에게 밖에 나가는걸을 자제하거나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기를 바란다 정도로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 여타 라틴아메라카 국가들 사이에서도 언론들 사이에서나 언급이 되었지 정부차원에서는 그리 잘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고, 오히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언급을 할정도.
재검표 결과는 에르난데스가 여전히 근소한표차로 앞서는것으로 나와서 일단 에르난데스의 재선이 확정되었지만 여러모로 말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나아갈지 불분명하며, 재검표 과정자체도 불분명한것이 많아서 항의시위가 해를 넘겨서 진행되고 있으며 거기에 온두라스 의회에서 부패수사를 막는 법안까지 통과시키며 시위에 불을 끼얹은 모양시다. 하지만 미국이 온두라스 당국을 비호하고 있어서 상황진척은 잘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살인률이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높다. 정말로 매우 높다. 여행갈때 주의바람.
살인(고의 살인. 실수로 죽인 과실치사 제외) 사건 비율이 세계 최고를 달리는 나라. UN 마약 범죄 사무소(UNODC)의 통계에 의하면 2015년에 10만명당 63.75 건의 살인이 발생해서, 1위인 엘살바도르에 이어 2위를 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막장스러운 치안이면 보고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 수 있을 것이다.
살인율에 비해 자살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10만명당 4.2명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경제==
중남미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커피이다.
바나나 역시 매우 유명하다. 기타에 사용되는 목재중에 온두라스산 마호가니를 최상품으로 취급한다. 허나 무분별한 벌목으로 벌목금지 대상이 됐다. 의외로 최저임금 수준은 중미에서 그리 낮지 않은 편이고 엘살바도르보다 높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유명무실하다.
==스포츠==
===축구===
축구전쟁까지 일어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기가 매우 대단하다.
중남미는 대부분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기 때문에...
북중미 중에서는 축구를 꽤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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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File:온두라스.png|400px]] 온두라스 공화국(Republic of Honduras) 온두라스(스페인어: República de Honduras 레푸블리카 데 온두라스)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테구시갈파, 주민 구성은 메스티소가 다수를 차지하며, 공용어는 스페인어를 다수 사용한다. ===자세한 정보=== 면적 : 112,492㎢ 인구 : 9,112,867명 (2016년) 수도 : 테구시갈파 대통령 :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GDP : 213억 6,700만 달러 (2016) 1인당 GDP : 2,609 달러 (2016) 화폐단위 : 렘피라(Lempira) ==역사== 온두라스는 마야 문명의 영향권의 동쪽 끝으로 코판 등에서 1500년이 넘은 마야 유적지가 발견된다. 그리고 동부의 황량한 평원 지대엔 여러 부족이 살았다. 16세기 콜럼버스가 온두라스에 도착한 이래 스페인의 침략을 받았다. 렝카 족의 렘피라 등이 강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식민지가 되었다. 온두라스의 수도는 처음엔 온두라스 북부 해안의 트루히요였으나 코마야과를 거쳐 남부 고원의 테구시갈파로 옮겨 갔다. 스페인 식민 시기 동안 온두라스는 자원도 부족하고 인구도 적어 낙후되어 있었으며, 그나마 은을 캐서 경제가 유지되었다. 한편 영국은 동부의 모스키토모기 족의 지원으로 동부 해안을 점거하고 목재를 가져갔다. 19세기부터 중남미 곳곳에서 엘리트층이 주도한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1821년 온두라스는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을 선언해 1823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로스알토스[1]와 함께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중미 연방은 20년도 못 버텼지만 그 동안 무려 18명의 국가원수가 재임하는 등 혼란상을 보이다 1838년 온두라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비슷한 시기 와해되었다. 독립 이후에도 온두라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1876년까지 82명이 권력을 잡았고 수백 건의 내란이 발생했다. 1876년 이후에도 혼란상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나 온두라스는 근대화를 추진하고 바나나 농장과 광산을 외국에 개방했다. 외국 바나나 회사는 나중엔 철도 부설권까지 따냈고, 정권에 붙어 타 산업을 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두라스는 바나나 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바나나 회사 외에 미국도 온두라스에 개입했으며 내부적으로 혼란이 심해 20세기 초반만 해도 159번의 반란과 18회의 정권 교체가 이어졌다. 1930년대엔 안디노의 군사 독재가 이어지다 물러났고 민간 정부가 세워졌지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다. 한편 온두라스의 이웃나라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 면적의 5분의 1에 불과한 소국이었으나 인구는 서로 비슷했는데, 땅이 부족한 엘살바도르인들은 일을 찾아 온두라스로 건너왔다. 온두라스에선 1963년 기업이 외국인을 10% 이상 고용 못 하게 했고 1968년 엘살바도르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했으며, 결국 1969년 갈등 속에 그 유명한 축구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축구전쟁에서 어떻게든 승리한 이후로 토지배분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나며 엘살바도르인이 경작하고 있던 농경지들이 속속 대기업과 부농들에게 들어가는 바람에[2] 정국이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1972년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1981년까지 군부독재는 계속되었으며, 온두라스의 상태는 군부독재 때나 민주화 이후나 이웃나라들과 비슷하게 영 좋지 않았고, 1990년대 이후로 빈부격차도 날이 심화되는 추세이다.[3] 온두라스에 있는 미군기지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 기지로 이용되었는데 당시 오요 대통령은 이들의 온두라스 주둔 금지를 공약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로 온두라스의 정치체제는 우파 국민당과 중도우파 자유당간[4]의 양당제가 지속되었다.[5] 어쨌든 이후로 양당체제가 지속되었고 2005년 대선에서 당선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은 자유당 소속으로 출신성향에 맞지않게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무상교육 제도를 시행하고 형편이 어려운 빈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 등 좌파성향을 보였기에[6] 보수적인 언론과 충돌이 잦아지고 당내에서도 잡음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지지율이 점차적으로 떨어졌고 그 와중에 석유수급을 위해서 미주 볼리바르 연합에 가입하기로 하고[7] 우고 차베스와도 꽤나 절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며 親 우고차베스 성향으로 낙인 찍혔다. 여하간 그렇게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자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2009년에 헌법을 고치는 국민투표를 예정했는데 국민투표를 앞두고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고 미국은 처음엔 이를 비난하다 나중에 이를 승인했다. 군부와 야권 세력은 이것을 헌법 유린으로 트집잡아 쿠데타가 아니라 헌정 질서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여하간 여러 의혹이 있었지만 2009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서 우파인 국민당이 집권했고 총선에서도 국민당이 압승했다.마누알 셀리아는 쫓겨난 상태였지만 2010년에 귀국했고 귀국후에 자유당의 일부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모아서 자유당을 탈당하고 새로운 좌파정당인 자유재건당을 창당했고 국민당도 별다를것 없는 모습을 보이며 2013년 대선에서 국민당이 재집권했지만 득표율이 36%에 불과한데다가, 총선에서는 국민당과 자유당의 의석수가 크게 감소했고[8] 자유재건당이 제1야당인으로 등극했기에 일단 정계에서 나름대로 힘을 쓰는 상태이기는 하다. 이후로는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 재선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다가, 빈곤문제 해결에도 실패해서 악평이 많기는 하나, 국정운영 능력이 아주 나쁜건 아닌데다가[9]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야권이 분열된 상태이기 때문에[10]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은 유지하고 있고 그런탓에 법원사유화 논란에도 압도적으로 재선이 예측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여론조사 결과와는 개표결과에서는 살바도르 나스라야[11]야당연합 후보가 5%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것으로 나타나면서 선거 전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정권교체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개표가 완료된다해도 여론조사 기관들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친다면 20대 총선 여론조사급의대 참사가 벌어진 셈이다. 선거전에는 살바도르 나스라야가 참패할것으로 에측되었는데 이게 확 뒤짚힌 셈이니... 여하튼 최종집계에서는 역전에 성공하여 에르난데스 대통령이 재선하는것으로 나왔지만 50% 가까운 표를 얻어 낙승할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대통령 선거에서 간신히 승리한데다가 개표가 1주 가까이 지연되면서 선거부정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상처뿐인 승리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그 동안 에르난데스가 압승할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온 온두라스 여론조사 기관들과 언론들도 신뢰도가 폭락하는 등 후폭풍을 겪고 있으며 개표가 57%진행될 때 선거개표시스템이 멈추다가 수십시간이 지나서야 개표가 재개된데다가 그 이후로 역전까지 일어나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고, 미주기구 참관단이 선거 과정에서 개표시스템에 문제가 있는데다가 외국인 투표참관인들이 선거 과정이나 개표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증언까지 내놓았고 대규모 시위사태까지 일어나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까지 할정도로 정국이 혼미해지고 있다. 정국이 혼란에 빠지고 난 뒤에, 미주기구가 선거과정에서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아 결과가 어떤지 확신할수없다는 보고서까지 나오자 궁지에 몰린 에르난데스 대통령측이 재검표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참관인들이 개표과정이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는판인지라 재검표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미국입장에서는 친미성향의 우파 에르난데스 재선이 호재이며(미군기지의 존속을 선거기간 강력히 주창하였다), 존 켈리는 대놓고 에르난데스를 지지하기 까지 했다. 그렇지만 선거 개표후에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마자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인데 자국민들에게 밖에 나가는걸을 자제하거나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기를 바란다 정도로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 여타 라틴아메라카 국가들 사이에서도 언론들 사이에서나 언급이 되었지 정부차원에서는 그리 잘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고, 오히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언급을 할정도. 재검표 결과는 에르난데스가 여전히 근소한표차로 앞서는것으로 나와서 일단 에르난데스의 재선이 확정되었지만 여러모로 말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나아갈지 불분명하며, 재검표 과정자체도 불분명한것이 많아서 항의시위가 해를 넘겨서 진행되고 있으며 거기에 온두라스 의회에서 부패수사를 막는 법안까지 통과시키며 시위에 불을 끼얹은 모양시다. 하지만 미국이 온두라스 당국을 비호하고 있어서 상황진척은 잘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살인률이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높다. 정말로 매우 높다. 여행갈때 주의바람. 살인(고의 살인. 실수로 죽인 과실치사 제외) 사건 비율이 세계 최고를 달리는 나라. UN 마약 범죄 사무소(UNODC)의 통계에 의하면 2015년에 10만명당 63.75 건의 살인이 발생해서, 1위인 엘살바도르에 이어 2위를 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막장스러운 치안이면 보고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 수 있을 것이다. 살인율에 비해 자살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10만명당 4.2명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경제== 중남미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커피이다. 바나나 역시 매우 유명하다. 기타에 사용되는 목재중에 온두라스산 마호가니를 최상품으로 취급한다. 허나 무분별한 벌목으로 벌목금지 대상이 됐다. 의외로 최저임금 수준은 중미에서 그리 낮지 않은 편이고 엘살바도르보다 높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유명무실하다. ==스포츠== ===축구=== 축구전쟁까지 일어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기가 매우 대단하다. 중남미는 대부분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기 때문에... 북중미 중에서는 축구를 꽤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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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소개==', 1 => '[[File:온두라스.png|400px]]', 2 => '온두라스 공화국(Republic of Honduras)', 3 => '', 4 => '온두라스(스페인어: República de Honduras 레푸블리카 데 온두라스)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테구시갈파, 주민 구성은 메스티소가 다수를 차지하며, 공용어는 스페인어를 다수 사용한다.', 5 => '', 6 => '===자세한 정보===', 7 => '면적 : 112,492㎢', 8 => '', 9 => '인구 : 9,112,867명 (2016년)', 10 => '', 11 => '수도 : 테구시갈파', 12 => '', 13 => '대통령 :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14 => '', 15 => 'GDP : 213억 6,700만 달러 (2016)', 16 => '', 17 => '1인당 GDP : 2,609 달러 (2016)', 18 => '', 19 => '화폐단위 : 렘피라(Lempira)', 20 => '', 21 => '==역사==', 22 => '온두라스는 마야 문명의 영향권의 동쪽 끝으로 코판 등에서 1500년이 넘은 마야 유적지가 발견된다. 그리고 동부의 황량한 평원 지대엔 여러 부족이 살았다. 16세기 콜럼버스가 온두라스에 도착한 이래 스페인의 침략을 받았다. 렝카 족의 렘피라 등이 강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식민지가 되었다.', 23 => '', 24 => '온두라스의 수도는 처음엔 온두라스 북부 해안의 트루히요였으나 코마야과를 거쳐 남부 고원의 테구시갈파로 옮겨 갔다. 스페인 식민 시기 동안 온두라스는 자원도 부족하고 인구도 적어 낙후되어 있었으며, 그나마 은을 캐서 경제가 유지되었다. 한편 영국은 동부의 모스키토모기 족의 지원으로 동부 해안을 점거하고 목재를 가져갔다.', 25 => '', 26 => '19세기부터 중남미 곳곳에서 엘리트층이 주도한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1821년 온두라스는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을 선언해 1823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로스알토스[1]와 함께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중미 연방은 20년도 못 버텼지만 그 동안 무려 18명의 국가원수가 재임하는 등 혼란상을 보이다 1838년 온두라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비슷한 시기 와해되었다.', 27 => '', 28 => '독립 이후에도 온두라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1876년까지 82명이 권력을 잡았고 수백 건의 내란이 발생했다. 1876년 이후에도 혼란상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나 온두라스는 근대화를 추진하고 바나나 농장과 광산을 외국에 개방했다. 외국 바나나 회사는 나중엔 철도 부설권까지 따냈고, 정권에 붙어 타 산업을 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두라스는 바나나 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29 => '', 30 => '바나나 회사 외에 미국도 온두라스에 개입했으며 내부적으로 혼란이 심해 20세기 초반만 해도 159번의 반란과 18회의 정권 교체가 이어졌다. 1930년대엔 안디노의 군사 독재가 이어지다 물러났고 민간 정부가 세워졌지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다. 한편 온두라스의 이웃나라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 면적의 5분의 1에 불과한 소국이었으나 인구는 서로 비슷했는데, 땅이 부족한 엘살바도르인들은 일을 찾아 온두라스로 건너왔다. 온두라스에선 1963년 기업이 외국인을 10% 이상 고용 못 하게 했고 1968년 엘살바도르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했으며, 결국 1969년 갈등 속에 그 유명한 축구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31 => '', 32 => '그러나 축구전쟁에서 어떻게든 승리한 이후로 토지배분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나며 엘살바도르인이 경작하고 있던 농경지들이 속속 대기업과 부농들에게 들어가는 바람에[2] 정국이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1972년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1981년까지 군부독재는 계속되었으며, 온두라스의 상태는 군부독재 때나 민주화 이후나 이웃나라들과 비슷하게 영 좋지 않았고, 1990년대 이후로 빈부격차도 날이 심화되는 추세이다.[3] 온두라스에 있는 미군기지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 기지로 이용되었는데 당시 오요 대통령은 이들의 온두라스 주둔 금지를 공약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로 온두라스의 정치체제는 우파 국민당과 중도우파 자유당간[4]의 양당제가 지속되었다.[5] 어쨌든 이후로 양당체제가 지속되었고 2005년 대선에서 당선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은 자유당 소속으로 출신성향에 맞지않게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무상교육 제도를 시행하고 형편이 어려운 빈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 등 좌파성향을 보였기에[6] 보수적인 언론과 충돌이 잦아지고 당내에서도 잡음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지지율이 점차적으로 떨어졌고 그 와중에 석유수급을 위해서 미주 볼리바르 연합에 가입하기로 하고[7] 우고 차베스와도 꽤나 절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며 親 우고차베스 성향으로 낙인 찍혔다. 여하간 그렇게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자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2009년에 헌법을 고치는 국민투표를 예정했는데 국민투표를 앞두고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고 미국은 처음엔 이를 비난하다 나중에 이를 승인했다. 군부와 야권 세력은 이것을 헌법 유린으로 트집잡아 쿠데타가 아니라 헌정 질서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 33 => '', 34 => '여하간 여러 의혹이 있었지만 2009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서 우파인 국민당이 집권했고 총선에서도 국민당이 압승했다.마누알 셀리아는 쫓겨난 상태였지만 2010년에 귀국했고 귀국후에 자유당의 일부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모아서 자유당을 탈당하고 새로운 좌파정당인 자유재건당을 창당했고 국민당도 별다를것 없는 모습을 보이며 2013년 대선에서 국민당이 재집권했지만 득표율이 36%에 불과한데다가, 총선에서는 국민당과 자유당의 의석수가 크게 감소했고[8] 자유재건당이 제1야당인으로 등극했기에 일단 정계에서 나름대로 힘을 쓰는 상태이기는 하다. 이후로는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 재선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다가, 빈곤문제 해결에도 실패해서 악평이 많기는 하나, 국정운영 능력이 아주 나쁜건 아닌데다가[9]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야권이 분열된 상태이기 때문에[10]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은 유지하고 있고 그런탓에 법원사유화 논란에도 압도적으로 재선이 예측되고 있었다.', 35 => '', 36 => '하지만 막상 여론조사 결과와는 개표결과에서는 살바도르 나스라야[11]야당연합 후보가 5%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것으로 나타나면서 선거 전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정권교체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개표가 완료된다해도 여론조사 기관들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친다면 20대 총선 여론조사급의대 참사가 벌어진 셈이다. 선거전에는 살바도르 나스라야가 참패할것으로 에측되었는데 이게 확 뒤짚힌 셈이니... 여하튼 최종집계에서는 역전에 성공하여 에르난데스 대통령이 재선하는것으로 나왔지만 50% 가까운 표를 얻어 낙승할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대통령 선거에서 간신히 승리한데다가 개표가 1주 가까이 지연되면서 선거부정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상처뿐인 승리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그 동안 에르난데스가 압승할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온 온두라스 여론조사 기관들과 언론들도 신뢰도가 폭락하는 등 후폭풍을 겪고 있으며 개표가 57%진행될 때 선거개표시스템이 멈추다가 수십시간이 지나서야 개표가 재개된데다가 그 이후로 역전까지 일어나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고, 미주기구 참관단이 선거 과정에서 개표시스템에 문제가 있는데다가 외국인 투표참관인들이 선거 과정이나 개표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증언까지 내놓았고 대규모 시위사태까지 일어나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까지 할정도로 정국이 혼미해지고 있다. 정국이 혼란에 빠지고 난 뒤에, 미주기구가 선거과정에서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아 결과가 어떤지 확신할수없다는 보고서까지 나오자 궁지에 몰린 에르난데스 대통령측이 재검표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참관인들이 개표과정이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는판인지라 재검표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미국입장에서는 친미성향의 우파 에르난데스 재선이 호재이며(미군기지의 존속을 선거기간 강력히 주창하였다), 존 켈리는 대놓고 에르난데스를 지지하기 까지 했다. 그렇지만 선거 개표후에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마자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인데 자국민들에게 밖에 나가는걸을 자제하거나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기를 바란다 정도로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 여타 라틴아메라카 국가들 사이에서도 언론들 사이에서나 언급이 되었지 정부차원에서는 그리 잘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고, 오히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언급을 할정도.', 37 => '', 38 => '재검표 결과는 에르난데스가 여전히 근소한표차로 앞서는것으로 나와서 일단 에르난데스의 재선이 확정되었지만 여러모로 말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나아갈지 불분명하며, 재검표 과정자체도 불분명한것이 많아서 항의시위가 해를 넘겨서 진행되고 있으며 거기에 온두라스 의회에서 부패수사를 막는 법안까지 통과시키며 시위에 불을 끼얹은 모양시다. 하지만 미국이 온두라스 당국을 비호하고 있어서 상황진척은 잘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39 => '', 40 => '==사회==', 41 => '', 42 => '살인률이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높다. 정말로 매우 높다. 여행갈때 주의바람.', 43 => '', 44 => '살인(고의 살인. 실수로 죽인 과실치사 제외) 사건 비율이 세계 최고를 달리는 나라. UN 마약 범죄 사무소(UNODC)의 통계에 의하면 2015년에 10만명당 63.75 건의 살인이 발생해서, 1위인 엘살바도르에 이어 2위를 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막장스러운 치안이면 보고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 수 있을 것이다. ', 45 => '', 46 => '살인율에 비해 자살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10만명당 4.2명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47 => '', 48 => '==경제==', 49 => '', 50 => '중남미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커피이다. ', 51 => '바나나 역시 매우 유명하다. 기타에 사용되는 목재중에 온두라스산 마호가니를 최상품으로 취급한다. 허나 무분별한 벌목으로 벌목금지 대상이 됐다. 의외로 최저임금 수준은 중미에서 그리 낮지 않은 편이고 엘살바도르보다 높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유명무실하다.', 52 => '', 53 => '==스포츠==', 54 => '===축구===', 55 => '축구전쟁까지 일어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기가 매우 대단하다.', 56 => '중남미는 대부분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기 때문에...', 57 => '북중미 중에서는 축구를 꽤 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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