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열보병

근대 이전 보병의 전술[편집 | 원본 편집]

탄생배경[편집 | 원본 편집]

전열보병의 이점[편집 | 원본 편집]

당대의 머스킷은 전장식이었고, 단발이었기 때문에 한 번 쏘고 나서 화약과 탄환을 총구를 통해 총열로 밀어넣고 공이를 당기기까지 재장전을 일일히 해야했으며, 그 과정도 대단히 복잡했다. 활과 비교해도 온갖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연사력 면에서 기존의 활보다 더 못한 경우가 많았고, 아무리 훈련된 병사라도 분당 3 ~ 4발 정도가 한계였다. 현대식 자동 소총이 분당 700발가량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당대의 총기 성능이 지금과는 비교도 못할 수준으로 매우 조악했다.

그래서 다수의 인원을 일렬로 세우고 맨 앞에 있는 인원이 발포를 하면 그 다음 열에 있는 인원이 발포를 하며, 이미 발포했던 인원은 뒤로 물러서 재장전을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화력의 공백을 메꾸려고 고심한 결과 탄생한 전술이 바로 전열보병이다. 그래도 이조차 한계가 있긴 해서 다수의 체계적인 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적에게 총탄을 부을 수 있는 원거리 화력전 만으로는 어느 정도 적에게 피해를 낼 수 있을지언정, 적의 대열을 붕괴시키고 승기를 잡기는 어려웠으므로 기동성을 살려 적을 교란시키는 기병과 백병전에 대비하여 돌격 후 근접전에 특화된 창병 등이 필수적이었다. 머스킷에 총검을 장착한 직후부턴 총이 창의 역할도 겸해 창병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전투에서 확실한 결정타를 날리는 것은 역시 백병전이었기에 사실상 머스킷 사수가 창병의 역할도 겸한 셈이다.

쇠퇴[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이 전술도 19세기 중후반 이후, 전쟁의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쇠퇴하게 된다. 탄피와 탄창의 발명으로 개인이 소지 할 수 있는 탄약의 수가 증가하고, 거기에 더해 후장식 총기가 나오면서 연사속도가 빨라지자 전장식 화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결정적으로, 기관총의 발명이 전열 보병 전술에 치명타였다. 대량의 탄환을 단시간에 연사로 쏟아붓는 탄막이 형성되고, 그때문에 병사 한 명이 다수의 인원을 학살 할 수 있었으며, 오와 열을 맞춰 밀집된 다수의 인원은 그저 기관총의 좋은 사격감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다수가 뭉쳐서 돌격해봤자 기관총의 포화에 전멸 될 것이 뻔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에서 "뭉치면 다같이 몰살당한다"로 시대가 변한 고로, 기존의 밀집 대형 대신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산개 전술이 이시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