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망명: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3번째 줄:
[[1897년]] [[2월 25일]] 고종은 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1897년]] [[2월 25일]] 고종은 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역사 교과서에 '아관파천'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이 설립한 한성신보, 그리고 친일파들만이 '파천'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있어 일본 측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다. 실제로 안타깝게도 아관망명이라는 이름 보다는 아관파천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파천이라는 단어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신할 때에도 쓰였던 단어<ref>[[위키백과:의주파천]]</ref>로 왕이 피란을 간다고 표현하기에는 국격이 훼손되기에 높여 부르던 말이다. 그런데 파천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나라를 버리고 갔다고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몽진(먼지를 일으키며 도망치다)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당시 친일파와 일본인은 고종을 폄하하기 위해 파천이라는 표현을 썼다. 리브레 위키러라면, 앞으로 '아관망명'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을 시작하도록 하자. 황태연 교수는 아관망명이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살신성인의 혈투의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https://blog.naver.com/daegujoa/220914056838 자료]
역사 교과서에 '아관파천'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이 설립한 한성신보, 그리고 친일파들만이 '파천'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있어 일본 측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다. 실제로 안타깝게도 아관망명이라는 이름 보다는 아관파천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파천이라는 단어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신할 때에도 쓰였던 단어<ref>[[위키백과:의주파천]]</ref>로 왕이 피란을 간다고 표현하기에는 국격이 훼손되기에 대체로 쓰던 말이다.<ref>[[8·15 광복]] 당시 일본제국 한글 기관지 매일신보에서 게재된 천황의 조서에서 '대조환발에 평화재건'(平和再建에 大詔渙發)이란 본 뜻이 잘 드러나지 않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기 않기 위해 알아듣기 어렵고 유체이탈을 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뜻은 파천도 도망가다는 뜻이 포함되지 않았다. 단순히 자리를 옮긴다는 뜻 밖에 없었다. 그리고 첫 문장의 상태는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충량한 너희 신민(臣民)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지·소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토록 하였다"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하여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ref> 그런데 파천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나라를 버리고 갔다고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몽진(먼지를 일으키며 도망치다)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당시 친일파와 일본인은 고종을 폄하하기 위해 파천이라는 표현을 썼다. 리브레 위키러라면, 앞으로 '아관망명'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을 시작하도록 하자. 황태연 교수는 아관망명이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살신성인의 혈투의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https://blog.naver.com/daegujoa/220914056838 자료]


{{각주}}
{{각주}}
[[분류:조선]]
[[분류:조선]]
[[분류:대한제국]]
[[분류:대한제국]]

2022년 11월 13일 (일) 23:35 판

명성황후가 피살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1896년 2월 11일부터 약 1년 동안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몸을 피하였던 일. 아관망명을 한자 풀이해보면 아(俄)는 러시아를 한자로 음차한 '아라사(俄羅斯)'의 앞글자, 관(館)은 관청 같은 건물을 가리키고 망명(亡命)은 뜻 그대로다. 관습적으로 이 사건을 가리키던 아관파천에서 파천(播遷)은 왕이 난리를 피해 도성을 떠나는 것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播는 파종 할 때 '파'이고 遷은 천도(수도를 옮기는 일) 할 때 천이다.

1897년 2월 25일 고종은 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역사 교과서에 '아관파천'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이 설립한 한성신보, 그리고 친일파들만이 '파천'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있어 일본 측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다. 실제로 안타깝게도 아관망명이라는 이름 보다는 아관파천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파천이라는 단어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신할 때에도 쓰였던 단어[1]로 왕이 피란을 간다고 표현하기에는 국격이 훼손되기에 대체로 쓰던 말이다.[2] 그런데 파천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나라를 버리고 갔다고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몽진(먼지를 일으키며 도망치다)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당시 친일파와 일본인은 고종을 폄하하기 위해 파천이라는 표현을 썼다. 리브레 위키러라면, 앞으로 '아관망명'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을 시작하도록 하자. 황태연 교수는 아관망명이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살신성인의 혈투의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자료

각주

  1. 위키백과:의주파천
  2. 8·15 광복 당시 일본제국 한글 기관지 매일신보에서 게재된 천황의 조서에서 '대조환발에 평화재건'(平和再建에 大詔渙發)이란 본 뜻이 잘 드러나지 않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기 않기 위해 알아듣기 어렵고 유체이탈을 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뜻은 파천도 도망가다는 뜻이 포함되지 않았다. 단순히 자리를 옮긴다는 뜻 밖에 없었다. 그리고 첫 문장의 상태는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충량한 너희 신민(臣民)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지·소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토록 하였다"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하여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