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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문서|에우클레이데스|15441467|일부}}
{{넘겨주기|유클리드}}
'''알렉산드리아의 에우클레이데스'''(Εὐκλείδης ὁ Ἀλεξανδρεὺς}, [[기원전 325년]] 경~[[기원전 265년]] 경) 또는 '''유클리드'''(Euclid)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다.([[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애초에 에우클레이데스가 어느 나라 수학자인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재위 기간([[기원전 323년]]~[[기원전 283년]])동안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부탁으로 최초의 [[대학]]이자 [[도서관]],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활동하였고(하지만 이 대학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정확한 위치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알려진 [[정수론]] 및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집대성한 업적을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 기하학 원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원본은 [[그리스어]]로 문자라는 뜻이다.)
== 생애 ==
에우클레이데스의 이름은 {{llang|grc|εὖ|에우}}(잘, 좋게)+{{llang|grc|κλέος|클레오스}}(알려짐, 평판)의 [[합성어]]이며, "평판이 좋음, 유명함"이라는 뜻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삶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많지 않고, 그에 관한 소량의 언급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에 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언급마저도 그가 살았던 세기 후에야 프로클로스({{llang|grc|Πρόκλος}})와 알렉산드리아의 파포스({{llang|grc|Πάππος}})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다. 프로클로스는 [[5세기]]에 쓰여진 그의 저서 《주석이 달린 원론》을 통해서 에우클레이데스에 관해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인용문2|이들<nowiki>[</nowiki>[[플라톤]]과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의 제자들]보다 그리 젊지는 않은 에우클레이데스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집대성하여,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의 여러 정리들을 정렬하였고, 테아이테토스({{llang|grc|Θεαίτητος}})의 정리들을 완성하였으며, 선대에서 막연하게 증명되었던 것들을 엄밀하게 증명하였다. 이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시대에 살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바로 이후 세대인 [[아르키메데스]]가 에우클레이데스에 대해서 언급하기 때문이며, 혹자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에우클레이데스에게 "[[기하학]]을 보다 쉽게 배우는 지름길은 없는가?”라고 묻자, "폐하, 기하학에는 폐하만을 위한 왕도는(王道)는 없사옵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플라톤]]의 제자들 이후 사람이지만 [[에라토스테네스]]나 아르키메데스 이전의 사람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어디에선가 에우클레이데스가 스스로와 동시대 인물이라고 기록하기 때문이다.<br/> {{lang|grc|οὐ πολὺ δὲ τούτων νεώτερός ἐστιν Εὐκλείδης ὁ τὰ στοιχεῖα συναγαγὼν καὶ πολλὰ μὲν τῶν Εὐδόξου συντάξας, πολλὰ δὲ τῶν Θεαιτήτου τελεωσάμενος, ἔτι δὲ τὰ μαλακώτερον δεικνύμενα τοῖς ἔμπροσθεν εἰς ἀνελέγκτους ἀποδείξεις ἀναγαγών. γέγονε δὲ οὗτος ὁ ἀνὴρ ἐπὶ τοῦ πρώτου Πτολεμαίου· καὶ γὰρ ὁ Ἀρχιμήδης ἐπιβαλὼν καὶ τῷ πρώτῳ μνημονεύει τοῦ Εὐκλείδου, καὶ μέντοι καί φασιν ὅτι Πτολεμαῖος ἤρετό ποτε αὐτόν, εἴ τίς ἐστιν περὶ γεωμετρίαν ὁδὸς συντομωτέρα τῆς στοιχειώσεως· ὁ δὲ ἀπεκρίνατο, μὴ εἶναι βασιλικὴν ἀτραπὸν ἐπὶ γεωμετρίαν· νεώτερος μὲν οὖν ἐστι τῶν περὶ Πλάτωνα, πρεσβύτερος δὲ Ἐρατοσθένους καὶ Αρχιμήδους. οὗτοι γὰρ σύγχρονοι ἀλλήλοις, ὥς πού φησιν Ἐρατοσθένης.}}
|[http://www.loebclassics.com/view/proclus-summary/1939/pb_LCL335.155.xml 프로클로스, 《주석이 달린 원론》]}}
여기서 에우클레이데스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사이의 기하학의 왕도에 대한 일화는 후세의 창작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다른 [[고대 그리스]] [[수학자]]인 [[메나이크모스]]와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 사이의 일화와 유사하기 때문이다.<ref name="Boyer">{{cite book|first=Carl B.|last=Boyer|title=A History of Mathematics|판=2판|publisher=John Wiley & Sons, Inc.|날짜=1991|isbn=0-471-54397-7|언어=en}}</ref>
== 주요 업적 ==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본문|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 현존하는 기타 저서 ===
《원론》 말고도 현존하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
* 《주어진 값》({{llang|grc|Δεδομένα|데도메나}})은 기하학에 대한 책이다.
* 《현상》({{llang|grc|Φαινόμενα|파이노메나}})은 [[구면 기하학]]을 다룬다.
* 《광학》({{llang|grc|Ὀπτικά|옵티카}})은 [[광학]]을 다루는 그리스 최고(最古)의 문헌이다.
* 《도형의 분할에 대하여》({{llang|grc|Περί διαιρέσεων βιβλίον|페리 다이이레세온 비블리온}})는 주어진 도형을 주어진 비로 분할하는 문제를 다룬다. [[아랍어]] 번역으로 부분만이 현존한다.
* 《거울 광학》({{llang|grc|Κατοπτρικά|카톱트리카}})은 [[거울]]을 사용한 기하학 문제를 다루며, 아마 후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 손실된 저서 ===
이 밖에도, 문헌에는 에우클레이데스가 집필했다고 수록되어 있는 여러 책들이 전해 오지만, 이들은 짧은 인용을 제외하고는 현존하지 않는다.
* 《원뿔 곡선》({{llang|grc|Κωνικά|코니카}})은 [[원뿔 곡선]]을 다룬다. 후에 [[페르게의 아폴로니오스]]가 이 내용을 확장하였다.
* 《포리스마》({{llang|grc|Πορίσματα|포리스마타}}). ‘포리스마’({{llang|grc|πόρισμα}})는 어떤 기하학적 작도가 가능할 조건을 제시하는 수학적 정리이다.
* 《착오의 서(書)》({{llang|grc|Ψευδάρια|프세우다리아}}). 논리적 오류를 다룬다.
* 《곡면 궤적》({{llang|grc|Τόπων τῶν πρὸς ἐπιφανείᾳ|토폰 톤 프로스 에피파네이아}}). [[이차 곡면]]에 대한 것으로 추측된다.
* 아랍 문헌에서는 에우클레이데스가 집필했다고 하는 여러 [[역학]]에 대한 책들이 등장한다.
== 일화 ==
위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와의 대화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에우클레이데스의 강연 도중에 한 제자가 "[[교수]]님, [[수학]]은 너무 지루합니다. 도대체 그걸 배워서 어디다가 써먹을 수 있죠?"라고 묻자, 에우클레이데스는 하인을 불러서 "여봐라, 배운 것으로 반드시 이득을 얻으려고만 하는 저 친구에게는 동전 세 닢만 주고 강의실 밖으로 쫓아내라."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일화를 볼 때, 에우클레이데스는 배우는 그 자체를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성격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같이 보기 ==
*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 [[유클리드 기하학]]
* [[비유클리드 기하학]]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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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주기|유클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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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에우클레이데스'''(Εὐκλείδης ὁ Ἀλεξανδρεὺς}, [[기원전 325년]] 경~[[기원전 265년]] 경) 또는 '''유클리드'''(Euclid)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다.([[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애초에 에우클레이데스가 어느 나라 수학자인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재위 기간([[기원전 323년]]~[[기원전 283년]])동안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부탁으로 최초의 [[대학]]이자 [[도서관]],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활동하였고(하지만 이 대학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정확한 위치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알려진 [[정수론]] 및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집대성한 업적을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 기하학 원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원본은 [[그리스어]]로 문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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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에우클레이데스의 이름은 {{llang|grc|εὖ|에우}}(잘, 좋게)+{{llang|grc|κλέος|클레오스}}(알려짐, 평판)의 [[합성어]]이며, "평판이 좋음, 유명함"이라는 뜻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삶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많지 않고, 그에 관한 소량의 언급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에 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언급마저도 그가 살았던 세기 후에야 프로클로스({{llang|grc|Πρόκλος}})와 알렉산드리아의 파포스({{llang|grc|Πάππος}})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다. 프로클로스는 [[5세기]]에 쓰여진 그의 저서 《주석이 달린 원론》을 통해서 에우클레이데스에 관해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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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2|이들<nowiki>[</nowiki>[[플라톤]]과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의 제자들]보다 그리 젊지는 않은 에우클레이데스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집대성하여,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의 여러 정리들을 정렬하였고, 테아이테토스({{llang|grc|Θεαίτητος}})의 정리들을 완성하였으며, 선대에서 막연하게 증명되었던 것들을 엄밀하게 증명하였다. 이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시대에 살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바로 이후 세대인 [[아르키메데스]]가 에우클레이데스에 대해서 언급하기 때문이며, 혹자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에우클레이데스에게 "[[기하학]]을 보다 쉽게 배우는 지름길은 없는가?”라고 묻자, "폐하, 기하학에는 폐하만을 위한 왕도는(王道)는 없사옵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플라톤]]의 제자들 이후 사람이지만 [[에라토스테네스]]나 아르키메데스 이전의 사람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어디에선가 에우클레이데스가 스스로와 동시대 인물이라고 기록하기 때문이다.<br/> {{lang|grc|οὐ πολὺ δὲ τούτων νεώτερός ἐστιν Εὐκλείδης ὁ τὰ στοιχεῖα συναγαγὼν καὶ πολλὰ μὲν τῶν Εὐδόξου συντάξας, πολλὰ δὲ τῶν Θεαιτήτου τελεωσάμενος, ἔτι δὲ τὰ μαλακώτερον δεικνύμενα τοῖς ἔμπροσθεν εἰς ἀνελέγκτους ἀποδείξεις ἀναγαγών. γέγονε δὲ οὗτος ὁ ἀνὴρ ἐπὶ τοῦ πρώτου Πτολεμαίου· καὶ γὰρ ὁ Ἀρχιμήδης ἐπιβαλὼν καὶ τῷ πρώτῳ μνημονεύει τοῦ Εὐκλείδου, καὶ μέντοι καί φασιν ὅτι Πτολεμαῖος ἤρετό ποτε αὐτόν, εἴ τίς ἐστιν περὶ γεωμετρίαν ὁδὸς συντομωτέρα τῆς στοιχειώσεως· ὁ δὲ ἀπεκρίνατο, μὴ εἶναι βασιλικὴν ἀτραπὸν ἐπὶ γεωμετρίαν· νεώτερος μὲν οὖν ἐστι τῶν περὶ Πλάτωνα, πρεσβύτερος δὲ Ἐρατοσθένους καὶ Αρχιμήδους. οὗτοι γὰρ σύγχρονοι ἀλλήλοις, ὥς πού φησιν Ἐρατοσθένης.}}
-|[http://www.loebclassics.com/view/proclus-summary/1939/pb_LCL335.155.xml 프로클로스, 《주석이 달린 원론》]}}
-여기서 에우클레이데스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사이의 기하학의 왕도에 대한 일화는 후세의 창작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다른 [[고대 그리스]] [[수학자]]인 [[메나이크모스]]와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 사이의 일화와 유사하기 때문이다.<ref name="Boyer">{{cite book|first=Carl B.|last=Boyer|title=A History of Mathematics|판=2판|publisher=John Wiley & Sons, Inc.|날짜=1991|isbn=0-471-54397-7|언어=en}}</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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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업적 ==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본문|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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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기타 저서 ===
-《원론》 말고도 현존하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
-* 《주어진 값》({{llang|grc|Δεδομένα|데도메나}})은 기하학에 대한 책이다.
-* 《현상》({{llang|grc|Φαινόμενα|파이노메나}})은 [[구면 기하학]]을 다룬다.
-* 《광학》({{llang|grc|Ὀπτικά|옵티카}})은 [[광학]]을 다루는 그리스 최고(最古)의 문헌이다.
-* 《도형의 분할에 대하여》({{llang|grc|Περί διαιρέσεων βιβλίον|페리 다이이레세온 비블리온}})는 주어진 도형을 주어진 비로 분할하는 문제를 다룬다. [[아랍어]] 번역으로 부분만이 현존한다.
-* 《거울 광학》({{llang|grc|Κατοπτρικά|카톱트리카}})은 [[거울]]을 사용한 기하학 문제를 다루며, 아마 후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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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실된 저서 ===
-이 밖에도, 문헌에는 에우클레이데스가 집필했다고 수록되어 있는 여러 책들이 전해 오지만, 이들은 짧은 인용을 제외하고는 현존하지 않는다.
-* 《원뿔 곡선》({{llang|grc|Κωνικά|코니카}})은 [[원뿔 곡선]]을 다룬다. 후에 [[페르게의 아폴로니오스]]가 이 내용을 확장하였다.
-* 《포리스마》({{llang|grc|Πορίσματα|포리스마타}}). ‘포리스마’({{llang|grc|πόρισμα}})는 어떤 기하학적 작도가 가능할 조건을 제시하는 수학적 정리이다.
-* 《착오의 서(書)》({{llang|grc|Ψευδάρια|프세우다리아}}). 논리적 오류를 다룬다.
-* 《곡면 궤적》({{llang|grc|Τόπων τῶν πρὸς ἐπιφανείᾳ|토폰 톤 프로스 에피파네이아}}). [[이차 곡면]]에 대한 것으로 추측된다.
-* 아랍 문헌에서는 에우클레이데스가 집필했다고 하는 여러 [[역학]]에 대한 책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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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
-위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와의 대화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에우클레이데스의 강연 도중에 한 제자가 "[[교수]]님, [[수학]]은 너무 지루합니다. 도대체 그걸 배워서 어디다가 써먹을 수 있죠?"라고 묻자, 에우클레이데스는 하인을 불러서 "여봐라, 배운 것으로 반드시 이득을 얻으려고만 하는 저 친구에게는 동전 세 닢만 주고 강의실 밖으로 쫓아내라."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일화를 볼 때, 에우클레이데스는 배우는 그 자체를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성격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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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 [[유클리드 기하학]]
-* [[비유클리드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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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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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수학자]]
+#넘겨주기 [[유클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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