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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정보
|그림=바빌론 요새.jpg
|설명=전투가 일어난 바빌론 요새의 모습
|날짜=639~642
|장소=[[이집트]], [[리비아]]
|결과=이슬람 제국의 승리
|영토=이집트와 리비아 동부 해안 지방이 이슬람 제국에게로 넘어감
|교전국1=[[비잔티움 제국]]
|교전국2=정통 칼리파조
|지휘관1=헤라클리우스 황제<br>콘스탄스 2세<br>테오도루스<br>아레티온<br>알렉산드리아의 키루스
|지휘관2=우마르 칼리파<br>아므르 이븐 알 아스<br>주바이르 이븐 알 아왐<br>미크다드 빈 알 아스와드<br>우바이다 이븐 아스 사비트<br>하리자 빈 후자파}}
==이집트 정복 이후==
===누비아 침공===
누비아란 오늘날의 [[수단]] 북부와 이집트 남부를 포괄하는 지방을 이야기한다.  당시 누비아는 [[기독교]]가 주류 종교 세력을 이루었고, 또한 하나의 독립된 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이집트를 점령한 아므르는 [[642년]] 여름, 우크바 장군을 보내 누비아를 공격하도록 했다. 본격적으로 누비아를 침공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이집트에 새로운 지배 세력이 등장했다는 의미의 경고적 차원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슬람군은 누비아에서 큰 성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누비아군은 이슬람군과의 전면전은 피하고 게릴라 전술로 이슬람군의 공격을 대처해왔다. 누비아의 궁수들은 매우 뛰어난 활 쏨씨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전술에 능숙했지만, 이슬람군은 화살 공격에 대해 매우 취약하였다. 이슬람군은 강력한 경기병 부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실력은 누비아 기병대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거기에 누비아는 그다지 풍요로운 땅도 아니었다. 이를 안 아므르 장군은 우크바 장군에게 이집트로 후퇴할 것을 명령한다. 이렇게 이슬람군의 누비아 공격은 끝나게 된다.


===리비아 정복===
누비아를 공격한 군대가 돌아오자, 아므르는 눈을 이집트의 서쪽 지방인 [[리비아]]로 돌린다. 당시의 리비아는 동쪽의 키레네이카, 북서쪽의 트리폴리타니아, 남서쪽의 페잔 지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642년 9월 리비아로 원정을 간 아므르의 군대는 1달 뒤 키레네이카 지방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우크바 장군에게 몇몇 부대를 준 뒤 페잔을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우크바 장군은 페잔의 수도인 자윌라로 진군하였고, 자윌라와 페잔 전역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이슬람군에게 항복하였다. 이후 우크바 장군은 아므르와 [[wikipedia:en:Brak,_Lybia|부르카]]에서 합류한다. 이후 이슬람군은 643년 봄 트리폴리에 도착해 비잔틴군과 전투를 치른다. 한 달 간의 공성전 끝에 트리폴리는 이슬람군에게 함락되고 만다. 트리폴리 점령 이후 서쪽으로 50km 떨어진 사브라사<ref>대충 [[리비아]] 서쪽 끝에 있다라고 생각하면 된다.</ref>를 공격한다. 사브라사는 변변찮은 저항을 보이다가 이내 이슬람군에게 항복한다. 이후 트리폴리에 있던 아므르 장군은 칼리프에게 원정 결과를 전달한다.
{{인용문|트리폴리, 사브라사, 부르카가 모두 저희들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서쪽을 향해 계속해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칼리프께서 더 많은 땅을 얻고 싶으신다면, 신의 축복하에 이 일을 행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마르 칼리파는 [[사산 왕조]]와의 전쟁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더 이상의 확장보다는 이집트의 통치를 확보할 것을 명령한다. 이에 아므르는 트리폴리 등 점령했던 도시를 버리고 이집트로 돌아온다.
==전쟁 전후로의 이집트==
{{번역된 문서|en|Muslim_conquest_of_Egypt}}

2016년 5월 1일 (일) 11:00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