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원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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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정보
{{화폐 정보
|화폐이름 = 북한 원
|현지어 명칭 = 조선 원<sup><small>[[문화어|kp]]</small></sup>, 북한 원<sup><small>[[한국어|kr]]</small></sup>
|원어이름 =  
|다른 언어명 = DPRK Won/North Korean Won<sup><small>[[영어|en]]</small></sup><ref>북한 관련 물품을 취급할 수 없는 [[이베이]] 등에서는 남북한을 직접적으로 식별하지 못하게 그냥 'Korea'로 표기하곤 한다. 허나 그런 예외가 아닌 이상은 남한 원(KRW)이 Korean Won의 디폴트이고, 북한 원(KPW)은 앞에 North를 붙인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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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정보/보조단위
|보조단위_이름_1 = 전 (Chon)<ref>동전 자체가 사실상 사장되어서 유명무실하나, 일단 법적으로 통용이 가능한 단위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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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기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앙은행<ref>내부적으론 약칭인 '중앙은행(The Central Bank)'으로 불리는 듯 하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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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앙은행<ref>정식 영문 표기는 Central Bank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CBDPRK)[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685030 출처]. 내부적으론 약칭인 '중앙은행(The Central Bank)'으로 불리는 듯 하다.</ref>
|환율 = 약 5,100원/$<small> (2021.10.29 시장값)</small><br /><s>1,050원/USD</s><sup>※사용하지 않음</sup><small> (2015년 공식값)</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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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원<sup><small>[[문화어|kp]]</small></sup>, DPRK Won/North Korean Won<sup><small>[[영어|en]]</small></sup><ref>북한 관련 물품을 취급할 수 없는 [[이베이]] 등에서는 남북한을 직접적으로 식별하지 못하게 그냥 'Korea'로 표기하곤 한다. 허나 그런 예외가 아닌 이상은 남한 원(KRW)이 Korean Won의 디폴트이고, 북한 원(KPW)은 앞에 North를 붙인다.</ref>


== 개요 ==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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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화는 당에서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 특수성을 이용하는 목적으로 만든 통화라<ref>본래 취지는 국영시장에서 배급 이외의 물건을 거래하기 위한 용도였다.</ref> 원칙적으로는 환전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외국인이 절대 쓸 수 없는 것은 아닌데, 장기 체류하는 신분이 아닌 이상은 근본적으로 구하기가 어렵다. '''뭣보다도 환전을 하려면 옆을 계속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안내원부터 멀찍이 떼어놔야 한다(...)'''<ref>예외적으로 북한여행사를 통해 방문한 여행객의 경우엔 백화점 쇼핑 코스에서 북한 원화를 사용해야만 하는 까닭에 1회 한정으로 환전을 허용해주나, 시간이 끝나면 도로 달러로 환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검사하진 않는 고로 그냥 도로 들고와도 무방한 모양.</ref> 그렇다고 인근 국가에서 북한 원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는 북한돈이 무역용 화폐로 쓰이질 않기 때문이다.
북한 원화는 당에서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 특수성을 이용하는 목적으로 만든 통화라<ref>본래 취지는 국영시장에서 배급 이외의 물건을 거래하기 위한 용도였다.</ref> 원칙적으로는 환전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외국인이 절대 쓸 수 없는 것은 아닌데, 장기 체류하는 신분이 아닌 이상은 근본적으로 구하기가 어렵다. '''뭣보다도 환전을 하려면 옆을 계속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안내원부터 멀찍이 떼어놔야 한다(...)'''<ref>예외적으로 북한여행사를 통해 방문한 여행객의 경우엔 백화점 쇼핑 코스에서 북한 원화를 사용해야만 하는 까닭에 1회 한정으로 환전을 허용해주나, 시간이 끝나면 도로 달러로 환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검사하진 않는 고로 그냥 도로 들고와도 무방한 모양.</ref> 그렇다고 인근 국가에서 북한 원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는 북한돈이 무역용 화폐로 쓰이질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예 안 퍼지는 것은 아니다. 주로 빳빳한 신권들은 그 자체를 상품(商品)으로서 중국과 홍콩 상인으로부터의 수요가 조금은 있기에 자주 유출되었고, 이 경로를 통해 해외로 퍼져나갔다.<ref>한국에 들어오는 북한 돈 또한 99.9%의 확률로 이런 경로를 탄다.</ref> 중국 베이징, 센양 등은 몰론, 국경도시인 단둥이나 지린과 같은 곳에서는 특히나 기념품으로 내놓은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바깥에서 출몰하는 북한 원화는 주로 이런 경로를 타고 온 것이다. 이후 북한 당국에서도 외화벌이를 위해 작정하고 기념품이나 재판본을 찍어서 수출한 경력이 있기에, 생각보다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ref>특히 2000년대(4차 시리즈 발행 당시)에 유출이 잦아서, 2020년대인 지금도 구권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현행권/5차 시리즈)부터는 유통권의 반출을 거의 못하게 막고 있는 탓에 구경하기가 다소 어렵다.</ref> 다만 한국에서 구하기는 조금 까다로운 편인데, 정말로 갖고 싶다면 이베이를 이용하거나 한국은행 인근의 화폐상 등지에 들러보자. 북한 돈도 위폐가 있을까 의문스럽겠지만, 은근히 중국산 위폐가 있기는 있기 때문에(!), 가급적 단둥 길거리 등지에 세트로 모아놓은 것 같은 건 구매하진 말자.
하지만 아예 안 퍼지는 것은 아니다. 주로 빳빳한 신권들은 그 자체를 상품(商品)으로서 중국 상인들의 수요가 조금은 있기에 자주 유출되었고, 이 경로를 통해 해외로 퍼져나갔다. 중국 베이징, 센양 등은 몰론, 국경도시인 단둥이나 지린과 같은 곳에서는 특히나 기념품으로 내놓은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바깥에서 출몰하는 북한 원화는 주로 이런 경로를 타고 온 것이다. 이후 북한 당국에서도 외화벌이를 위해 작정하고 기념품이나 재판본을 찍어서 수출한 경력이 있기에, 생각보다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한국에서 구하기는 조금 까다로운 편인데, 정말로 갖고 싶다면 이베이를 이용하거나 한국은행 인근의 화폐상 등지에 들러보자. 북한 돈도 위폐가 있을까 의문스럽겠지만, 은근히 중국산 위폐가 있기는 있기 때문에(!), 가급적 단둥 길거리 등지에 세트로 모아놓은 것 같은 건 구매하진 말자.


행여나 북한 돈을 소지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는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현행법상 '''단순 소지'''만으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용하게도 [[관봉]]을 구해다가 북에 도로 뿌리는 단체도 있는 마당에 [[검열|전 국민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만 인터넷 등에 자료를 게재하면 다소 의혹을 받을 수는 있고, <s>할 일 없는</s> 담당과에서 소환을 요구하는 사례도 없지는 않으니 너무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긴 하다. 이와 관련된 법원 판례도 존재하는데, 요약하면 북한 상인에게 직접 대금을 주고 직수입한 것이 아니라면 위법 사유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행여나 북한 돈을 소지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는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현행법상 '''단순 소지'''만으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용하게도 [[관봉]]을 구해다가 북에 도로 뿌리는 단체도 있는 마당에 [[검열|전 국민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만 인터넷등에 자료를 게재하면 다소 의혹을 받을수는 있고 (의도가 없다면 불법이 아니다.), <s>할 일 없는</s> 담당과에서 소환을 요구하는 사례도 없지는 않으니 너무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긴 하다.


여튼 그리하여 외국인은 북한에서 주로 [[미국 달러]], [[중국 위안]]<ref>본래 중국 위안이 통하는 지역은 북중접경지역 한정이었는데, 북한의 2번째 통화개혁(2009년)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대체화폐로 널리 보급되어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주류 화폐가 되었다. 약칭으로 인민폐(런민비)를 줄여서 '민폐(民幣)'라 부른다.</ref>을 사용한다. 기존에는 외화와 바꾼 돈이라 하여 태환권이 있었으나 2002년 7월의 상징적 고정환율제 폐기 이후로 서서히 사장되어, 현 시점에서는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달러와 위안 외에도 [[일본 엔]]이나 [[유로]], [[영국 파운드]]같은 것이 쓰이기도 하는데, 2014년경 부터 적극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s>어째 점점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모 나라]]와 닮아가는 것 같다</s> 다만 북한에 체류비자를 받아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멀쩡히 조선돈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구매 장소나 목적에 따라 외화를 적절히 섞어서 쓴다.
여튼 그리하여 외국인은 북한에서 주로 [[미국 달러]], [[중국 위안]]<ref>본래 중국 위안이 통하는 지역은 북중접경지역 한정이었는데, 북한의 2번째 통화개혁(2009년)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대체화폐로 널리 보급되어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주류 화폐가 되었다. 약칭으로 인민폐(런민비)를 줄여서 '민폐(民幣)'라 부른다.</ref>을 사용한다. 기존에는 외화와 바꾼 돈이라 하여 태환권이 있었으나 2002년 7월의 상징적 고정환율제 폐기 이후로 서서히 사장되어, 현 시점에서는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달러와 위안 외에도 [[일본 엔]]이나 [[유로]], [[영국 파운드]]같은 것이 쓰이기도 하는데, 2014년경 부터 적극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s>어째 점점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모 나라]]와 닮아가는 것 같다</s> 다만 북한에 체류비자를 받아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멀쩡히 조선돈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구매 장소나 목적에 따라 외화를 적절히 섞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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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찰 시리즈 ==
== 현찰 시리즈 ==
=== 동전 ===
=== 김정은 시대 : 5차 발행 (2009 ~ ) ===
북한 동전은 건국 초기 당시, 천리마 운동을 업고 산업 활성화가 막 진행되려던 1959년에 기존 소액전 지폐(15전, 20전, 50전)를 대신하는 '''3종 구성(1전, 5전, 10전)'''으로 시작하였다. 세 동전 모두 앞면에 국장, 뒷면에 액면을 넣은 간소한 모양으로 찍어내었다.
 
그러다 1978~1979년 재정비를 위한 신권 발행 당시 50전 지폐를 대신할 50전 동전이 추가되어 4종 구성'''(1전, 5전, 10전, 50전)'''이 되었다. 다만 이 50전 동전은 다른 세 동전과 달리 국장과 액면을 앞면에 몰아넣고, 50년대부터 진행된 천리마 운동의 성과를 과시하려는듯 천리마 동상의 모습을 뒷면에 큼지막히 찍어내었다. 이후 1987년에 인민대학습당을 넣은 '''1원''' 동전을 추가하여 5종 구성이 되었다.
 
2002년에는 명목상으로 유지하고 있던 환율(2.14원/USD)이 폐지되면서 북한 원화의 가치가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신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고액권 지폐(5천원까지)가 발행되면서, 원래 교체 목적으로 찍어두었던 '''10전([[진달래]])/50전([[김정일화]])/1원([[김일성화]])''' 주화 신권의 발행이 2009년(제 5차 화폐개혁) 이후로 미뤄졌다. 기존 천리마 50전 주화와 비슷한 사양으로 하되 뒷면은 모두 꽃을 한 송이씩 담아내었다. 다만 ''채고조넘''의 이름이 들어간 50전과 1원에는 각각 '''불멸의 꽃'''이라는 수식어를 추가로 덧붙였다(...) 2008년에 '''1전([[철쭉]])과 5전([[목란]])'''도 마찬가지로 꽃으로 바꾸어 찍었으며, 이 또한 2009년 개혁 이후에 처음 배포되었다.
 
그 사이 2005년에, 그 북한의 신 경제정책이 효과가 거꾸로 들었는지 대미 북한 원화 시장 환율이 끊임없이 올라가 김일성이 들어간 돈<ref>백원, 천원, 오천원</ref>이 아니면 쓸데가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고, 때문에 푼돈의 기준도 달라져서 '''5원/10원/50원/100원''' 네 종류의 지폐를 대신할 동전을 급하게 발행하였다. 기존 전화 동전들처럼 국장과 액면만 덩그러니 찍힌 단순한 모양의 값싼 [[알루미늄]]화이다. 허나 이 당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북한 원화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기어가고 있던 탓에 제대로 유통되지는 못했으며, 2009년 개혁과 함께 유통 중단 조치되었다. 하지만 조치된 사항과는 별개로 실제 유통은 암암리에 이루어졌고, 2020년대에 들어선 되려 고액권인 500원화 및 1000원화가 동일한 패턴으로 추가 발행되었다.
 
=== 김정일 후반/ 김정은 시대 : 5차 발행 (2009 ~ ) ===
2009년 11월 30일에 도입되어 동년도 12월 6일에 대체가 완료(?)된 현행권. 교환 비율은 1/100 ~ 1/1000 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자금회수를 목적으로 한 탓에 너무 혁명적(?)으로 진행되어서 전 세계에 북한의 막장행보를 광고하는 꼴이 되었다.
2009년 11월 30일에 도입되어 동년도 12월 6일에 대체가 완료(?)된 현행권. 교환 비율은 1/100 ~ 1/1000 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자금회수를 목적으로 한 탓에 너무 혁명적(?)으로 진행되어서 전 세계에 북한의 막장행보를 광고하는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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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E8D9FF; width:33%;" | 50원 [[인민]] 3대 로동계층
|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E8D9FF; width:33%;" | 50원 [[인민]] 3대 로동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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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nokwon501.jpg]][[파일:2002-5won-2.jpg]]
|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nokwon501.jpg]][[File:2002-5won-2.jpg]]
|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nokwon502.jpg]][[파일:2002-10won-2.jpg]]
|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nokwon502.jpg]][[File:2002-10won-2.jpg]]
|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nokwon503.jpg]][[파일:2002-50won-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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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수력발전소
| style="text-align: center;" | 수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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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DAD9FF;" | 500원 [[개선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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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nokwon504.jpg]][[파일:100 вон КНД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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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FD9EC;" | 5,000원<sup>(구권)</sup> [[김일성]]
|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FD9EC;" | 5,000원<sup>(구권)</sup>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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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삼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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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FD9EC;" | 5,000원<sup>(2021년 임시화폐)</sup> (돈표)
|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FD9EC;" | 5,000원<sup>(2021년 태환권)</sup> (돈표)
|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AE0D4;" | 5,000원<sup>(신권)</sup> [[만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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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70돐 (1948-2018) / 50, 200, 500, 1000, 2000원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70돐 (1948-2018) / 50, 200, 500, 1000, 2000원권
** 조중외교관계설정 70돐 (1949-2019, 中朝建交70周年) / 5000원권
** 조중외교관계설정 70돐 (1949-2019, 中朝建交70周年) / 5000원권
*** 후술할 3차 및 4차 발행권과는 달리 5차 발행권은 위 기념문구를 박아넣은 <s>가짜 아닌 가짜</s> 지폐 말고는 씨가 말랐나 싶을 정도로 유통화=통용권<ref>대놓고 외화벌이로 팔아먹기 위한 것이 아닌, 실제 북한 주민들에게 공급하려는 목적의 지폐.</ref>을 구하기가 어려운 편인데, 이는 그동안 북한 돈이 외부로 유출되는데 있어 북한 내부 고위층과 중국계 홍콩 셀러들이 맞장구치는 공이 컸기 때문이다. 나름 그럭저럭 호형호제를 외치긴 하던 2000년대까지와는 달리 2010년대의 북중관계는 어딘가 떫떠름한 관계가 지속되어 홍콩 셀러들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었고, 특히 북한쪽에서 유통화 유출을 철저하게 관리하게 된 까닭에, 유입단계부터 말라 비틀어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는 2021년에 발행된 돈표가, 2년이 지난 2023년에도 구경조차 힘든 것으로 간접증명을 하고 있다.
* 2021년 9월 경에 새로운 태환권(외화와바꾼돈표) 5천원권<ref>같은 시기 환율로 약 미화 1달러(US$1.00)에 해당한다.</ref>을 찍어낸 것이 밝혀졌다. 다만 기존에 있던 '외화'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단순히 "'''돈표'''"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대외무역환경이 매우 열악해지자 상대적으로 쓸모가 줄어든 외화들의 값이 반값으로 주저앉았고, 이 틈을 타 주민들의 외화보유량을 늘리게 될 것을 정부측이 우려한 것인지, 외적으론 외화가치의 안정을 국가가 보증하는 수단, 내적으로는 달러를 국고로 긁어오려는 목적으로 다시 찍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2021년 9월 경에 태환권과 '''유사한 형태'''의 5천원권<ref>같은 시기 환율로 약 미화 1달러(US$1.00)에 해당한다.</ref>을 찍어낸 것이 밝혀졌다. 다만 기존에 있던 '외화'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단순히 "'''돈표'''"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대외무역환경이 매우 열악해지자 상대적으로 쓸모가 줄어든 외화들의 값이 반값으로 주저앉았고, 이 틈을 타 주민들의 외화보유량을 늘리게 될 것을 정부측이 우려한 것인지, 외적으론 외화가치의 안정을 국가가 보증하는 수단, 내적으로는 달러를 국고로 긁어오려는 목적으로 다시 찍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동년도 10월 경부터는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로 인해 은행용지 수입에 차질을 빚자, 돈표 그 자체를 화폐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2003년 이전 사담 후세인 정권 말기의 [[이라크 디나르]]의 행보와 같다.
** 한편으로 동년도 10월 경부터는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로 인해 은행용지 수입에 차질을 빚자, 북한 국내산 용지를 사용하는 돈표 그 자체를 화폐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2003년 이전 사담 후세인 정권 말기의 [[이라크 디나르]]의 행보와 같다. 그러나 그 '돈표'마저 공급이 원활하지는 않은 모양인지, 이듬해 4월 6일 전후로 신 고액권인 5만원권(!)을 내놓았다.
{{폐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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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시대 : 4차 발행 (1992~2009) ===
=== 김정일 시대 : 4차 발행 (1992~2009) ===
김일성의 말년기인 1992년에 시행된 화폐개혁의 골자는, 마찬가지로 김정일의 말년기인 2009년에 시행된 화폐개혁과 판박이로 닮았었다. '''작정하고 재정회수를 위해 자행한 화폐개혁은 이때가 시초'''이다. 당시 구권과의 교환비는 '''1:1'''로 고시하였으나, 실제 교환 시 1인당 399원까지<ref>약 4개월분 월급 상당</ref>만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전량 은행으로 강제 저금시켰다. <s>그리고 주민들은 그 돈을 다시는 구경할 수 없었다.</s> 또한 공교롭게도 김일성과 김정일, 둘 다 화폐개혁 시행 후 2년 뒤에 사망한<ref>김일성은 1994년, 김정일은 2011년에 사망.</ref> 공통점이 있다.
북한 이외 지역에서는 오히려 현행권(5차)보다도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리즈인데, 이 때는 북한이 겉으로나마 남측과 화해모드를 열었기도 하거니와, 외화벌이 목적 추정으로 북한에서 홍콩 셀러를 통한 통화 유출이 대규모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02년에 시행된 새로운 외환법의 영향으로 기존의 태환권이 사라지고, '조선돈(내화)'의 통화량이 급격히 팽창한 것도 유출량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이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의 북한은 점점 소련(동유럽)의 지원이 줄어드는 와중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 정책과 부패하는 사회 시스템과도 싸워야 했다. 거기에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남한이 [[1988 서울 올림픽|주류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나타나자 김일성은 속으로라도 성과에 안달을 내기 시작하였고, 그 눈치를 보는 지배 계층은 과대 포장된 성과로 달래었으며, 수뇌부는 다시 그 과대 포장된 성과로 이어지는 무리한 계획을 짜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살벌한 정치계에서 잔뼈가 굵어진 지배 계층은 정직하게 살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기에 횡령으로 연명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당연히 그 부작용은 생산계층으로 떠넘겨져 불안정한 배급과 공급으로 인해 생산 동력을 잃어버렸으며, 그 결과는 경제적 파국이었다.
1994년 7월 정치적 지주인 김일성이 사망하고 그 아들인 김정일이 수장이 되었는데<ref>김일성 사후 3년 간은 유훈통치(기존에 남긴 '김일성 교시'를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라 하여 원쑤 자리는 명분상 공석이었으나, 실질적으론 김정일 업적 승계 기간으로 활용되었다.</ref>,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북한 정치판에서 활동하면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공포정치([[선군정치]])를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1995년부터 3년 정도 대규모의 홍수와 가뭄이 들어 농업 전반을 망가트렸는데, 애당초 소련의 붕괴 때문에 압도적인 화력에 눈이 돌아간 정황상 경공업 투자에 소홀했던 환경까지 겹쳐, 나라 전체가 극심한 식량 부족 상태에 빠지고 만다. [[고난의 행군|배급은 완벽히 중단]]되고 도리어 물자를 바쳐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로동자 월급조차 노동의 산물을 일부 받는 현물 지급으로 바뀌어 장마당(시장경제)가 강제로 활성화 되면서 북한 원의 가치는 철저한 시장원리로 결정되어, 이윽고 큰 가치 폭락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이 시기 전후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단 한 번도 국가 배급을 받아본 기억을 갖고 있지 않는 세대를 '장마당 세대'라 하며, 이들은 겉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따르면서 속으로는 자본주의에 철저히 물들여진, 북한 수뇌부로서는 잠재적 폭탄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회주의경제가 작동하지 않자 기존의 100원권(1998년 기준 500원권)<ref>둘 다 각 시기별 로동자 1개월 월급 상당.</ref> 만으로는 화폐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으며, 때문에 남한과 기존 제1세계로부터 지원을 받아서라도 급한 불을 끄고자 하는 방향의 정책이 수립되어, 2002년 정초에 경제 정책도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졌다. 급하게라도 고액권(1천원/5천원)이 인쇄되었고, '''외화 상점'''의 개념이 새로 들어섰으며, 구매권<ref>북한에서 공식 환율 적용으로 외화상점을 내화(조선돈)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권리증, 혹은 유가증권 그 자체를 가리킴.</ref> 제도도 이 때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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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3" | 김정일 시대의 조선돈
! colspan="3" style="text-align: center;" | Choseon 4th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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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3%;" | 1원<br />영화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 ([[홍영희]])
|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3%;" | 1원<br />영화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 ([[홍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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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3%;" | 10원<br />로동자, 천리마동상, 공장
| style="text-align: center; width:33.3%;" | 10원<br />로동자, 천리마동상,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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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금강산과 선녀
| style="text-align: center;" | 금강산과 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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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서해갑문
| style="text-align: center;" | 서해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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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50원<br />3대 로동계층과 [[주체사상]]탑
| style="text-align: center;" | 50원<br />3대 로동계층과 [[주체사상]]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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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500원<br />[[금수산태양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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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백두산의 풍경
| style="text-align: center;" | 백두산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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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금릉 제 2 터널과 청류교
| style="text-align: center;" | 금릉 제 2 터널과 청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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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 center;" | 만경대 (김일성 생가,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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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권 교환 정책이 2009년 화폐개혁과 판박이에 가까울 정도로 닮았는데, 사실상 '''작정하고 재정회수를 위해 자행한 화폐개혁은 이때가 시초'''이다. 그 당시 구권과 교환비는 '''1:1'''이나, 교환 시 1인당 399원까지만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모두 은행에 강제로 저금시켰다. <s>그리고 주민들은 그 돈을 다시는 구경할 수 없었다.</s>
* 1992년 최초 발행때는 100원권이 최고액면이었다. 500원권은 1998년에, 1000원권과 5000원권은 2002년 7월 1일 신 경제정책 개혁으로 거래량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여 찍어낸 권종이며, 중간액면인 200원화는 2005년에 새로 추가되었다.
* 1992년 최초 발행때는 100원권이 최고액면이었다. 500원권은 1998년에, 1000원권과 5000원권은 2002년 7월 1일 신 경제정책 개혁으로 거래량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여 찍어낸 권종이며, 중간액면인 200원화는 2005년에 새로 추가되었다.
* 1998년에 5원권과 10원권은 신판본(위 표의 사진)으로 나왔다. 그러나 급하게 찍은 것이 드러날 정도로 구판(1992년)에 비해 인쇄질이 떨어진다. 다만 북한 조폐국의 기술 자체가 빈말로도 썩 좋다고 못할 수준이다보니, 직접 비교해보지 않는 이상은 눈치채기가 어렵다.
* 1998년에 5원권과 10원권은 신판본(위 표의 사진)으로 나왔다. 그러나 급하게 찍은 것이 드러날 정도로 구판(1992년)에 비해 인쇄질이 떨어진다. 다만 북한 조폐국의 기술 자체가 빈말로도 썩 좋다고 못할 수준이다보니, 직접 비교해보지 않는 이상은 눈치채기가 어렵다.


=== 김일성 시대 : 2차/3차 발행 (1959~1992) ===
=== 김일성 시대 : 2차/3차 발행 (1959~1992) ===
1959년 2월 13일부터 동월 17일까지, 공식적인 '중앙은행'이 발행한 신권(2차)으로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직전 구권와 교환비는 1/100이다. 해당 권종은 완전히 내수용으로만 배포되었고, 조중무역이 활발하던 시기도 아니였어서 유출량 자체가 적은 탓에, 잔존수량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물며 1차 권종(구권)은 북한 당국에서 아예 재판본(리프린트)을 찍어 판매한 전적까지 있으나, 이쪽은 건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959년 2월 13일부터 동월 17일까지 교체가 이뤄진 북한의 리즈시절에 해당한 건국 초창기의 화폐이다. 당시 남한은 기반산업시설이 하나도 없어서 그야말로 극도로 빈곤한 농업국가에 불과했다. 반면 이때 북한은 가장 풍족한 시기로 중국 접경지인 단둥, 지린에서도 먹을거나 생필품을 구하려고 북한에게 손 벌렸었다(!) 2000년대 들어서 북한이 조중 접경지역에서 아무리 막장을 저질러도 쉽게 내치지 못하는게 이때 도움받았던 기억 때문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1차와 교환비는 1/100.


1960년대의 북한은, 비록 복구 작업이 필요하긴 하나, 일제가 남겨놓은 유산마냥 기본적인 공업 시설이 잘 갖춰진 상태에서 소련의 지원<ref>사실 미국과 직접 대치하는 지리적 사정과 1960년대부터 급격히 냉각된 중소관계의 반사효과 때문인 것에 가깝긴 하나, 결과적으로 중앙아시아 다음 수준의 지원력이 들어간 것은 맞다.</ref>까지 듬뿍 받은 덕택에, 대략 1985년 무렵까지 경제적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거기에 인민의 로동력을 전체주의로 버무린 사상으로 쥐어짜는 [[천리마 운동|혁명적인 정책]]까지 더해져, 북한의 경제성장 속도는 그 이름값처럼 빨랐다. 동시기의 남한은 기반산업시설이 전무하여 그야말로 극도로 빈곤한 농업국가에 불과하였고, 하물며 중국 접경지인 단둥 및 지린에서도 <s>모(毛)씨의 삽질과 더불어</s> 개발이 뒷순위로 크게 밀려있었던 탓에<ref>중국 동북지방, 특히 길림성과 흑룡강성은 다른 소수민족 자치구들처럼 한족(漢族)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경제적 지원을 거의 않는 변두리(邊境地) 취급을 했었다. 또한 중국과 소련은 궁극적인 이념 자체는 비슷하였으나, 외교적으로 친분은 커녕, 서로가 뒤로 욕하는 악연 라이벌에 더 가까웠다.</ref> 극도의 빈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정말로 먹고 살기 위해 '''북한에게 손을 벌렸었던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훗날 북한이 조중 접경지역에서 아무리 막장 짓을 저지르더라도 중국 측이 쉽게 내치지를 못하는게, 과거에 북한으로부터 도움 받던 시절을 기억하는 계층이 아직 살아있어서 반발심을 우려하기 때문(=한화(漢化)가 덜 이루어졌다)이 아니겠냐는 견해의 근거가 되고 있다.
완전히 내수용으로만 풀려있었고, 조중무역이 활발하던 시기도 아니여서 2015년 현재 잔존수량이 가장 적은 시리즈이다. 1차 권종은 북한 당국에서 아예 재판본을 찍어 판매한 전적이 있지만 이쪽은 건든 적이 한 번도 없다.


이후 1979년 4월 7일부터 동월 12일까지 다시 신권(3차)으로 교체가 이뤄졌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아무 이유 없는 신권 발행'''이다. 다만 전반적으로 [[천리마 운동]]이나 [[혁명]]등이 눈에 띄게 강조되어 있어, 아마도 정권 홍보(+우상화) 및 사상 굳히기를 목적으로 바꾼게 아닐까, 정도로는 추측할 수 있다. [[김일성]]의 초상화<s>상판대기</s>가 이때 처음 등재되었다.
1979년 4월 7일부터 동월 12일까지 신권으로 교체가 이뤄졌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아무 이유 없는 신권 발행'''이다. 다만 전반적으로 [[천리마 운동]]이나 [[혁명]]등이 눈에 띄게 강조되어서 정권 홍보를 위해 바꾼 것이 아닌가, 정도로는 추측할 수 있다. [[김일성]]의 초상화<s>상판대기</s>가 이때에 처음으로 지폐에 모습을 올렸다.


참고로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북한 로동자 월급은 평균 100원 이내, 동시기의 남한 원화로 치환하면 약 5만원 정도이며, 남한의 일반적인 비숙련 노동자와 거의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당시 북한에서의 '월급'은 사회주의경제 특성상의 배급과 별도로 지급되는 잉여재산 재분배에 가까운 개념이었던 반면, 남한에서의 '월급'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의식주까지 해결해야 하는 근로성 댓가에 가까웠고, 심지어 당시 남한은 직군별 소득 격차가 매우 큰 편<ref>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 간 소득 차이가 10배 이상은 기본으로 벌어져 있었다.</ref>에 복지 환경까지 극단적으로 갈린 편이었던 탓에, 소수의 부유층이나 실질적 기득권층<ref>하물며 이 때는 아직 민주화 운동이 달성되기 이전(제5공화국(전두환 정권))이다.</ref>을 제외한 대다수의 생활 쾌적도는 여전히 북한보다 한참 미치지 못하였었다. 하지만 이런 양상은 북한이 국가총소득 이상의 지출을 감행하고 있었던 탓도 있어, 1985년 전후부터는 서로의 상황이 급속도로 역전되어갔다.
1988년 냉전이 끝나갈 무렵에 본격적으로 외국인을 맞이(?)하는 시기와 맞물려 외화태환권(외화와 바꾼 돈표)처음으로 도입되었기에 환율개념이 이때 생겼다. 미세조정이 가능한 고정환율이며 시작은 2.18원/USD. 세월에 따라 약간씩 변동되긴 했으나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로 값을 책정한 것이라 2002년 7월 개혁을 단행하기 전까진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았다. 특이한 점은 사회주의 국가 화폐로 바꾼 돈표와 자본주의 국가 화폐로 바꾼 돈표가 서로 상이했다.
 
1988년 경, 냉전이 끝나갈 무렵의 북한은 본의가 아니더라도 자립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닫고, 세계청년학생축전(1989년 개최)과 같은 국제 행사를 의욕적으로 계획하면서 본격적으로 외국인 및 외국 자본을 맞이할 준비<ref>이 부분이 기존 제 1세계와 다른 점이, 갖은 모든 사업을 국가(조선로동당)가 주도한다는 점에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이 자원 많은 북한에 비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f>를 하였다. 그 일환으로 외화태환권(※외화와 바꾼 돈표)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였으며<ref>이전에는 기존 은행권(3차) 뒷면에 첨쇄 처리된 권종으로 지급하였다.</ref>, 실질적인 환전 업무의 개념도 이때에 처음 대두되었다. 미세조정이 가능한 계획고정환율제였고, 그 값은 (자본주의 돈표 기준으로) 2.18원/USD으로 책정하였다. 다만 이게 실제 시장물가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로 책정한 것이라 그 값이 거의 움직이지를 않았고, 격동의 1990년대를 보내면서 점점 실제 가치와의 괴리가 벌어지다보니, 2002년 7월에 개혁을 단행하기 전까진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여행객들의 불평을 들어야만 했다. [[쿠바]]처럼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국가 화폐로 바꾸어 받는 '돈표'와 자본주의 국가 화폐로 바꾸어 받는 '돈표'가 구분되어 있었고, 기타 특수 목적으로 제공하는 '돈표'도 따로 존재하였는데, 이는 각 돈표들을 구매하는 환율값이 달랐기 때문으로, 각 돈표들의 가치 자체는 모두 동일하다.<ref>즉, 북한 태환권 1원을 구매하는데 들어가는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동일하지 않았다.</ref>


{| class="wik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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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5" | 김일성 시대의 조선돈
! colspan="5" style="text-align: center;" | 김일성 시대의 조선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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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 center;" | 2차 발행분 (1959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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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br />[[금강산]]
| style="text-align: center;" | <br />[[금강산]]
|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nokwon206.JPG]]<br />[[흥남비료연합기업소]]
| style="text-align: center;" | [[file:nokwon206.JPG]]<br />[[흥남비료연합기업소]]
| style="text-align: center;" | 100원
| style="text-align: center;" | 100원
|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KPW309.jpg]]<br /><sup><s>자칭</s></sup><small>혁명의 영재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small>
| style="text-align: center;" | [[File:KPW309.jpg]]<br /><sup><s>자칭</s></sup><small>혁명의 영재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small>
| style="text-align: center;" | <br />혁명의 요람 만경대 고향집<ref>양면의 문구 모두 실제로 쓰여있는 글귀이다. 아무리 지폐에 독재자가 자주 그려진다고 해도 대개 이름만 새겨넣고 끝이지, 이 정도의 미사여구를 붙여주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자기네들도 이상하다 느꼈는지 이후 발행분부터는 이러한 문구가 모두 빠졌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 <br />혁명의 요람 만경대 고향집<ref>양면의 문구 모두 실제로 쓰여있는 글귀이다. 아무리 지폐에 독재자가 자주 그려진다고 해도 대개 이름만 새겨넣고 끝이지, 이 정도의 미사여구를 붙여주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자기네들도 이상하다 느꼈는지 이후 발행분부터는 이러한 문구가 모두 빠졌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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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br />쌀 수확하는 아줌마
| style="text-align: center;" | <br />쌀 수확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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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file:nokwon205.jpg]]<br />[[대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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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50원
|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KPW307.jpg]]<br />"주체", 그리고 인민 4대 계층 (군인/농부/노동/정치)
| style="text-align: center;" | [[File:KPW307.jpg]]<br />"주체", 그리고 인민 4대 계층 (군인/농부/노동/정치)
| style="text-align: center;" | <br />[[개마고원]] 호수
| style="text-align: center;" | <br />[[개마고원]]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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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file:nokwon204.JPG]]<br />[[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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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KPW305.jpg]]<br />천리마 동상 (평양)
| style="text-align: center;" | [[File:KPW305.jpg]]<br />천리마 동상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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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file:nokwon203.JPG]]<br />[[김일성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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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br />공업도시의 학생과 농가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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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파일:KPW301.jpg]]<br /><small>나팔부는 소년, 꽃 든 소녀, 정복 입은 청년, 후프 든 체조선수, 평양거리, "세상에부럼없어라" (선전문구) <s>확실히 [[부럼]]이 없긴 하지.</s></small>
| style="text-align: center;" | [[File:KPW301.jpg]]<br /><small>나팔부는 소년, 꽃 든 소녀, 정복 입은 청년, 후프 든 체조선수, 평양거리, "세상에부럼없어라" (선전문구) <s>확실히 [[부럼]]이 없긴 하지.</s></small>
| style="text-align: center;" | <br /><small>혁명가극「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청년 &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 / 혁명가극「피바다」의 여성 & 평양거리</small>
| style="text-align: center;" | <br /><small>혁명가극「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청년 &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 / 혁명가극「피바다」의 여성 & 평양거리</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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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부터 한자표기가 완전히 사라진다.
* 동전은 1전, 5전, 10전 3종류가 발행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한자표기가 완전히 사라진다.
* 저액권과 고액권의 크기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인데, 특히 2차 발행분의 100원권은 거의 A5크기와 맞먹는 정도로 큼지막하다.
* 저액권과 고액권의 크기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인데, 특히 2차 발행분의 100원권은 거의 A5크기와 맞먹는 정도로 큼지막하다.


=== 건국 초기 (0/1차, 1947 ~ 1958) ===
=== 1차 (1947 ~ 1958) ===
김일성 및 추존 세력(북조선로동당)에 의해 1948년 9월 9일에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한반도는 두 이념로 갈라선 채 실질적으로는 분단 상태였는데, 이는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이 외세에 의한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당시 남측은 미군부가 관리하였었듯, 북측은 [[소련]]군부(일명, 붉은군대 사령부)가 관리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해방 당시 북측의 소련군은 조선은행을 장악하여 '계산실'이라는 기관을 설치하곤 임시화폐 성격의 지폐 4종(1, 5, 10, 100원)을 발행하였다. 뒤이어 1946년 1월 9일에 자본금 1억원(※조선 원화)으로 소련군부가 통제하는 중앙은행이 설립되었으나, 당시의 복잡한 정세상의 이유로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취급하는 민간 기반의 농민은행도 같이 나타나, '붉은군대 사령부'의 화폐와 '조선은행권'이 동시에 통용되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경제 이론에 따라 자본의 공공재화 과정의 일환으로 1947년 10월 29일부로 북측 정당이 꾸린 내각이 중앙은행의 전 권한을 이양받았고, 1947년 12월 6일에 본격적으로 중앙은행이 설치되면서 임시화폐와 조선은행권 양쪽을 모두 대체할 첫 공식 통화(1차)가 발행되었다. 다만 당시에는 남북분단이 확정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조선중앙은행(北朝鮮中央銀行)'으로서 개업하였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고 남북분단이 확실화 됨에 따라 정통성을 주장하고자, 1958~1959년 농민은행을 통합하는 안건이 포함된 통화개혁에 맞춰서 '북(北)' 부분을 떼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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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 건국 초기의 조선돈
! colspan="2" style="text-align: center;" | Choseon 1st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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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선조주민</s>
<s>선조주민</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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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차 (1947, 소련군부임시통화) ===
1947년 소련군부(일병, 붉은군대 사령부)에서 발행한 임시통화로, 1, 5, 10, 100원의 4종류가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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