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아크리시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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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한 페르세우스는 일련의 여정을 겪은 뒤, 아크리시오스를 보기 위해 아르고스로 떠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크리시오스는 신탁을 두려워 해 아르고스를 떠났다. 그러나 아크리시오스는 결국 라릿사 왕 [[테우타미데스|테우타미데스]]가 벌인 장례 경기에 참가한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었다. 페르세우스는 아크리시오스를 나라 밖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제 손으로 죽인 할아버지의 나라를 물려받기 부끄러워 티린스 왕 [[메가펜테스|메가펜테스]]와 나라를 교환했다고 한다.8 다른 전승에 따르면 페르세우스는 원반을 발명하여, 이를 뽐내다가 실수로 아크리시오스를 죽였다고 한다.9  
장성한 페르세우스는 일련의 여정을 겪은 뒤, 아크리시오스를 보기 위해 아르고스로 떠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크리시오스는 신탁을 두려워 해 아르고스를 떠났다. 그러나 아크리시오스는 결국 라릿사 왕 [[테우타미데스|테우타미데스]]가 벌인 장례 경기에 참가한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었다. 페르세우스는 아크리시오스를 나라 밖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제 손으로 죽인 할아버지의 나라를 물려받기 부끄러워 티린스 왕 [[메가펜테스|메가펜테스]]와 나라를 교환했다고 한다.8 다른 전승에 따르면 페르세우스는 원반을 발명하여, 이를 뽐내다가 실수로 아크리시오스를 죽였다고 한다.9  
후대의 특이한 전승에 따르면, 페르세우스가 세리포스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크리시오스를 직접 세리포스에 찾아갔다고 한다. 세리포스 왕 폴리덱테스는 다나에와 결혼하고 페르세우스를 [[아테나|아테나]] 신전에 보낸 상태였다. 폴리덱테스는 중재를 나섰고, 페르세우스는 아크리시오스를 죽이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이후 아크리시오스가 폭풍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이, 폴리덱테스가 죽었다. 폴리덱테스의 장례 경기에서 페르세우스는 실수로 아크리시오스를 죽였다고 한다.10  
후대의 특이한 전승에 따르면, 페르세우스가 세리포스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크리시오스를 직접 세리포스에 찾아갔다고 한다. 세리포스 왕 폴리덱테스는 다나에와 결혼하고 페르세우스를 [[아테나|아테나]] 신전에 보낸 상태였다. 폴리덱테스는 중재를 나섰고, 페르세우스는 아크리시오스를 죽이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이후 아크리시오스가 폭풍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이, 폴리덱테스가 죽었다. 폴리덱테스의 장례 경기에서 페르세우스는 실수로 아크리시오스를 죽였다고 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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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4일 (목) 18:39 기준 최신판

아르고스 왕조
아바스 ← 선대 아크리시오스 후대 → 페르세우스

아크리시오스 Akrisios, Acrisius / Ἀκρίσιος

파일:/api/File/Real/61f282be78c030d75abf6dc1 다나에를 상자에 들여보내는 아크리시오스, 아테나이 적색상 레키토스, 기원전 5세기

가족 관계 아바스, 아글라이아(부모), 에우리디케(아내), 프로이토스(형제)
관련 지역 아르고스

소개[원본 편집]

아크리시오스는 아르고스의 왕으로, 영웅 페르세우스의 할아버지이다. 아크리시오스는 형제인 프로이토스와는 원수 관계로, 프로이토스와의 전쟁 끝에 형제를 몰아내고 아르고스의 왕권을 차지한다. 그러나 아크리시오스는 아들을 가지지 못하고, 손자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신탁을 두려워 한 아크리시오스는 딸 다나에를 가두지만, 결국 손자 페르세우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아크리시오스는 델포이 암픽티오니아(성역을 관리하기 위한 여러 도시 간의 협의체)를 처음으로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다만 델포이 암픽티오니아를 관리하고, 참여할 도시의 결정, 투표권의 부여 등을 한 첫 인물이라고 한다.1

가계[원본 편집]

부모

아바스+아글라이아 2

연인 및 자식 연인 자식
+에우리디케(또는 아가닙페)

다나에3

에우아레테4 

아크리시오스는 아바스아글라이아의 아들로, 프로이토스의 형제이다. 그는 스파르타 공주 에우리디케(또는 아가닙페)와 결혼하여 딸 다나에를 낳았다. 아크리시오스는 다나에를 통해 페르세우스의 외조부가 되었다. 한편, 오이노마오스의 아내 에우아레테도 아크리시오스의 딸이라고 한다.

신화[원본 편집]

형제 사이의 불화[원본 편집]

아크리시오스와 쌍둥이 형제인 프로이토스는 사이가 좋지 않아,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서로 다투었다. 장성한 아크리시오스와 프로이토스는 왕위를 두고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방패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패배한 프로이토스는 리키아 왕 이오바테스의 장인이 되고, 그의 도움을 얻어 아르고스로 돌아온다. 프로이토스는 티린스를 차지하자 키클롭스들이 티린스의 성벽을 쌓아주었다. 이후 아르고스는 아크리시오스가, 티린스와 미데아는 프로이토스가 다스리게 되었다.5 일설에 따르면 아크리시오스와 프로이토스 간의 불화는 프로이토스가 다나에를 유혹하여 일어났다고 한다.6

다나에와 페르세우스[원본 편집]

파일:/api/File/Real/61f2883a78c030d75abf71be

아크리시오스가 다나에를 상자에 집어넣을 준비를 하고있다. 옆에는 페르세우스를 안은 여인(유모?)이 서 있다. (아테나이 적색상 히드리아, 기원전 5세기)

아크리시오스는 딸 다나에가 있었지만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아크리시오스가 이를 신탁에 물으니, 다나에가 낳은 아들이 아크리시오스를 죽일 것이라 했다. 신탁을 두려워 한 아크리시오스는 다나에를 지하 청동 방에 가두고 감시하게 했다. 그러나 제우스가 황금 소나기로 변해 다나에와 교합했다. 아이가 태어남을 알게 된 아크리시오스는 아이가 제우스의 자식임을 믿지 않고, 다나에와 아이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렸다. 다나에와 아들 페르세우스는 이후 세리포스섬에 닿아 어부 딕티스와 살게 된다.7 장성한 페르세우스는 일련의 여정을 겪은 뒤, 아크리시오스를 보기 위해 아르고스로 떠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크리시오스는 신탁을 두려워 해 아르고스를 떠났다. 그러나 아크리시오스는 결국 라릿사 왕 테우타미데스가 벌인 장례 경기에 참가한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었다. 페르세우스는 아크리시오스를 나라 밖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제 손으로 죽인 할아버지의 나라를 물려받기 부끄러워 티린스 왕 메가펜테스와 나라를 교환했다고 한다.8 다른 전승에 따르면 페르세우스는 원반을 발명하여, 이를 뽐내다가 실수로 아크리시오스를 죽였다고 한다.9 후대의 특이한 전승에 따르면, 페르세우스가 세리포스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크리시오스를 직접 세리포스에 찾아갔다고 한다. 세리포스 왕 폴리덱테스는 다나에와 결혼하고 페르세우스를 아테나 신전에 보낸 상태였다. 폴리덱테스는 중재를 나섰고, 페르세우스는 아크리시오스를 죽이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이후 아크리시오스가 폭풍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이, 폴리덱테스가 죽었다. 폴리덱테스의 장례 경기에서 페르세우스는 실수로 아크리시오스를 죽였다고 한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