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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le:Horyuji chumon architecture.jpg|thumb|호류지 중문(法隆寺 中門)<br />기와가 얹어져 있다.]] | ||
일본의 전통건축물은 한반도, 중국의 건축 양식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았다. 대들보<ref>후에 일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ref>, 공포, 기와 등의 구조는 고대 일본의 건축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몇몇 건축물은 아예 백제나 고구려 출신 도래인들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당시 건축 기술은 한반도와 중국이 매우 앞서 있었다. 중세 일본에 접어들어 국풍 문화를 강조하면서 대륙의 기와를 얹은 지붕보다 노송나무 껍질을 벗겨 올린 화풍의(일본 고유의) 지붕(히와다부키)이 더 높게 평가되었다. 그로 인해 현재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상당한 수의 전통 건축물의 지붕들은 나무 껍질이 얹어져 있다. 대형 건축에서도 쓰였는데 이는 중국이나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이다. 고대 일본의 절이나 건축물은 기와가 얹어져 있는데 이즈모타이샤<ref>이즈모 신사</ref> 같은 건물을 보면 거의 다 히와다부키가 얹어져 있다. 물론 | 일본의 전통건축물은 한반도, 중국의 건축 양식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았다. 대들보<ref>후에 일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ref>, 공포, 기와 등의 구조는 고대 일본의 건축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몇몇 건축물은 아예 백제나 고구려 출신 도래인들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당시 건축 기술은 한반도와 중국이 매우 앞서 있었다. 중세 일본에 접어들어 국풍 문화를 강조하면서 대륙의 기와를 얹은 지붕보다 노송나무 껍질을 벗겨 올린 화풍의(일본 고유의) 지붕(히와다부키)이 더 높게 평가되었다. 그로 인해 현재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상당한 수의 전통 건축물의 지붕들은 나무 껍질이 얹어져 있다. 대형 건축에서도 쓰였는데 이는 중국이나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이다. 고대 일본의 절이나 건축물은 기와가 얹어져 있는데 이즈모타이샤<ref>이즈모 신사</ref> 같은 건물을 보면 거의 다 히와다부키가 얹어져 있다. 물론 | ||
히와다부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 뿐이지 기와가 얹어져 있는 건물들도 많이 있다. | 히와다부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 뿐이지 기와가 얹어져 있는 건물들도 많이 있다. | ||
[[ | [[File:Horyuji chumon warizuka.jpeg|thumb|'ㅅ'자 모양의 구조는 화반이라고 하는데 고구려 고분 벽화나 중국 고대 건축에서도 볼 수 있는 구조. 나중에 사라진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지기도 하고 일자형 기둥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 ||
한국은 서까래가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있고(선자연) 일본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평연)<ref>중국은 마족연. 선자연과 평연의 중간.</ref>. 지붕은 또한 무거워보이지만 한국처럼 안에 진흙을 넣지 않고 나무만 있거나 텅 비어있어 생각보단 덜 무겁다. 에도시대에 이르면 당시 한국이나 중국에서의 공포는 아직도 엄청 중요한 구조인 것에 비해 일본은 공포의 역할이 축소되고 무게를 받치는 구조를 지붕에도 넣어주어 부담을 줄여준다. 겉으로 나온 공포는 역할이 축소되었다. | 한국은 서까래가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있고(선자연) 일본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평연)<ref>중국은 마족연. 선자연과 평연의 중간.</ref>. 지붕은 또한 무거워보이지만 한국처럼 안에 진흙을 넣지 않고 나무만 있거나 텅 비어있어 생각보단 덜 무겁다. 에도시대에 이르면 당시 한국이나 중국에서의 공포는 아직도 엄청 중요한 구조인 것에 비해 일본은 공포의 역할이 축소되고 무게를 받치는 구조를 지붕에도 넣어주어 부담을 줄여준다. 겉으로 나온 공포는 역할이 축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