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스티브 블래스 증후군(Steve blass syndrome)

정의[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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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야구 선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등 특별한 이유 없이 제구력 난조를 겪는 증후군. 피츠버그의 우완 투수였던 스티브 블래스(Steve blass)의 실제 사례에서 유래한 용어로 투수에만 국한되지 않고 야수에게도 나타난다. 입스(yips)를 야구계에서 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의 유례[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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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선수시절의 스티브 블래스


피츠버그의 우완 투수였던 스티브 블래스는 1964년 메이저리그 데뷔를 시작으로 1972년까지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10승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6차례나 있었으며, 1971년엔 월드시리즈에서 두차례의 완투승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1972년엔 19승을 기록,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됐으며 싸이영상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3년, 스티브 블래스에게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1973년 스티브 블래스는 갑작스레 제구력을 잃은 모습을 보여준다. 88.2이닝을 던지면서 84개의 볼넷을 기록했으며, 삼진은 고작 27개 밖에 잡지 못했다. 평균자책점은 자연스레 폭등했고, 1973시즌 -4.0의 WAR을 기록했다. 이는 1901년 이후 투수가 기록한 최악의 수치.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어 제구력을 되찾고자 했으나 다시는 제구력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1경기만을 등판한채 은퇴를 선택했다. 당시 스티브 블래스의 나이는 비교적 젊은 32세였다.


스티브 블래스가 갑작스레 제구력을 잃어버린 이유에 대한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일각에선 절친한 친구이자 팀 동료였던 Roberto Clemente의 죽음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2013년 인터뷰에서 컨트롤을 잃어버린 이유가 친구의 죽음은 아니었음을 밝혔다. 결국,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은 채로 야구 선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증후군을 이르는 용어가 되었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사례[원본 편집]

1 메이저리그[원본 편집]

  • Rick Ankiel: 세인트루이스의 투수였던 Rick Ankiel은 고교 시절부터 대단한 유망주였다. 그와 계약하며 세인트루이스가 안겨준 계약금은 250만 달러, 당시로선 아마추어 계약금 역대 5위에 해당했다. 마이너리그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뉴욕 타임즈는 ‘세기의 왼손 유망주’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2000년엔 11승을 기록, 불과 20살의 나이에 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첫 플레이오프였던 애틀란타와의 디비전 시리즈, 그는 갑작스러운 제구력 난조를 보인다.

    두 경기에 등판해 4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9개의 폭투와 11개의 볼넷을 기록, 1890년 이후 플레이오프 최다 폭투를 기록한다. 이후, 그는 제구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듬해 24이닝 동안 25개의 볼넷, 5개의 폭투를 기록한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제구를 다시 찾고자 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도 25이닝동안 20개의 폭투를 기록, 제구력을 찾는데 실패한다. 결국 야수로 전향, 2007년부터 외야수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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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수와 타자로 모두 활약한 Rick Ankiel
  • Chuck Knoblauch: 뉴욕 양키스의 2루수였던 그는 1991년 신인왕을 시작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4회나 선정됐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7년엔 골든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하지만 1999년, 갑자기 송구에 문제를 보인다. 2루에서 1루로 공을 송구하는 것에 문제를 보이며 26개의 에러를 기록했다.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이후 지명타자와 외야수를 전전하다 2003년 은퇴를 선언했다. 야수가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보인 대표적인 사례로 뽑힌다.

  • Mackey Sasser: 뉴욕 양키스의 포수였던 그는 프로 2년차인 1989년, 갑작스레 투수에게 공을 돌려주는 것에 문제를 보인다. 투수에게 공을 똑바로 돌려주지 못하는 그는 더 이상 포수를 볼 수 없었고, 여러 팀과 포지션을 전전하다 1995년 은퇴했다. 이후 그의 사례를 들어 투수에게 공을 돌려주지 못하는 포수를 Sasseritis라고 칭하게 됐다. 프로를 떠난 이후에도 심리치료사와 입스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극복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재도 한 대학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입스로 고생하는 선수들에게 조언하기 위해 그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공개해 두었다고 한다.

2 국내 프로야구[원본 편집]

  • 김주찬: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입단한 김주찬은 대형 5툴 유격수 자원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2000년 7월 16일 관중석으로 공을 송구하여 끝내기 실책을 저지른 이후 종종 관중석이나 덕아웃으로 송구하는 스티브 블래스 신드롬 증상을 보인다. 결국 외야수와 1루수로 전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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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보면 그냥 송구를 못하는 것 일수도..

  • 김진우: 2007년 1선발 후보로 각광받던 김진우는 시범경기부터 갑작스러운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1군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했다. 1군 복귀 이후에도 3경기에서 20개의 볼넷을 기록하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포수 김상훈은 “폼이나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하지만 감각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진우도 던지고 나서 왜 그 쪽으로 공이 갔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한다. 나도 포수를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밝혔다. 이후 선수단을 무단 이탈하며 임의탈퇴 처리됐다. 2012년 복귀 후 인터뷰에서 본인은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 아닌 어깨 염증이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 심수창: 현 한화 이글스 투수인 심수창은 2012년 한 방송에서 고교시절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겪었음을 밝혔다. 배명고 1학년 시절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80만 달러의 계약을 제시 받았으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으로 포기했음을 밝혔다. 당시 심수창은 투구감각이 떨어져 불과 10미터도 공을 던지지 못했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7&aid=0002212052

  • 최형우: 2002년 삼성에 입단한 최형우의 포지션은 포수였다. 그러나 송구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야수의 키를 넘기는 송구 실수를 종종 저지른 것. 결국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되어 경찰청에서 외야수로 전향했다.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연습에선 문제가 없었는데 실전에선 송구가 자꾸 야수키를 넘어갔다고 한다. 경찰청 입단 테스트 때 최형우의 송구를 본 정현발 코치는 “학창시절이나 프로 초기에 송구 때문에 된통 혼난 적이 있는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여담[원본 편집]

슬기로운 감빵생활 14회에서 주인공인 김제혁(박해수 분)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걸린 것으로 나오며 화제가 됐다. 극 중 야구 선수인 김제혁은 출소 이후 복귀에 대한 압박감으로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걸린것으로 나온다. 이에 최면 치료와 심리 치료 등을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친구인 지호(크리스탈 분)이 '글러브 가운데 엑스 자를 그려라. 여기로 던지라고 해라. 다른 말 하지말고 엑스 자만 보고 던지라고 해라. 다른 말은 못 알아듣는다.'고 조언, 이대로 실행하자 한번에 해결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와중에 똘마니는 투수글러브로 140km가 넘는 공은 잡는다. 진정한 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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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에 X자를 그리는 것만으로 간단히 극복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