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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국제연맹]](LN)이 무력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지 못하고 침략자에 의한 주변국 정복이 거듭된 3~40년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교훈이 가져온 결과였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이나 일본의 중국 침공,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에 국제연맹과 국제사회 모두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사상 최악의 대전쟁을 치뤘던 만큼, 침략자는 일찌감치 응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었던 것이다. | 이는 [[국제연맹]](LN)이 무력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지 못하고 침략자에 의한 주변국 정복이 거듭된 3~40년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교훈이 가져온 결과였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이나 일본의 중국 침공,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에 국제연맹과 국제사회 모두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사상 최악의 대전쟁을 치뤘던 만큼, 침략자는 일찌감치 응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었던 것이다. | ||
당장 [[에티오피아]]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의 침략때 국제연맹을 통해 호소했지만 무시당하고 정복당한 역사가 있고, 독립을 | 당장 [[에티오피아]]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의 침략때 국제연맹을 통해 호소했지만 무시당하고 정복당한 역사가 있고, 독립을 회복한지 10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프리카의 빈국 에티오피아가 한국전에 참전한 것은 강자에 의한 침략이 되풀이되는 일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같은 이유로 유럽권 국가들의 참여도 적극적이었다. | ||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스]]나 [[터키]]는 공산주의 세력과의 내전을 끝내고 국가재건 및 소련과의 대치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가 필요했기에 참전한 경우이다. [[태국]]은 아예 2차대전당시 일본의 동맹국, 즉 '''추축국'''이었다. 워낙 듣보잡이라 미국이 신경도 쓰지 않은 상대였고 태국도 필사의 외교전으로 대미 선전포고를 '''취소'''하는 식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복원했지만 미국 및 영국, 프랑스로부터 추축국 낙인이 찍힌건 똑같았고 이를 타개하고 미국의 동맹국이 되겠다는 제스처로서 참전한 것이다. |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스]]나 [[터키]]는 공산주의 세력과의 내전을 끝내고 국가재건 및 소련과의 대치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가 필요했기에 참전한 경우이다. [[태국]]은 아예 2차대전당시 일본의 동맹국, 즉 '''추축국'''이었다. 워낙 듣보잡이라 미국이 신경도 쓰지 않은 상대였고 태국도 필사의 외교전으로 대미 선전포고를 '''취소'''하는 식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복원했지만 미국 및 영국, 프랑스로부터 추축국 낙인이 찍힌건 똑같았고 이를 타개하고 미국의 동맹국이 되겠다는 제스처로서 참전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