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컨택트(arrival)

Caeruleum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16일 (토) 14:37 판 (일상과학 WiKi - wikidok>dailysciences | 컨택트(arrival)(http://ko.experiments.wikidok.net/컨택트(arr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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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에 생각을 많이 해야하는 SF 영화 하나가 개봉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SF라는 소개문구에 걸맞게 '언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영화로 평론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영화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중심으로 내세워 영화를 전개하며 급기야는 인간인식의 한계를 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SF영화인만큼 이 영화 속에는 다양한 과학적 이론들이 숨겨져 있는데 (때로는 대놓고 등장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피어-워프 가설[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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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축이자 영화 속이나 테드 창의 단편 소설 모음집<당신 인생의 이야기 中 네 인생의 이야기>대놓고 등장하는 '가설'중 하나이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서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있는 '가설' 중 하나인데 안타깝게도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으며 반론도 만만치 않은 가설이다. <사피어-워프 이론>이 아닌 <사피어-워프 가설>인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반 정도는 맞다카더라.

일단 이것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

라는 생각인데 더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의 생각의 한계를 부여한다는 말이다.

이를 주장한 사람은 에드워드 사피어와 그의 제자 벤자민 워프로 이들이 처음 이러한 생각은 한 것은 아니다. 언어가 사고를 만든다라는 생각은 6세기의 인도에 살던 시인 바르트리하리가 먼저 했었고 인도에서 꾸준히 논의가 된 아이디어이다.

사실 사피어-워프라고 이름이 붙여져는 있지만 언어가 생각을 만들어낸다는 대담한(?)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거의 제자인 워프가 그 생각을 발전시켜 이러한 가설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후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대놓고 언급되기도 하는 등 각종 SF의 소재가 되며 좋은 떡밥이 되었다.

아무튼 워프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게 된다.

첫째, 언어학적 상대성: 언어간의 구조적 차이는 내재된 비언어적 인지체계의 차이를 반영한다.

둘째, 언어적 결정론: 언어의 구조가 그 사람의 세계관을 결정한다.

첫번째 주장은 무지개의 색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무지개가 몇가지 색으로 보이느냐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어에는 일곱가지 색으로 표현하지만 미국은 여섯 개, 독일은 다섯 개라고 말한다.

두번째 주장은 워프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데 워프는 원래 화재예방기사였다. 그는 빈 드럼통에 담배꽁초를 던져 폭발사고를 일으킨 노동자의 사례를 보면서, 그 노동자의 세계에서는 가스의 양과는 관련없이 full과 empty로 이루어진 가스통만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실제로 그 주변의 노동자는 full과 empty말고는 다른 형용사로 가스통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워프는 또

"각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단 오히려 그 자체가 생각을 형상화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국어가 설정한 한계에 따라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언어적 배경이 비슷하지 않거나 언어적 배경이 어떤 방식으로 측정해질 수없다면 모든 관찰자가 똑같은 물리적 증거에 의해 똑같은 우주의 모습을 갖도록 유도되지는 않는다"

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워프의 가설에 따르면 나바호 인디언의 경우 녹색과 청색을 구분하지 못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나바호의 언어는 녹색과 청색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인데 실험을 한 결과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나바호 인디언들은 이 색들을 구별하는 말이 없다뿐이지 그 둘을 정확하게 구별해내었다.

앞서말한 무지개의 경우에도 독일 사람이 비록 무지개를 다섯개로 표현하지만 물론 그들은 각각의 색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 이렇듯 많은 반박이 있지만 이게 완전히 틀렸다고도 말할 수 없는게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든지 언어적 습관이 우리의 생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다는 증거는 또 없다.

그리하여 언어가 사고를 만들어낸다는 강한 사피어-워프 가설보다는 범주 인식이나 문화적 차이와 같은 약한 의미의 사피어-워프 가설을 설명하려는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논란이 되고있긴하지만 영화에선 훌륭하게 표현되었다. 헵타포드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비선형적 언어가 루이스에게 영향을 끼쳐 루이스 또한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보게 된 것이다. SF적 상상력이 더해져 그야말로 사피어-워프 가설의 표현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페르마의 원리[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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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튄 그 페르마 맞다. 망할 수학 문제 말고도 글로벌한 드립까지 남겼다.

사피어-워프 가설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극을 이끌고 갔다면 페르마의 원리는 영화의 후반부와 반전을 장식한다. 여백의 미를 남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페르마의 원리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페르마의 원리란 다른 말로 최소 시간의 원리라고도 부르며 아래의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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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A에서 B로 갈때 가장 빠른 경로는 무엇일까...라는 문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4번이다. 빛은 매질에 따라 그 속도가 달라지는데 공기중에서는 빠르고 물 속에서는 느려진다. 그렇다면 거리가 허용하는 한계까지 가능한한 공기중에서 이동하는 거리를 늘리는 것이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빛이 마치 의식이 있는 것처럼 언제나 빠른 경로를 택한다는 것이다.

「즉 빛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이미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 페르마의 원리인데 이 원리가 영화에선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영화에서는 대화로 표현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광선은 자신의 정확한 목적지를 알아야 한다. 목적지가 다르다면 가장 빠른 경로도 바뀔테니까."

"빛은 이전의 지점을 향해 출발한 다음 나중에 진로를 수정할 수는 없어. 그런 행위에서 나온 경로는 가장 빠른 경로가 아니니까"

즉 페르마의 원리라는 간단한 개념을 주인공 루이스의 삶에 아예 투영하고 있다. 영화는 루이스의 의미심장한 대사로 끝을 맺는데 이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만약, 당신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알게 된다면 뭔가를 바꾸겠어요?"

라는 대사인데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한 루이스는 마치 페르마의 원리에서 빛이 자신의 경로를 시작하기도 전에 '선택'하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전부 알면서도 선택하게 된다. 이에 따르면 극중 코스텔로가 폭발에 휘말려 '죽음의 과정에 있다.'라는 것도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선택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필히 등장하는 것이 운명론 혹은 결정론인데 고전 물리학에선 이미 이 개념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라플라스의 악마[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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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악마는 프랑스의 수학자였던 라플라스가 1814년에 한 에세이를 쓰면서 생각해낸 가상의 개념, 혹은 사고 실험의 일종으로 양자역학이 태동하기 전의 고전 물리학에서만 가능한 존재이다. 악마라는 것은 라플라스의 개념을 이용해 후대의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며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

그 당시(아니 지금도)에는 뉴턴의 세 가지 법칙은 엄청나게 강력했으며 모든 물체, 입자는 F=ma로 움직였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물리법칙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즉 지금 이 위키를 읽고 있는 행위도 137억년 전 빅뱅이 일어난 순간 정해졌다고 보는 극단적인 결정론 중 하나이다.

물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1927)에 의해서 이 악마는 완전히 박살났지만 라플라스는 그로부터 100여년 전 사람임을 염두에 둬야한다.

컨택트의 결말에 따르면 우주에 라플라스의 악마가 되살아난 것처럼 보인다. 요즘들어 친숙한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는 평행우주론을 차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이유는 3000년 후에 인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인류에게 언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당장 지금부터 3000년 후의 미래가 모두 정해져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 너머의 미래까지. 그럼 대체 왜 사냐는 질문이 나온다.

여담으로 루이스는 딸인 한나와의 추억을 쌓으며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한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지만 생각해보면 한나입장은 뭐가 되는걸까. 사실 난 암으로 일찍 죽는데 엄만 그 사실을 알아. 엄만 그 사실을 알고도 날 낳았고 내가 고통 속에서 죽는다는 그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아.(?!)

루이스의 입장에선 애달프고 여운이 남는 결말이지만 한나의 입장에선 호러도 이런 호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