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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보}} | |||
B-29 Superfortress | |||
미국 육군항공대([[1948년]] 이후 공군) 및 영국 공군에서 운용한 4발 장거리 전략폭격기. [[1942년]]에 초도비행에 들어가 [[1960년]]에 퇴역했으며, 그 기간동안 있었던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에서 혁혁한 기여를 하였다. | |||
== 개발 및 생산 == | == 개발 및 생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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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항공대는 XB-29의 비행테스트 끝에 최종적으로 보잉과 계약, [[1941년#5월|1941년 5월]]에 250기의 B-29를 주문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미국은 유럽대륙의 전쟁에서 독일이 전면적인 승리에 직면했다고 보고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미군이 확보할 수 있는 기지에서 독일 본토를 폭격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 미 육군항공대는 XB-29의 비행테스트 끝에 최종적으로 보잉과 계약, [[1941년#5월|1941년 5월]]에 250기의 B-29를 주문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미국은 유럽대륙의 전쟁에서 독일이 전면적인 승리에 직면했다고 보고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미군이 확보할 수 있는 기지에서 독일 본토를 폭격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 ||
B-29는 당시로선 유래가 없는 초대형 항공기였고, 때문에 제작 및 생산도 특정지역이 아닌 미국 본토 각지에 분산된 공장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장 핵심 공장만 해도 네브래스카, 워싱턴, 캔자스, 조지아 4개 주에 분산되어 있었고, 수천여 개의 공장에서 온갖 부품을 개별적으로 제작해 위 4개의 공장에 보냈다. | B-29는 당시로선 유래가 없는 초대형 항공기였고, 때문에 제작 및 생산도 특정지역이 아닌 미국 본토 각지에 분산된 공장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장 핵심 공장만 해도 네브래스카, 워싱턴, 캔자스, 조지아 4개 주에 분산되어 있었고, 수천여 개의 공장에서 온갖 부품을 개별적으로 제작해 위 4개의 공장에 보냈다. | ||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자 B-29의 생산은 더더욱 독촉받았고, [[1943년]]부터 대대적인 생산에 돌입해, [[1943년]]에 이미 100여 기를 미 육군항공대에 납품했고, 44년 [[3월]]에서 [[4월]]의 1달동안 150기를 추가로 생산해냈다. 이러한 B-29의 생산을 캔자스의 전투(Battle of Kansas)라 통칭한다. |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자 B-29의 생산은 더더욱 독촉받았고, [[1943년]]부터 대대적인 생산에 돌입해, [[1943년]]에 이미 100여 기를 미 육군항공대에 납품했고, 44년 [[3월]]에서 [[4월]]의 1달동안 150기를 추가로 생산해냈다. 이러한 B-29의 생산을 캔자스의 전투(Battle of Kansas)라 통칭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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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3월|1945년 3월]]부터는 [[커티스 르메이]]의 지휘하에 본격적으로 [[일본 본토 공습]]에 나섰다. 그 유명한 [[도쿄대공습]]을 시작으로 일본의 주요 대도시들에 소이탄 폭격을 감행, 초토화시키고 덤으로 [[체스터 니미츠]]의 명령으로 일본 연안에 대규모로 [[기뢰]]를 살포해 일본을 말려죽이는데도 큰 공훈을 세웠다. B-29의 일본 전략폭격은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어 일본의 도시 대부분을 잿더미로 만들고 전쟁수행능력과 의지를 없앴다. 아울러,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에 대한 핵공격도 B-29가 실시했다. | [[1945년#3월|1945년 3월]]부터는 [[커티스 르메이]]의 지휘하에 본격적으로 [[일본 본토 공습]]에 나섰다. 그 유명한 [[도쿄대공습]]을 시작으로 일본의 주요 대도시들에 소이탄 폭격을 감행, 초토화시키고 덤으로 [[체스터 니미츠]]의 명령으로 일본 연안에 대규모로 [[기뢰]]를 살포해 일본을 말려죽이는데도 큰 공훈을 세웠다. B-29의 일본 전략폭격은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어 일본의 도시 대부분을 잿더미로 만들고 전쟁수행능력과 의지를 없앴다. 아울러,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에 대한 핵공격도 B-29가 실시했다. | ||
이러한 B-29의 [[전략폭격]]은 [[일본 제국]]의 패망에 쐐기를 박는데, 이미 산업 생산력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일본제국은 그나마 눈물겹게 유지하던 산업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손실함은 물론이고, 일본 본토를 공격함에 따라 일본 국민들의 전의를 상실케하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 | 이러한 B-29의 [[전략폭격]]은 [[일본 제국]]의 패망에 쐐기를 박는데, 이미 산업 생산력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일본제국은 그나마 눈물겹게 유지하던 산업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손실함은 물론이고, 일본 본토를 공격함에 따라 일본 국민들의 전의를 상실케하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오지마 섬]] 점령 이후 B-29의 활동은 그야말로 사신과 같아서, 그나마 요격기를 띄우는 흉내라도 낼 수 있었던 일본 제국은 완전히 요격기를 생산할 능력마저 상실해 버렸다. | ||
=== 한국전쟁 === | === [[한국전쟁]] === | ||
[[한국전쟁]]에서도 개전 초부터 폭격에 나서, [[1950년]] 겨울이 되면 [[북한]] 지역에 더 이상 남아 있는 산업시설이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청천강 이북 지역에서 [[MiG-15]]기들이 출현, B-29들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하게 되자 B-29는 주간폭격을 중단하고 야간폭격에만 나서게 되었으며, 이후로는 청천강 이북지역(미그앨리)에서의 폭격활동을 자제하게 된다. | [[한국전쟁]]에서도 개전 초부터 폭격에 나서, [[1950년]] 겨울이 되면 [[북한]] 지역에 더 이상 남아 있는 산업시설이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청천강 이북 지역에서 [[MiG-15]]기들이 출현, B-29들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하게 되자 B-29는 주간폭격을 중단하고 야간폭격에만 나서게 되었으며, 이후로는 청천강 이북지역(미그앨리)에서의 폭격활동을 자제하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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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폭격기]] | [[분류:폭격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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