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以信稱義 믿음으로서 옳다고 칭함 [기독교]의 교리 중 하나. 주로 [로마서]나 [사도 바울]의 서간에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주제이...)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3번째 줄:
믿음으로서 옳다고 칭함
믿음으로서 옳다고 칭함


[기독교]의 교리 중 하나. 주로 [로마서]나 [사도 바울]의 서간에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주제이다.
[[기독교]]의 교리 중 하나. 주로 [[로마서]]나 [[사도 바울]]의 서간에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주제이다.


간단히 요약하여 말하자면  
간단히 요약하여 말하자면  
17번째 줄: 17번째 줄:
개신교는 가톨릭을 행위구원론자들<ref>당연히 아니다. 주로 연옥교리 때문에 엮어서 까이는데, 엄밀히 말해 "신앙이 없어도 선한 행동을 하면 구원받는다" 는 것은 가톨릭의 교리가 아니다.(가톨릭 교인들도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애초에 모든 선함이 곧 신에게서 나오므로,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곧 양심=신을 닮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표현되지 않았을 뿐 신에 대한 신앙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선행과 신앙이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이다. 굳이 연옥교리를 들먹일 필요가 없는게, 연옥교리는 교도권으로 명해진 교리가 아니고 신학의 한 설일 뿐이기 때문에 믿어도 안 믿어도 되는, 어디까지나 권고되는 사항일 뿐이다. 당연히 이신칭의나 구원론 같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끼워넣어 해석할 필요가 없다.</ref>이라며 까고, 가톨릭이나 무신론자들은 개신교를 신앙과 선행을 분리하여 신의 이름에 먹칠한다<ref>이신칭의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진짜 이렇게 되기도 한다.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신앙이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 문제는 일부에서 정말로 이렇게 주장한다(...) 당연히 택도 없는 소리. 선한 행동=율법에 얽메이지 말라는 말이지 진짜 악행을 저질러도 신앙만 있으면 천국 하이패스라는 소리가 아니다! 당장 예수부터도 마태복음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더라도 그 때(종말)가 오면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며 똑바로 살라고 경고하고 있다(...)</ref>고 까기도 한다(...)
개신교는 가톨릭을 행위구원론자들<ref>당연히 아니다. 주로 연옥교리 때문에 엮어서 까이는데, 엄밀히 말해 "신앙이 없어도 선한 행동을 하면 구원받는다" 는 것은 가톨릭의 교리가 아니다.(가톨릭 교인들도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애초에 모든 선함이 곧 신에게서 나오므로,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곧 양심=신을 닮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표현되지 않았을 뿐 신에 대한 신앙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선행과 신앙이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이다. 굳이 연옥교리를 들먹일 필요가 없는게, 연옥교리는 교도권으로 명해진 교리가 아니고 신학의 한 설일 뿐이기 때문에 믿어도 안 믿어도 되는, 어디까지나 권고되는 사항일 뿐이다. 당연히 이신칭의나 구원론 같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끼워넣어 해석할 필요가 없다.</ref>이라며 까고, 가톨릭이나 무신론자들은 개신교를 신앙과 선행을 분리하여 신의 이름에 먹칠한다<ref>이신칭의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진짜 이렇게 되기도 한다.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신앙이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 문제는 일부에서 정말로 이렇게 주장한다(...) 당연히 택도 없는 소리. 선한 행동=율법에 얽메이지 말라는 말이지 진짜 악행을 저질러도 신앙만 있으면 천국 하이패스라는 소리가 아니다! 당장 예수부터도 마태복음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더라도 그 때(종말)가 오면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며 똑바로 살라고 경고하고 있다(...)</ref>고 까기도 한다(...)


근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 개신교나 가톨릭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신(과 믿음) 없이는 구원도 없는 것이 맞고, 신앙이 있다고 악행을 마구 저질러도 구원받는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근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 개신교나 가톨릭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신(과 믿음) 없이는 구원도 없는 것이 맞고, 신앙이 있다고 악행을 마구 저질러도 구원받는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당장 양측 모두에서 인정하는 신약 중 야고보서 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 듣기만 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며 깐다.


당장 양측 모두에서 인정하는 신약 중 야고보서 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 듣기만 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며 깐다.
<references/>

2015년 4월 24일 (금) 02:16 판

以信稱義

믿음으로서 옳다고 칭함

기독교의 교리 중 하나. 주로 로마서사도 바울의 서간에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주제이다.

간단히 요약하여 말하자면

"선한 행동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기 때문에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라는 것. 물론 이 구원과 선한 행동 모두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사실 신학적인 문제는 이보다 복잡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 개신교와 가톨릭(혹은 무신론자들)이 서로 오해하는 부분이라는 것.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사건이랄지.

개신교는 가톨릭을 행위구원론자들[1]이라며 까고, 가톨릭이나 무신론자들은 개신교를 신앙과 선행을 분리하여 신의 이름에 먹칠한다[2]고 까기도 한다(...)

근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 개신교나 가톨릭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신(과 믿음) 없이는 구원도 없는 것이 맞고, 신앙이 있다고 악행을 마구 저질러도 구원받는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당장 양측 모두에서 인정하는 신약 중 야고보서 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 듣기만 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며 깐다.

  1. 당연히 아니다. 주로 연옥교리 때문에 엮어서 까이는데, 엄밀히 말해 "신앙이 없어도 선한 행동을 하면 구원받는다" 는 것은 가톨릭의 교리가 아니다.(가톨릭 교인들도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애초에 모든 선함이 곧 신에게서 나오므로,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곧 양심=신을 닮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표현되지 않았을 뿐 신에 대한 신앙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선행과 신앙이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이다. 굳이 연옥교리를 들먹일 필요가 없는게, 연옥교리는 교도권으로 명해진 교리가 아니고 신학의 한 설일 뿐이기 때문에 믿어도 안 믿어도 되는, 어디까지나 권고되는 사항일 뿐이다. 당연히 이신칭의나 구원론 같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끼워넣어 해석할 필요가 없다.
  2. 이신칭의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진짜 이렇게 되기도 한다.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신앙이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 문제는 일부에서 정말로 이렇게 주장한다(...) 당연히 택도 없는 소리. 선한 행동=율법에 얽메이지 말라는 말이지 진짜 악행을 저질러도 신앙만 있으면 천국 하이패스라는 소리가 아니다! 당장 예수부터도 마태복음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더라도 그 때(종말)가 오면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며 똑바로 살라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