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HSV의 몰락과 <i>HSVPlus</i> (2009-2014) === HSV의 몰락은 지도부의 내분과 함께 시작하였다. 베른트 호프만 운영이사회장의 독단적인 구단 운영에 불만을 품은 [[디트마 바이어스도르퍼]] 단장과 [[마틴 욜]] 감독이 나란히 팀을 떠난 것이다. 결국 단장 자리는 한 시즌 내내 공석으로 남았고, 감독으로는 [[브루노 라바디아]](Bruno Labbadia)가 선임되었으나, 라바디아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젊은 감독에 불과했으며, 특히 바로 전 시즌에도 [[바이어 04 레버쿠젠|레버쿠젠]]에서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며 경질된 바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10 시즌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비록 공격의 핵인 [[이비차 올리치]](Ivica Olić)가 [[FC 바이에른 뮌헨|바이언]]으로 이적하기는 했으나, 여름 동안 3천만 유로가 넘는 거액을 투자한 HSV의 선수층은 여전히 화려했고, <s>그러나 마커스 베리에 대해서만큼은 별로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s> 7라운드까지 팀은 무패로 리그 선두를 질주했다. 그러나 전반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헤어날 수 없는 부진이 시작되었고, 결국 HSV는 시즌을 7위로 마감하며 6년 만에 대외컵 진출에 실패하였다. 또한 [[UEFA 유로파 리그]]에서도 결승전이 홈 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만큼 많은 팬들의 기대를 끌어모았으나, 4강에서 [[풀럼 FC]](Fulham FC)에 패하며 탈락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실망스러운 행보 속에서 당연하게도 [[브루노 라바디아|라바디아]]는 시즌 중에 경질되었다. 이처럼 실망스런 한 해를 보낸 HSV에서는 이사진에서부터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독단적 판단과 투명성 부족한 경영으로 팀의 위기를 초래한 베른트 호프만 운영이사회장은 거센 내부적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결과 공석이던 단장 자리에는 [[바스티안 라인하르트]](Bastian Reinhard)가 새로 부임했으며, 감독으로는 2006-07 시즌 [[VfB 슈투트가르트]]의 우승을 견인했던 [[아어민 페]](Armin Veh)가 선임되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이제 막 선수 생활을 마친 초짜였으며, 페 역시 최근 두 시즌 동안 [[VfB 슈투트가르트|슈투트가르트]]와 [[VfL 볼프스부르크|볼프스부르크]]에서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전히 불안 요소는 남아 있었다. 한편, 동시에 이 무렵은 세계적인 운송회사 <i>퀴네+나겔</i>(Kühne + Nagel)의 회장인 억만장자 클라우스-미하엘 퀴네(Klaus-Michael Kühne)가 본격적으로 후원자라는 명목으로 HSV의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시점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HSV의 팬이었던 그는 2010년, 총 1,250만 유로의 금액을 투자하여 [[마르첼 얀젠]](Marcell Jansen), [[파올로 게레로]](Paolo Guerrero), [[데니스 아오고]](Dennis Aogo), [[하이코 베스터만]](Heiko Westermann), [[데니스 디크마이어]](Dennis Diekmeier) 등 일부 선수들의 지분 1/3을 사들였다. 비록 당시 퀴네는 자신은 그저 팀을 도우려는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이렇게 시작된 그와의 관계는 훗날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오게 된다. 성적 부진은 2010-11 시즌에도 이어졌다.<ref>이 시즌은 U-19 팀에서 활약하던 손흥민이 처음 1군에 올라와 프로 무대에 데뷔한 시즌이기도 하다.</ref> 전술한 [[하이코 베스터만|베스터만]]과 [[데니스 디크마이어|디크마이어]]에 강등된 [[헤르타 BSC]]의 주축이었던 [[야로슬라프 드로브니]](Jaroslav Drobný)와 [[고이코 카차르]](Gojko Kacar) 등에 이르기까지 착실한 선수 보강을 이루었으나, 정작 성적은 여전히 중위권을 맴돌았고, 특히 수비 쪽에서는 줄부상이 이어지며 중앙 미드필더인 카차르가 센터백으로 출전하는 상황까지도 자주 연출되었다. 결국 이처럼 어수선한 분위기 하에서 [[아어민 페]]는 2011년 3월 13일, [[FC 바이에른 뮌헨|바이언]]에 0:6으로 참패한 후 조기 경질되었고, 수석코치였던 [[미하엘 외닝]](Michael Oenning)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또한 3일 뒤에는 맹렬한 비판에 시달리던 베른트 호프만이 퇴진하고 감독위원회 소속이던 칼-에드가 야르호프(Carl-Edgar Jarchow)가 신임 운영이사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정리하자면, 2010-11 시즌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고, HSV는 8위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또 다시 대외컵 진출에 실패했다. 그해 재정 손실은 거의 5백만 유로에 근접했다. [[파일:Frank Arnesen.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HSV 몰락의 원흉이 된 프랑크 아르네센]] [[프랑크 아르네센]](Frank Arnesen)은 이렇게 무너져 가던 HSV를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수렁 속에 완전히 가두어 버린 인물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적시장에서 막대한 금액을 쏟아붓고, 그 과정에서 기업가 퀴네까지 끌어들여야 했던 HSV는 정상적인 팀 운영을 위해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이에 2011년 2월, 과거 [[첼시 FC]]에서 유소년 정책을 담당했던 아르네센을 다음 시즌 단장으로 선임함으로써 유망주 육성을 통한 구단 건전성 회복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아르네센이 제1의 목표로 삼은 것은 물론 세대교체였다. 그는 이를 위해 주전과 비주전을 막론하고 고액 주급을 받던 다수의 베테랑들을 거침없이 내보냈는데, 그 결과 [[프랑크 로스트]], [[기 데멜]], [[뤼트 판 니스텔로이]], [[제 호베르투]] 등이 자유 계약으로 팀을 떠났고, 수비의 구심점이었던 [[요리스 마타이센]] 역시 175만 유로라는 헐값에 [[말라가 CF]]로 이적했다. 또한 [[에릭 막심 추포-모팅]](Eric Maxim Choupo-Moting)을 비롯해 기대만큼의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던 유망주들도 대거 팀을 떠나야 했으며, 이러한 공백은 모조리 [[첼시 FC|첼시]]에서 영입된 유망주들로 채워졌다. [[마이클 만시엔]](Michael Mancienne), [[괴칸 퇴레]](Gökhan Töre), [[야코포 살라]](Jacopo Sala), 그리고 임대생인 [[제프리 브루마]](Jeffrey Bruma)와 8월 말에 뒤늦게 합류한 [[슬로보단 라이코비치]](Slobodan Rajkovic)에 이르기까지 총 다섯 명의 첼시 유망주들이 이 시기 HSV의 유니폼을 입었다.<ref>더욱이 아르네센은 단장 재직 당시 선수 영입 과정에서 뒷돈을 챙기면서 팀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카더라 소식통으로 알고 있을 뿐, 정확히 확인한 바가 없기 때문에 본문에 적지 않았다.</ref> 그러나 2011-12 시즌이 시작되자 유망주는 어디까지나 유망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첼시에서 온 유망주들은 시즌 초반부터 파격적일 만큼 전폭적인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정작 그에 걸맞는 활약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특히 [[마이클 만시엔|만시엔]]과 [[제프리 브루마|브루마]]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수비력을 과시하며 순식간에 팬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팀 순위는 문자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6라운드까지 팀은 1무 5패라는 참혹한 성적을 기록하며 꼴찌에 머물렀고, [[미하엘 외닝|외닝]] 감독은 경질되었다.<ref>외닝은 HSV 감독으로서 리그에서 14전 1승 6무 7패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하였고, 이후 4년 반 동안 그 어떤 팀의 부름도 받지 못한 채 전설(?)로 남았다. 참고로 그가 거둔 1승은 감독 데뷔전인 쾰른과의 홈 경기였다. 즉, 그는 이후 13전 연속 무승을 기록했던 것이다.</ref> 이후 소방수로 선임된 [[토어스텐 핑크]](Thorsten Fink) 감독 하에서 HSV는 15위로 간신히 강등을 면하기는 했으나, 이는 분데스리가 역사상 팀이 기록한 최악의 성적에 해당했다. 더욱이 팀은 벌써 세 시즌째 유럽 대항전 진출에 실패했으며, 부채는 이제 무려 2,800만 유로에 육박했다. 2012-13 시즌에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DFB-포칼]]에서는 1라운드에서부터 3부 리그 소속의 [[칼스루헤 SC]](Karlsruher SC)에 2:4로 패하며 탈락했고, 리그에서도 첫 경기부터 형편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1. FC 뉘른베르크|뉘른베르크]]에 홈에서 패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또 다시 클라우스-미하엘 퀴네였다. 팀은 그의 투자에 힘입어 [[라파엘 반 더 바르트|반 더 바르트]]를 1,300만 유로에 다시 데려왔으며, <s>또 너냐...</s> 그밖에도 [[밀란 바델리]](Milan Badelj), [[페트르 이라첵]](Petr Jirácek)을 이적시장 마감 직전에 영입하였다. 리빌딩을 하고자 공격적으로 투자를 했지만 오히려 성적이 추락하면서 결국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름 이적시장에서 2,05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승점 3점 차이로 7위에 머무르며 또 다시 유로파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s>사실 이마저도 골키퍼 [[레네 아들러]](René Adler)의 갓들러 모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성적이었다.</s> 당연히 사태의 원흉이었던 프랑크 아르네센 단장은 해임되었고, 부채는 6천만 유로 가까이 치솟았다. 팀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단순 투자자로 남겠다던 퀴네는 2012년 여름에 이미 독자적으로 [[라파엘 반 더 바르트|반 더 바르트]] 영입을 추진했던 데 이어 2013년에도 [[토어스텐 핑크|핑크]] 감독의 해임을 요구하면서 이사회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펠릭스 마가트]]와 접촉하는 등 점차 노골적으로 구단 운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칼-에드가 야르호프가 이끄는 운영이사회는 그런 퀴네의 입김에 끌려다니며 우왕좌왕했고, 신중한 재정 관리와 장기적인 관점을 모토로 내걸었으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편, 아르네센의 후임으로는 [[올리버 크로이처]](Oliver Kreuzer)가 새로운 단장으로 선임되었으나, 부족한 경력 탓에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2013-14 시즌은 출반부터 삐걱거렸다. 시즌 5라운드가 종료된 상황에서 구단은 15위까지 떨어졌고, [[토어스텐 핑크|핑크]] 감독은 야심차게 데려온 애재자 [[자크 주아]](Jacques Zoua)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퀴네가 염원하던 대로 경질되었으며, 약 일주일 뒤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에 올려놓았던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Bert van Marwijk)가 새 감독으로 팀에 합류했다. 반 마르바이크의 지도 하에 HSV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났다. U-19 팀에서 콜업된 [[요나탄 타]](Jonathan Tah)가 단숨에 주전 센터백으로 발돋움했으며, 신입생 [[피에르-미헬 라조가]](Pierre-Michel Lasogga)와 임대에서 복귀한 [[하칸 찰하놀루]](Hakan Çalhanoğlu)가 발군의 활약을 보이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요나탄 타|타]]는 전반기 이후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고, [[막시밀리안 바이스터]](Maximilian Beister)와 [[슬로보단 라이코비치]](Slobodan Rajković)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등 스쿼드 전체에 부상이 들끓은 결과 성적은 수직하락했다. 특히 20라운드 [[헤르타 BSC]]와의 홈 경기에서는 0:3의 스코어로 역사적인 6연패를 기록하자 분노한 팬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주차장에 모인 300여명의 팬들은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야르호프 운영이사회장과 크로이처 단장, 그리고 선수들이 직접 나서서 팬들을 진정시키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계란과 쓰레기만 날아올 뿐이었다.<ref>빌트(Bild)지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주아는 팬이 던진 무엇인가에 맞고 울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벤피카에서 임대되어 온 [[올라 존]](Ola John)은 <s>눈치 없이</s> 차를 타고 유유히 떠나려다 팬들에게 둘러싸여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ref> 이에 감독이사회는 이튿날 비공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어 현 운영이사회와 감독의 신임 여부에 대해 토의를 벌였고, 비록 당장에는 재신임이 결정되었으나, 이어진 [[FC 바이에른 뮌헨|바이언]]과의 [[DFB-포칼]] 4강전과 리그 21라운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원정에서 모두 패하자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 감독은 마침내 경질되었다. 당시 언론들은 이때를 구단 역사상 최악의 위기로 일컬었다. 반 마르바이크 경질 직후 HSV는 발 빠르게 [[하노버 96]]에서 해임된 [[미르코 슬롬카]](Mirko Slomka)를 그 후임으로 선임하였다. 비록 첫 경기에서 슬롬카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홈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산뜻한 출발을 했지만, 30라운드부터는 선수단의 줄부상 속에 마지막 다섯 경기를 모두 패하며 27점으로 16위를 기록했고, 팀은 가까스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다.<ref>29라운드가 끝난 상황에서 강등권인 17위 뉘른베르크는 26점, 브라운슈바이크는 25점으로 승점 차이가 간당간당한 상황이었으나, 남은 다섯 경기를 세 팀이 나란히 모두 전패로 기록하면서 극적으로 HSV는 16위를 유지하였다.</ref> 다행히 여기에서 [[피에르-미헬 라조가|라조가]]의 득점에 힘입어 팀은 원정 팀 다득점 원칙에 따라 [[SpVgg 그로이터 퓌어트]](SpVgg Greuther Fürth)를 꺾고 분데스리가에 잔류할 수 있었지만, 그 시즌 HSV의 승점이었던 27점은 승리팀이 승점 3점을 차지하는 규정이 도입된 이래 분데스리가에서 잔류한 구단이 확보했던 가장 낮은 점수에 해당했다. [[파일:Rickhoff.jpg|300픽셀|섬네일|왼쪽|HSVPlus를 발의한 에른스트-오토 리크호프]] 이처럼 HSV에게 2013-14 시즌은 절체절명의 위기의 시기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개혁의 시기이기도 했다. 2013년 9월, 에른스트-오토 리크호프(Ernst-Otto Rickhoff) 전 감독이사회장은 <i>HSVPlus</i>라는 급진적인 개혁안을 발의했는데, 이는 프로 축구 분과를 전체 법인에서 독립된 주식회사로 스핀오프함으로써 구단 운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고, 동시에 총회의 동의 없이도 25% 미만에 해당하는 주식회사의 지분을 판매함으로써 부족한 자금을 유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였다. 물론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위르겐 훈케(Jürgen Hunke) 전 회장, 레전드 [[만프레트 칼츠]] 등 구단 내외의 일부 저명인사들은 이를 전통을 무시하고 영혼을 파는 행위라며 비판하였는데, 사실 이와 같은 비판에는 보다 근본적인 다른 이유가 있었다. <i>HSVPlus</i> 그 자체는 상당히 획기적인 대안이었으나, 그 배후에는 다름 아닌 클라우스-미하엘 퀴네가 있었고, 이들 반대자들은 바로 이 퀴네에 의해 구단이 좌지우지되는 비극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2014년 1월 기준으로 법인의 부채가 무려 1억 유로에 육박할 만큼 사태가 심각했기 때문에 다수는 <i>HSVPlus</i>를 지지하였다. <s>못 먹어도 일단 고!</s> 결국 7,134명이 참가한 2014년 1월 19일의 정기 총회 표결에서 79.4%의 동의를 받아 운영이사회는 향후 <i>HSVPlus</i>의 실행을 위한 준비 과정을 위임받게 되었으며, 이어진 5월 25일의 총회에서 <i>HSVPlus</i>는 9,702명의 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86.9%의 지지를 받아 최종 통과되었다. <ref>1월 총회 당시 HSVPlus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이를 좌절시키기 위해 보다 온건한 대안적 개혁 모델로서 "전통과 함께하는 미래"(Zukunft mit Tradition", "라우테의 심장"(Rautenherz) 등을 제안하였으나 실패하였고, 5월 총회를 앞두고는 이들 반(反) HSVPlus 세력들이 위르겐 훈케 전 회장을 중심으로 규합하여 "HSV 알리안츠"(HSV-Allianz)라는 또 다른 개혁안을 추진한 바 있었다.</ref> 이 개혁의 결과 프로 축구 분과는 HSV 전체 법인을 최대 주주로 하는 HSV 축구 주식회사(HSV Fußball AG)로 독립하였고, 이와 동시에 기존의 운영이사회는 해임되었다. 칼-에드가 야르호프를 대신할 새 운영이사회장으로는 2000년대 단장으로서 팀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디트마 바이어스도르퍼]]가 선출되었고, 페터 크내벨(Peter Knäbel)이 새 단장으로 임명되어 올리버 크로이처의 자리를 대신했다. 또한 유소년 정책을 담당할 '스포츠 관리자'(Direktor Sport)라는 새로운 직책에는 베른하르트 페터스(Bernhard Peters)가 임명되었다. 한편, 감독이사회장으로는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칼 게르난트(Karl Gernandt)가 이름을 올렸는데, 그는 <i>퀴네+나겔</i> 사의 행정이사회(Verwaltungsrat) 회장직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퀴네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다. 어찌되었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로써 HSV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