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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3성 9진]]의 하나로 당시 제주도의 관문이었던 화북포구를 방어하고 관리위해 건설된 [[진성]]으로 1678년 지방관인 최관에 의해 축성된 성곽유적이다. 당시 화북진은 동편의 조천진과 함께 제주목에서 직접 관리하던 육지와의 교통로였기에 제주도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관문이라 할 수 있다. | 조선시대 [[제주 3성 9진]]의 하나로 당시 제주도의 관문이었던 화북포구를 방어하고 관리위해 건설된 [[진성]]으로 1678년 지방관인 최관에 의해 축성된 성곽유적이다. 당시 화북진은 동편의 조천진과 함께 제주목에서 직접 관리하던 육지와의 교통로였기에 제주도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관문이라 할 수 있다. | ||
기록에 의하면 당시 성의 규모는 606척(약 184m), 높이 10척(약 3m)로 동문과 서문의 2개 문이 있었으며 진 내부에는 진사, 공수, 사령방, 마방, 무기고 등이 있었다. 숙종 25년인 1699년에는 제주목사 남지훈이 객사인 환붕정을 지었고, 이후 헌종대에는 북쪽 성벽쪽에 망양정이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되어 성벽 일부만 남아있다. | |||
화북진이 기능하던 당시에는 조방장 1인 치총 2인 방군 92인이 배치되었으며 병선으로는 사후선 1척을 배치하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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