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마크 어펠(Mark Ap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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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크 스튜어트 어펠(Mark Stewart Appel)
생년월일 1991년 07월 15일(26세)
출생지 텍사스 주 휴스턴
출신 학교 스탠포드 대학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데뷔 2013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지명(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팀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마이너리그 (2013-2015)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마이너리그 (2016-2017)

수상 경력 없음

선수 소개[원본 편집]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1픽 버스트 중 한 명

2010년대에 야구를 본 사람 중 이 이름을 단 한 번이라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으리라.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1년차까지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했던 그였지만 프로 무대부터는 빛을 보지 못했다. 결국 어펠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한 메이저리그 역대 3번째 전체 1순위 드래프티1 가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다.

아마추어 시절[원본 편집]

어펠의 아마추어 시절은 엄청났다. 고등학교 당시에는 주로 클로저로 활약을 했지만 노히터도 기록할 만큼 훌륭한 공을 던졌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관심을 가지며 2009년 드래프트에서 15라운드 450순위에 그를 지명했지만 어펠은 스탠포드 대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1학년 때는 주로 구원투수 및 스팟 스타터로 활약했으나 2학년 때부터는 선발투수 보직을 맡아 수행했다. 그는 대학 당시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며2 2012시즌에 앞서 생애 최초 올어메리칸 팀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2012년에는 National Pitcher of the Year에 뽑혔다.

2012시즌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당시 어펠이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가 높은 계약금을 요구한 끝에 그의 순번은 8순위까지 밀렸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그를 1라운드 8순위로 지명했으나 결국 데드라인인 7월 31일까지 계약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 뒤 2013시즌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힘겨웠던 마이너리그 시절[원본 편집]

막상 프로 데뷔를 하고 나니 어펠은 요란한 빈수레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2013시즌에는 쇼트A와 싱글A에서 뛰며 38이닝 평균자책 3.79라는 평범한 활약을 펼쳤지만 스프링트레이닝에 초청됐던 2014시즌 이후부터는 맥을 추지 못했다. 특히 하이A에서는 12번의 선발 등판 동안 평균자책 9.74라는 아주 처첨한 성적을 냈다. 이런 상황에서 르나우 단장은 "해당 리그가 투수들에게 매우 좋지 못한 환경"이라는 이유와 함께 도리어 그를 AA로 승격시켜버렸고 어펠은 해당 리그에서 39이닝 평균자책 3.69라는 그나마 괜찮은 성적을 올리며 거기에 응답했다.

그 뒤 어펠은 2015시즌 동안 더블A와 트리플A에서 각각 13번, 12번의 선발 등판을 하며 모두 4점대 중후반으로 다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그리고 12월 휴스턴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마무리투수 켄 자일스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필라델피아 산하 마이너리그로 건너가게 됐다.

2016시즌을 필라델피아 산하 AAA리그에서 시작하게 된 어펠은 그 전해와 비슷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나, 어깨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고 말았다. 또한 그 재활 과정에서는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골극 제거 수술로 인해 시즌을 일찍 마쳐야 했다. 2016시즌 뒤 필라델피아는 어펠의 이름을 40인 로스터에 올렸다. 그리고 2017시즌 그는 다시 한 번 AAA 재수에 도전헀다. 그러나 7월에는 다시 한번 어깨 부상을 당하고 말았으며 해당 시즌을 17번의 선발 등판 5승 4패 평균자책 5.14로 끝마치고 말았다. 필라델피아는 2017시즌 뒤 그를 지명할당했다.

'

4. 잠정 은퇴[원본 편집]

' 마이너리그 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던 어펠은 생각보다 빠른 결단을 내렸다. 2018년 2월 1일에 잠정 은퇴를 선언한 것. 아직 젊은 나이로 한번 더 프로 커리어에 도전해볼 수 있는 나이였기에 아쉬움을 사는 부분이 있다. 그는 자신을 Biggest Bust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나를 정의하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틀리지 않은 표현이다. 나에게 높은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이유로 이를 재현하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나를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3 라고 쿨한 반응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