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 최신판이 아닙니다. 이 문서의 오래된 판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저장하면, 이 판 이후로 바뀐 모든 편집이 사라집니다. 로그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분류:한국사]] 乙未事變 {{인용문2|여우사냥이 성공했다. 이제 조선은 우리 것이 되었다. - [[미우라 고로]]}} == 개요 == [[1895년#8월|1895년 8월]] 일본공사 미우라 일당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으로서 [[전범국|일제]]의 [[조선]] 침략 의도가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 배경 ==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서 내정개혁(소위 '[[갑오개혁]]')을 강요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조선 조정은 [[1895년#8월|1895년 8월]]에 [[민영환]]을 주미 전권공사로 등용하는 동시에 친일계인 [[어윤중]]·[[김가진]] 등을 [[면직]]시키고 [[이범진]]·[[이완용]] 등 [[친러파]]를 기용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손잡고 [[친일파]]의 거두 [[박영효]]를 축출하였다. 이로써 제3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됐는데 조정은 친미·친러파가 주축이 되었고 이들은 [[명성황후]]와 가까운 사이였다. 이렇게 조정에서 친일파들이 몰락하자 위협을 느낀 [[일본]]은 급기야 그 해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사건, 즉 '을미사변'을 강행하였다. ==사건의 전개== [[1895년]] [[10월 8일]] 새벽 [[도쿄대]] 출신 등 온갖 우익 엘리트 출신으로 구성된 암살단이 낭인으로 변장하고 일본 공사관 수비대와 [[우범선]]이 이끌던 훈련대와 함께 경복궁에 잠입했다. [[광화문]]에 다다른 이들은 미국인 지휘관인 윌리엄 다이가 이끄는 시위대를 맞았는데 시위대는 용감히 싸웠으나 무기가 꾸져서 개처발리고 조선 정부를 배신한 훈련대의 원래 대장이었던 [[홍계훈]]이 달려와 이들을 꾸짖었으나 일본군에게 살해당한다.<s>근데 영화에선 용감히 싸우다 전사...</s> 시위대를 몰아낸 훈련대는 [[흥선대원군]]이 <s>감금된</s>거처하던 건녕전 앞 뜰에 모여 대기탔고, 낭인들은 건청궁으로 몰려가서 명성황후를 찾으며, 닥치는 대로 궁녀들을 잡아 행방을 캐물으며 머리채를 쥐어잡고 마구 구타를 가했다.<ref>독립문 등을 설계한 사바친(A I S Sabatin)은 “마루는 20~25명의 양복 차림 일본인들이 일본도로 무장한 채 점거하고 있었고, 그들은 방의 안팎으로 뛰어다니며 여인들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나와 마루 아래로 내던져 떨어뜨리고 발로 걷어찼다.”라고 증언하였다. [http://mnews.joins.com/article/3924507#home 을미사변 목격했던 조선 최초의 서양인 건축가 사바친], 중앙일보, 2009.12.16.</ref> 결국 건청궁 곤녕합에서 낭인들은 명성황후를 찾아냈다. 이 긴박한 상황에 뜬금없이 멋있는 모습을 보여준 충신은 궁내부 대신 [[이경직]]이었는데 스스로 두 팔을 벌려 명성황후를 죽이려는 걸 가로막다 총을 맞고 쓰러진 후 신문기자 히라야마 이와히코(平山岩彦)에게 한쪽 팔이 잘리고, 또다른 한쪽 팔도 잘리고, 결국 허리까지 베이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후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에게 끌려나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낭인들은 명성황후를 집단강간하다 토막살낸것도 모자라 불에 태워버리는 등 제대로 [[고인드립]]을 시전했다.<ref>본문과 달리 일본인들이 살해 후 범하였다는 견해도 있다.</ref> 한편, 명성황후의 직접적인 시해범이 누구인지도 문제되는데, 종전에는 한 일본 낭인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학계에서는 '우치다 사신'을 근거로 일본군 경성수비대 장교였던 '''미야모토 다케타로 소위'''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f>[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50623120300005&mobile "명성황후 시해범은 일본군 미야모토 소위"], 연합뉴스, 2015.6.23.</ref> == 결과 ==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은 사실상 [[고종]]을 [[경복궁]]에 [[감금]]하다시피 하였다. 이에 고종은 김홍집에게 지시하여 왕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당하였음을 공포하도록 하여 이른바 [[을미의병]]을 일으킨다. 이에 일본군들이 지방으로 이동하자 고종은 [[1896년]] [[2월]] 6일, [[러시아]] 대사관으로 대피하게 되는데, 이를 [[아관파천]]이라 한다. == 명성황후 생존설 == 정상수 한국방송통신대 통합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2013년,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4개월 뒤 명성황후가 살아 있다는 내용을 담은 독일 외교비밀문서와 을미사변 때 탈출했다고 기록한 영국 문서를 각각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와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았다”고 밝혔다.<ref>[http://m.khan.co.kr/view.html?artid=201307010600035#csidx3fbb75b49b8708ca2210f040b532fe8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생존” 외교문서 발견], 경향신문, 2013.7.1.</ref> 정상수 교수는 러시아 대사관에서 조기 게양을 거부한 사실을 들어명성황후가 살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하였다.<ref>[http://mnews.sbs.co.kr/news/endPage.do?newsId=N1001862917 방통대 정상수 교수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당시 시해당하지 않았다"], SBS뉴스, 2013.7.2.</ref> 이에 대하여 소설가 김진명 씨는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당시 '''분명히 사망'''하였을 것이라며, 에조 보고서에 살해 정황 및 살해 이후 침입자들의 만행까지 자세히 나와 있고, 독일 및 영국의 해당 문서는 심지어 일제의 만행을 덮기 위한 의도가 있음을 의심해볼 수도 있는, 당시의 소문을 적은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하였다.<ref>[http://mnews.joins.com/article/11985410#home 김진명 "명성황후 생존? 일제가 잔혹 살해한 것이 진실"], 중앙일보, 2013.7.4.</ref> 학계에서는 위 문서 내용의 진위를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나, 정설(살해설)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주류의견이라고 한다.<ref>[http://m.pub.chosun.com/mobile/news/view.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61021586&nidx=21587 인물로 본 한국 외교사-고종의 정치외교 대리인, 명성황후], 조선일보, 2016.10.10.</ref> == 매체에서의 을미사변 == * 성악가 조수미의 '나가거든' 이라는 노래가 을미사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역시 을미사변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주석}}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각주 (원본 보기) (준보호됨)틀:인용문2 (원본 보기) (준보호됨)틀:주석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