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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의 마무리 투수. KBO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으며 별명은 표정변화가 없다 하여 돌부처.


[[분류:야구선수]]
{| class="wikitable"
| colspan="2"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 #FFFF00; color: #000000" | '''<big>오승환</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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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날짜/출력|1982/07/15}}
|-
| 신장 / 체중 || 178cm, 9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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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 [[한신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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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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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번호 || No.22 <del>EE</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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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 / 타 || 우투/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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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신교 || 도신초 - 우신중 - 경기고 - 단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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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입단 || [[2005년]] 드래프트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5번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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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팀 || 2005~2013 삼성 라이온즈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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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의 마무리 투수. <del>경기를 8회까지만 보게하는 사나이</del>
KBO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으며 별명은 표정변화가 없다 하여 돌부처.
 
==아마추어 시절==
고교 1학년은 한서고에서 메이저리거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강속구를 뿌렸지만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었다. 경기고로 전학 후 타자로 전향 했지만 성적이 좋지 못했고, 신인지명에서 선택받지 못했지만 다행히 단국대로 진학하였다. 대학 입학 후 투수로 복귀했지만 또 팔꿈치 인대 에 문제가 생겨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꾸준한 재활로 최고시속 152km를 찍을 정도여서 2005년 신인 2차지명에서 삼성에 1순위로 지명받았다.
그러나 경기고때는 [[이동현]]에 약간 묻히는 경향이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데뷔한 2005년에는 신인에게 마무리를 믿고 맡길 수 없었던건지, <del>쓸만한 투수가 없었던건지</del> 감독이 많이 굴려서 이닝수도 많고 10승이나 된다. <del>이래뵈도 10승 투수</del>
데뷔 4년차까지 2억 4천만원의 연봉을 받는 투수였지만 09년도, 10년도에는 안타깝게도 부상, 구위하락등으로 인하여 부진하였다. 그러나 09년도, 10년도를 제외한다면 명실상부한 KBO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고, 그 덕에 삼성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분류:야구선수]]<br />

2015년 7월 4일 (토) 03:09 판

틀:토막글

오승환
생년월일 틀:날짜/출력
신장 / 체중 178cm, 92kg
소속 한신 타이거즈
포지션 투수
등번호 No.22 EE
투 / 타 우투/우타
출신교 도신초 - 우신중 - 경기고 - 단국대
프로입단 2005년 드래프트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5번

(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2005~2013 삼성 라이온즈

개요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의 마무리 투수. 경기를 8회까지만 보게하는 사나이 KBO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으며 별명은 표정변화가 없다 하여 돌부처.

아마추어 시절

고교 1학년은 한서고에서 메이저리거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강속구를 뿌렸지만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었다. 경기고로 전학 후 타자로 전향 했지만 성적이 좋지 못했고, 신인지명에서 선택받지 못했지만 다행히 단국대로 진학하였다. 대학 입학 후 투수로 복귀했지만 또 팔꿈치 인대 에 문제가 생겨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꾸준한 재활로 최고시속 152km를 찍을 정도여서 2005년 신인 2차지명에서 삼성에 1순위로 지명받았다. 그러나 경기고때는 이동현에 약간 묻히는 경향이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데뷔한 2005년에는 신인에게 마무리를 믿고 맡길 수 없었던건지, 쓸만한 투수가 없었던건지 감독이 많이 굴려서 이닝수도 많고 10승이나 된다. 이래뵈도 10승 투수 데뷔 4년차까지 2억 4천만원의 연봉을 받는 투수였지만 09년도, 10년도에는 안타깝게도 부상, 구위하락등으로 인하여 부진하였다. 그러나 09년도, 10년도를 제외한다면 명실상부한 KBO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고, 그 덕에 삼성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