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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는 휴머니즘을 [[비판]]했다. 알튀세르 생전 서구에서는 휴머니즘적 맑스주의가 대세였다. 왜냐하면 당시 서구 맑스주의자는 비인간적 맑스주의인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적 맑스주의자는 인간의 소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인간이라는 모호한 말로 자본가와 노동자를 하나로 묶는 이데올로기로서 휴머니즘이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휴머니즘은 사회변혁에 도움이 되기보다 맑스주의자에게 스스로 인간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자부심만을 느끼게 한다. 알튀세르는 [[공산당선언]] 이전 마르크스를 ' |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는 휴머니즘을 [[비판]]했다. 알튀세르 생전 서구에서는 휴머니즘적 맑스주의가 대세였다. 왜냐하면 당시 서구 맑스주의자는 비인간적 맑스주의인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적 맑스주의자는 인간의 소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인간이라는 모호한 말로 자본가와 노동자를 하나로 묶는 이데올로기로서 휴머니즘이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휴머니즘은 사회변혁에 도움이 되기보다 맑스주의자에게 스스로 인간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자부심만을 느끼게 한다. 알튀세르는 [[공산당선언]] 이전 마르크스를 '젊은 마르크스'라고 부르며 휴머니즘은 젊은 마르크스에게만 해당되는 사상이라고 했다. | ||
휴머니즘의 어원부터가 '보다 인간다움'이기 때문에 [[우생학]]에 이용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인간의 현재 상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더 인간다움을 추구해서 우생학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 휴머니즘의 어원부터가 '보다 인간다움'이기 때문에 [[우생학]]에 이용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인간의 현재 상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더 인간다움을 추구해서 우생학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