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jpg
건축물 정보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산80-1번지 외 ,금마면 동고도리 1109-8외
대지면적 218,155 m2
문화재 정보
종목 사적 제408호
지정일 1998년 9월 17일

익산 왕궁리 유적(益山 王宮里 遺蹟)은 익산 왕궁리 일대에 있는 백제시대 건설된 궁성 유적으로 백제 후기의 왕궁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1989년부터 발굴조사를 시작하였는데 조사 결과 궁궐 담장(궁성), 정전, 정원, 후원, 화장실, 공방 등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궁성은 직사각형의 담장으로 궁을 둘러싸고 있으며, 담장의 길이는 동서로 약 240m, 남북방향으로는 약 490m이며, 담장의 폭은 약 3m가량 되는 크기이다. 또한 담장 양쪽에는 폭 1미터 가량정도 되는 편평한 돌이 깔려있어서 이 돌이 보도시설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궁성 내부는 동서 방향으로 축대를 쌓아 내부 공간을 전반부인 남쪽과 후반부인 북쪽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전반부에는 경사면을 따라 단이 지도록 4곳에 축대를 쌓아 땅을 평탄하게 만들고 이 위에 정전[1]과 기와로 건물을 올린 와적기단 건물과 용도를 명확하게 할 수 알 수 없는 1동 2실 구조의 건물 등이 들어서 있었다.

북쪽의 후반부에는 북동쪽 고지대에 후원을 만들고 상대적으로 낮은 북서쪽 지역에는 금과 유리를 생산하는 공방과 화장실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백제 무왕 당시 궁성으로 건설하여 사용하다가 후대 의자왕 시기 다시 사비(현재의 부여군)로 천도하면서 궁성의 용도를 잃었으며, 이 시기 혹은 백제 멸망 이후에는 사찰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오층석탑[2] 등의 탑이 들어섰는데 1965년 이 곳에 자리한 왕궁리 5층 석탑을 해체하고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엄구가 새로 발견하여 국보 제123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로 지정하였다.

당시 궁성을 지을 대지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로 흙을 쌓은 성토층과 동서 방향으로 쌓은 축대, 당시 최고 수준의 화장실,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공방 등은 삼국시대 궁성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모질메산성[편집 | 원본 편집]

이 왕궁리 유적은 백제 궁성으로 밝혀지기 이전에는 모질메산성이라는 명칭의 산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있다가 이 일대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국가문화재로의 승격을 위해 지방문화재 지정이 해제되고 1998년 사적으로 이 일대를 재지정하면서 현재의 왕궁리 유적이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에는 모질메, 혹은 모지밀 산성이라는 이름과 왕궁 평성이라는 이름 등이 섞여서 사용되었으며, 성벽은 거의 파괴된 상태의 토성으로 여겨졌으며, 제대로 된 발굴을 하기 이전에는 백제의 왕성이라는 설과 마한의 수도였다는 설 등 여러 의견들이 있었느나 실제 발굴 조사 결과 무왕 당시의 백제 궁성으로 밝혀지고 면서 사적 승격 뿐 아니라 유네스코 문화재 지정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다.

각주

  1. 왕이 정사를 보던 건물
  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으로 국보 289호로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