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톨라르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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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정보
{{화폐 정보
|화폐이름 = 슬로베니아 톨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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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Slovenian Tolar<small> 슬로베니언 톨라</small>
Slovenian Tolar<small> (슬로베니언 톨라<sup>[[영어|en]]</sup>)</small>
== 개요 ==
== 개요 ==
[[슬로베니아]]에서 2007년 유로화 전환 전까지 쓰이던 화폐로, 이는 유로화의 공식 출범해인 2002년 이후로는 가장 처음이 되는 전환사례이다. 어원은 스페인에서 쓰이던 은전 단위인 탈러(Thaler)에 기반하지만, 달러 계열 통화는 아니다.
[[슬로베니아]]에서 2007년 유로화 전환 전에 쓰이던 화폐이다. 유로의 공식 출범해인 2002년 이후로는 가장 처음이 되는 전환사례다. 교환비는 톨라르/EUR 고정이다. 양수(兩數)형<ref>숫자 "2"에만 사용하는 형태.</ref>은 톨라야(Tolarja), 복수형은 톨라예프(Tolarjev)이다. 보조단위 스토틴의 복수형은 스토티노프(Stotinov).


양수(兩數)형<ref>숫자 "2"에만 사용하는 형태.</ref>은 톨라야(Tolarja), 복수형은 톨라예프(Tolarjev)이다. 보조단위 스토틴의 복수형은 스토티노프(Stotinov).
어원은 탈러(Thaler, 달러)에서 발음 차이로 분화된 것인데, 따지자면 달러($)계열 통화라고도 할 수 있으나, 아무도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


=== 환전 및 사용 ===
=== 환전 및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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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찰 시리즈 ==
== 현찰 시리즈 ==
=== 동전 ===
=== 동전 ===
1991년 톨라르화 도입 당시에는 따로 동전을 주조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도입되지 않았고, 1993년 1월 1일에 공식 통화 도입과 함께 생산 및 배포되었다. 첫 톨라르화 동전은 1992년에 주조되었으나 지폐부터 먼저 도입하느라 실제 발행은 1년 늦었다. 디자이너는 밀롄코 리출(Miljenko Licul)과 즈보네 코소벨리(Zvone Kosovelj), 원판 조각가는 야네스 볼리카(Janez Boljka)이다.
1991년에는 급하게 만들어내느라 따로 동전을 주조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1993년 1월 1일부터 등장. 소개하기로는 1992년 시리즈로 되어있으나, 지폐부터 먼저 바꾸느라 1년 늦었다. 초기에 6종류(5톨라예프, 2톨라야, 1톨라르, 50, 20, 10스토티노프)가 등장했고, 10톨라예프가 2000년 4월 19일, 20/50톨라예프가 2003년 7월 7일에 등장하면서 지폐를 대체하였다.


본래 6종류($5, $2, $1, 50s, 20s, 10s) 구성이었고, 2000년 4월 19일에 $10, 2003년 7월 7일에 $20 및 $50를 신규 발행하여 기존의 지폐를 대체하였다.  
톨라르 동전은 2016년 12월 31일까지만 교환이 가능하며, 2017년부터는 전면 무효가 된다. 반면 지폐는 중앙은행에서 유로화로의 교환이 상시 가능하다.


톨라르화 동전은 2016년 12월 31일까지만 교환이 가능하였고, 2017년부터는 전면 폐기되었다. (지폐는 중앙은행에서 유로화 교환이 상시 가능하다.)
=== 공식발행권 ===
사실상 유일한 슬로베니아 은행권이다보니 이것만을 별도로 부르는 명칭은 별달리 없다. (간혹 1992년 시리즈라고도 한다.)


=== 지폐 : 임시발행권 (1991년판, SLT) ===
하얀 바탕과 오른쪽 인물이 배치되어 있는 기본적인 구성인데, 인물의 측면모습이 그림자 먹칠형태로 추가되어 있는 것이 독특한 점이다. 다만 위 10000톨라르의 경우는 그림자 먹칠 대신에 글자로 채워넣은 비교적 더 특이한 케이스. 대개는 앞면과 뒷면의 도안이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여담으로 50톨라르의 경우는 저액권이면서도 뒷면 대부분을 어두운 색으로 짙게 칠해놓은 용자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앞면까지도 색상이 살짝 비친다.)
1991년 6월 25일 독립을 선언하고 7월 7일에 실질적인 확정을 지은 슬로베니아는 동년도 10월 8일에 기존 유고슬라비아 디나르를 대체할 톨라르(톨라)화의 도입을 시행, 바로 다음날인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sub>※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sub> 배포되었다. 다만 제대로 된 화폐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우선은 슬로베니아 국내<ref>과거 유고 시절에 쓰이던 인쇄소</ref>에서 <s>거의 부루마불 현실판 수준인</s> 임시 화폐(SLT)를 긴급히 찍어낸 것을 풀었다. 교환비율은 1:1(패리티)이었으며, 당시 환율은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던 외화인 [[독일 마르크]]화 기준으로 32톨라르(SLT)/DEM<ref>1991년 당시 환율로 12~13원/SLT 정도(410~430원/DEM 적용)이고, 2002년 환산값은 20원 가량이다. 이후 2007년 유로화 전환까지 톨라르화 가치는 약 ½~⅓(6~7원/SIT) 수준으로 하락하였다.</ref>이었다.


하지만 이미 유고 디나르가 저지른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영향이 그대로 톨라르에 묻어있었고, 당시 슬로베니아인들 또한 유고 디나르 및 그 후속작이 아닌 외화 저금을 훨씬 더 선호하여서, 여타 소련 붕괴 당시의 초창기 독립 통화들처럼 톨라르도 재빠른 가치 붕괴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슬로베니아 정부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시장[[변동환]]을 채택하여 외화 자본 유치에 열을 올렸고, 다행히 (상대적으로 선진국인) 이탈리아 및 오스트리아와 가까이 있는 점, 유고 내전의 화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점 등이 호재로 작용했는지 적극적인 외화 투자가 이어져, 톨라르화의 폭락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1992년 9월 30일에 100/500/1000톨라르, 당해 11월 27일에 10톨라르, 28일에 20톨라르, 이듬해 2월 22일에 200톨라르, 당해 3월 19일에 50톨라르, 당해 12월 13일에 5000톨라르와 1000톨라르 개정판, 1995년 3월 15일에 10000톨라르까지 나오면서 완성되었다.


{| class="wikitable"
{| class="wikitable"
! [[파일:SIT103.jpg]]
! colspan="3" style="text-align: center;" | Slovenija Tolar Series
! [[파일:SIT104.jpg]]
|-
| style="text-align: center;" | 앞면 공통 : 트리글라우(Triglav) 산<ref>슬로베니아의 상징으로, 국기에 들어간 국장에도 들어간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 뒷면 공통 : 액면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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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 발행 액면은 총 12종($5000, $2000, $1000, $500, $200, $100, $50, $10, $5, $2, $1, $0.5)이다.<br />그 중 $2000 및 $0.50 권종은 실제로는 통용되지 못한 미발행권으로, 훗날 중앙은행에서 특별 세트 구성으로 포함시켜 배포한 것이 유일하다.
|}
* 신 통화 도입 당시 의회에서 논의한 톨라르(Tolar) 이외의 화폐단위명 후보로는 클라스(Klas), 크로나(Krona), 카란트(Karant), 리파(Lipa)가 있었다.
 
=== 지폐 : 공식발행권 (1992년판, SIT) ===
사실상 유일한 슬로베니아 은행권이다보니 이것만을 별도로 부르는 명칭은 별달리 없다. (간혹 1992년 시리즈라고도 한다.) 이때 [[ISO 4217]]코드가 SLT에서 SIT로 변경되었는데, [[화폐개혁]]이 아니므로 원래는 변경 대상이 아니지만, 국명이 똑같이 'SL'로 시작하는 [[슬로바키아]]가 1993년에 독립하면서 혼동이 빚어지는 까닭에 슬로베니아의 국가코드가 SL에서 SI(SVN)로 변경되면서 같이 바뀐 것이다.<ref>슬로바키아는 SK(SVK)를 부여받았고, 슬로바키아의 통화인 [[슬로바키아 코루나]]는 SKK를 부여받았다.</ref>
 
1992년 9월 30일에 3종($100, $500, $1000)이 우선 발행되어 임시 권종과 동일 액면(1(SIT):1(SLT))으로 교환이 진행되었고, 동년도 11월 27일에 $10, 다음날 28일에 $20, 그리고 이듬해 1993년 2월 22일에 $200, 그 다음달 3월 19일에 $50, 그리고 1993년 12월 13일에 $5,000 및 $1,000 개정판이 발행되면서 본 임시통화의 교체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영국 데라루사에 인쇄 의뢰한 것을 수입하였으며, 패턴 디자이너는 밀롄코 리출(Miljenko Licul), 초상화 디자이너는 루디 슈판젤(Rudi Španzel)이다.
 
최고액권인 $10,000 권종은 그로부터 2년 더 지난 1995년 3월 15일에 첫 발행되었다.
 
하얀 바탕과 오른쪽 인물이 배치되어 있는 기본적인 구성인데, 인물의 측면모습이 그림자 먹칠형태로 추가되어 있는 것이 독특한 점이다. 다만 위 10000톨라르의 경우는 그림자 먹칠 대신에 글자로 채워넣은 비교적 더 특이한 케이스. 대개는 앞면과 뒷면의 도안이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여담으로 $50의 경우는 저액권이면서도 뒷면 대부분을 어두운 색으로 짙게 칠해놓은 용자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앞면까지도 색상이 살짝 비친다.)
 
{| class="wikitable"
! colspan="3" | 슬로베니아 톨라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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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 | $10 / 프리모쉬 트루바르<br /><small>(Primož Trubar, 16세기 작가 겸 칼럼니스트)</small>
|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 | $10 / 프리모쉬 트루바르<br /><small>(Primož Trubar, 16세기 작가 겸 칼럼니스트)</small>
|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 | $20 / 야네즈 바이카르트 발바소르<br /><small>(Janez Vajkard Valvasor, 지리/지질학자)</small><ref>평범한 귀족이었지만, 유럽여행 도중에 [[카르스트]] 지형에 관해 발표한 연구자료 하나만으로 네임드가 되었고 학회로 초청되어 지질학자로서 살게 되었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 | $20 / 야네즈 바이카르트 발바소르<br /><small>(Janez Vajkard Valvasor, 지리/지질학자)</small><ref>평범한 귀족이었지만, 유럽여행 도중에 [[카르스트]] 지형에 관해 발표한 연구자료 하나만으로 네임드가 되었고 학회로 초청되어 지질학자로서 살게 되었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 | $50 / 유리 베가<br /><small>(Jurij Vega,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학자 및 포병 장교)</small><ref>[[로그]](Log)와 [[삼각함수]]의 작도법에 관심이 많았던 대수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수학계의 엄친아인 [[가우스]]가 그의 저서를 자주 참고했다고 한다. 본업은 [[탄도학|포병학교의 교수]]로, 장교 신분이었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 | $50 / 유리 베가<br /><small>(Jurij Vega, 수학교수 겸 군인)</small><ref>[[로그]](Log)와 [[삼각함수]]의 작도법에 관심이 많았던 대수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수학계의 엄친아인 [[가우스]]가 그의 저서를 자주 참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군인이라서 전쟁터에 끌려가 사망.(...)</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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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SIT201.JPG]]<br />
|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SIT201.JP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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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우르슐린 교회(Uršulinska cerkev)
| style="text-align: center;" | 우르슐린 교회(Uršulinska cerkev)
| style="text-align: center;" | 등고선과 삽화 "노동의 과실은 달다 (Dulcis ex labore fructus Vignette)"
| style="text-align: center;" | 등고선과 삽화 "노동의 과실은 달다 (Dulcis ex labore fructus Vignette)"
| style="text-align: center;" | 태양계와 국립 슬로베니아 과학예술아카데미 <small>(Slovenska Akademija Znanosti in Umetnosti, SAZU)</small>
| style="text-align: center;" | 태양계와 국립 슬로베니아 과학예술아카데미 (Slovenska Akademija Znanosti in Umetnosti, SA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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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100 / 리하르트 야코피치<br /><small>(Rihard Jakopič, 인상파 화가)</small>
| style="text-align: center;" | $100 / 리하르트 야코피치<br /><small>(Rihard Jakopič, 인상파 화가)</small>
| style="text-align: center;" | $200 / 야콥 페텔린 크란스키<br /><small>(Jakob Petelin Kranjski, 기독교음악 전문 작곡가)</small><ref>16세기 인물이다. 야콥은 [[라틴어]]에 매우 크게 매료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자신의 이름까지 라틴어 명명법을 적용해 "야고부스 갈루스 카르니올루스"로 지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s>유럽 스타일 [[창씨개명]]</s></ref>
| style="text-align: center;" | $200 / 야콥 페텔린 크란스키<br /><small>(Jakob Petelin Kranjski, 16세기의 기독교음악 전문 작곡가)</small><ref>열렬한 [[라틴어]]빠라서 스스로를 "야고부스 갈루스 카르니올루스"로 개명해서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s>흔한 [[창씨개명]]</s></ref>
| style="text-align: center;" | $500 / 요제 플레치니크<br /><small>(Jože Plečnik, 도시계획가 및 건축가)</small><ref>[[빈]], [[프라하]], [[류블라냐]]를 돌며 건축물을 지었고, 지금도 대다수가 남아있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 $500 / 요제 플레치니크<br /><small>(Jože Plečnik, 도시계획가 및 건축가)</small><ref>[[빈]], [[프라하]], [[류블라냐]]를 돌며 건축물을 지었고, 지금도 대다수가 남아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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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 (어떤 건물의 도면)
| style="text-align: center;" | ??? (어떤 건물의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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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3" style="text-align: 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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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1,000 / 프란체 프레세렌<br /><small>(France Prešeren, 범 국민적 시인)</small><ref><s>[[이름이 뭐예요]]? "[[프랑스]]"요.</s> 어릴때 부터 영재교육을 받아와 법대에 들어가서 변호사로 지냈으나 현실은 시궁창. 그렇게 할 일 없어 지어본 시가 우연히 대박을 터트려 시인으로서 유명해졌다.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류블라냐의 광장에 버젓이 그를 기리는 동상이 자리할 정도이며, 국가(歌)도 그의 작품이다. 참고로 그 동상을 바라보는 쪽의 건물에 오랫동안 짝사랑...만 하던 여인의 조각이 있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 $1,000 / 프란체 프레세렌<br /><small>(France Prešeren, 범 국민적 시인)</small><ref><s>[[이름이 뭐예요]]? "[[프랑스]]"요.</s> 어릴때 부터 영재교육을 받아와 법대에 들어가서 변호사로 지냈으나 현실은 시궁창. 그렇게 할 일 없어 지어본 시가 우연히 대박을 터트려 시인으로서 유명해졌다.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류블라냐의 광장에 버젓이 그를 기리는 동상이 자리할 정도이며, 국가(歌)도 그의 작품이다. 참고로 그 동상을 바라보는 쪽의 건물에 오랫동안 짝사랑...만 하던 여인의 조각이 있다.</ref>
110번째 줄: 90번째 줄:
| style="text-align: center;" | 이반의 소설 "국화"와 실물 국화 그림
| style="text-align: center;" | 이반의 소설 "국화"와 실물 국화 그림
|}
|}
=== 임시발행권 (1991년판, SLT) ===
1991년 6월 25일 독립을 선언하고 7월 7일에 실질적인 확정을 지은 슬로베니아는 동년도 10월 8일에 기존 유고슬라비아 디나르를 대체할 톨라르(톨라)화의 도입을 시행, 바로 다음날인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sub>※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sub> 배포되었다. 다만 제대로 된 화폐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우선은 거의 <s>부루마불 현실판 수준인</s> 임시 화폐(SLT)를 긴급히 찍어낸 것을 풀었다. 교환비율은 1:1(패리티)이었으며, 당시 환율은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던 외화인 [[독일 마르크]]화 기준으로 32톨라르(SLT)/DEM<ref>1991년 당시 환율로 12~13원/SLT 정도(410~430원/DEM 적용)이고, 2002년 환산값은 20원 가량이다. 이후 2007년 유로화 전환까지 톨라르화 가치는 약 ½~⅓(6~7원/SIT) 수준으로 하락하였다.</ref>이었다.
하지만 이미 유고 디나르가 저지른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영향이 그대로 톨라르에 묻어있었고, 당시 슬로베니아인들 또한 유고 디나르 및 그 후속작이 아닌 외화 저금을 훨씬 더 선호하여서, 여타 소련 붕괴 당시의 초창기 독립 통화들처럼 톨라르도 재빠른 가치 붕괴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슬로베니아 정부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시장[[변동환]]을 채택하여 외화 자본 유치에 열을 올렸고, 다행히 (상대적으로 선진국인) 이탈리아 및 오스트리아와 가까이 있는 점, 유고 내전의 화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점 등이 호재로 작용했는지 적극적인 외화 투자가 이어져, 톨라르화의 폭락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 class="wikitable"
! [[File:SIT103.jpg]]
! [[File:SIT1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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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앞면 공통
| style="text-align: center;" | 뒷면 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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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 발행 액면은 총 12종($5000, $2000, $1000, $500, $200, $100, $50, $10, $5, $2, $1, $0.5)이다.<br />그 중 $2000 및 $0.50 권종은 실제로는 통용되지 못한 미발행권으로, 훗날 중앙은행에서 특별가에 배포할 때 세트 구성으로 포함시켜 배포한 것이 전부이다.
|}
* 신 통화 도입 당시 의회에서 논의한 톨라르(Tolar) 이외의 화폐단위명 후보로는 클라스(Klas), 크로나(Krona), 카란트(Karant), 리파(Lipa)가 있었다.
정식 권종(SIT)<ref>화폐개혁이 아니므로 원래는 변경 대상이 아니지만, 국명이 똑같이 'SL'로 시작하는 슬로바키아가 1993년에 독립하면서 혼동이 빚어지는 까닭에 슬로베니아의 국가코드가 SL에서 SI(SVN)로 변경된 것을 반영하였다. (슬로바키아는 SK(SVK)를 부여받았다.)</ref>은 1992년 9월 30일에 3종(100, 500, 1000톨라)이 우선 발행되어 동일 액면(1(SIT):1(SLT))으로 교환이 진행되었고, 동년도 연말까지 나머지 권종이 차례로 발행되어 본 임시통화는 1993년부터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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