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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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공화국의 국기

이탈리아어 : 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


한국어 :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


영어 : the Most Serene Republic of Venice


에스파냐어 : Serenísima República de Venecia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하던 이탈리아계 해양 공화국이다.

베네치아 공화국(697~1797)
비잔티움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치살피나 공화국[1]
프랑스 제1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역사

초기

베네치아에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5세기 경으로 추측된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건국 설화에 따르면 로마 말기 야만인 들의 침공으로 벌벌 떨던 마을 주민들이 그 도시 사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 때 사제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자 하나님이 개펄로 도망쳐라고 했고, 그 마을이 그렇게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697년 최초로 도제[2]로 파올로 루치오 아나페스토를 선출하였다.

초기 중세

810년에 베네치아에 프랑크 왕국의 왕이자 서로마 제국[3]의 황제인 피핀이 침입해 온다. 당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마지막 비잔틴 제국령이였다. 육지와 가까운 편이었던 베네치아의 수도[4]를 점령하고 그들을 추적하였으나.... 베네치아의 복잡한 개뻘에 갇히고만 함선들은 결국 화살 공격을 받고 모두 불타버린다. 그 뒤 베네치아 공화국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덤

1000년 그리스도 승천일에 출발하였으며, 도제 피에트로 오르세올로 2세가 이끄는 베네치아 함선들은 과거부터 베네치아를 꾸준히 괴롭혀 왔던 아드리아해 연안의 해적들을 소탕하는데 성공한다. 이에 대한 치하로 비잔틴 제국은 베네치아의 도제에게 달마티아 공작위를 제공한다. 그 이후로 아드리아해 동안은 베네치아가 멸망할 때까지 베네치아령이 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한 축제가 바로 바다와의 결혼식으로, 이 역시 베네치아가 멸망할 때 까지 지속된다.

십자군

십자군 이전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은 사실상 동지중해의 교역을 독점하여 엄청난 부를 쌓고 있었다. 제1차 십자군 원정 이후 수백척의 베네치아 함선이 도시 내에 베네치아인 거류구를 얻는다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해양 도시를 점령하여, 그들을 돕기도 하였다.

그리고 1202~1204년의 제 4차 십자군 원정에서는... 악마와 계약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1.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와 교역 계약을 갱신하면서 숨은 조항으로 이슬람교도를 공격하거나 십자군에 참가하지 않는 다는 조항을 넣었다.
  2. 그 뒤 제 4차 십자군을 위해 프랑스의 제후들이 그들에게 접근해 왔고, 돈을 받고 그들을 당시 파티마 왕조가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에 드랍해 주기로 한다.
  3. 제 4차 십자군이 그 돈을 못내고 있자[5]채무 기간을 유예해 준다는 조건으로 당시 카톨릭 교도 였던 헝가리 왕의 통치하에 있는 자다르를 공격하게 했다. 다름아닌 십자군[6]
  4. 자다르를 점령한 뒤 비잔틴 제국에서 왕위 계승에서 밀린 왕자가 찾아온다.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부탁을 하는데 그 왕자가 부탁한 것은 다름아닌 같은 기독교도(종파가 다르기는 했지만)이자 당시 유럽권 최대의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의 공격
    • 도시 점령시 십자군이 베네치아에게 지고 있던 모든 빚을 비잔틴 제국이 대신 지불한다.
    • 도시 점령시 비잔틴 제국의 성지 수호를 위해 천 명가량의 기사를 십자군 국가에 파견한다.
    • 카톨릭과 정교회를 통합한다.[7]
  5.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콘스탄티노플의 육지 쪽은 대포 발명 전까지는 함락이 사실상 불가능 하였지만 함선들을 이용해 금각만 쪽으로 공격한 것.
  6. 하지만 전임 황제가 돈을 흥청망청 써대서 빚 변제도 못하고, 군대도 못 보내고, 교회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 하였으니...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않는 모습을 본 십자군은 베네치아 거류구와 군사 주둔지가 큰 화재를 당하자, 이를 명분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재점령 한다. 산 마르코 대성당 앞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말도 이 때 가져온 것이다.
  7. 그 뒤 성립된 것이 라틴제국. 제 4차 십자군의 성공으로 베네치아는 크레타, 에우보이아, 코르푸 섬, 베네치아령 이오니아, 필로폰네소스 반도 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경쟁자였던 제노바나 피사 등의 나라를 동지중해 무역에서 격리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라틴제국이 존속할 때 까지 '동로마제국의 3/8의 주권자'란 칭호도 덤.
  8. 그렇게 베네치아는 동지중해의 여왕이 되었다.

15세기

15세기 초에는 이탈리아 내륙부와 달마티아 연안의 영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밀라노 공국을 쳐서 포 강 연안을 따라 유럽행 교역로를 완성하는 한편, 헝가리가 내전에 휩싸였을 때 이스트리아 반도에서 알바니아에 이르는 아드리아해 동안을 장악하였다.

1489년, 십자군 왕국 중 하나였던 키프로스 왕국 전역을 흡수한다

15새기 말의 대 터키 전쟁

1463년 필로폰네소스 반도 남단의 모도네에서 터키 소속의 함선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터키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아르고스[8]를 함락 당하였으나, 헝가리, 알바니아,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고 페라라 제후국의 에스테 후를 고용하여 터키를 공격한다.

하지만 1468년 알바니아 군의 지도자였던 스칸데르베그가 사망하고, 터키군에 의해 1469년 베네치아의 영토였던 에우보이아가 함락된다.[9]

1472년에 사실상 용병화[10]되어 있던 헝가리 군이 터키랑 강화 협상을 체결하였으며, 1473년에는 페르시아가 터키에게 크게 깨지는 바람에 전선에서 탈출 하였다.

그 뒤 1474년에는 터키군은 베네치아의 알바니아 거점이던 스쿠타리(오늘날의 알바니아에 위치한 슈코더르)[11]를 공격하나 실패한다. 동시에 이스켄테르베그가 이끄는 터키군 기병대가 이탈리아 내륙부를 공격하여 프리올리(현 이탈리아의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 주)를 공격한다. 그 불길이 산 마르코 대성당의 종루에서 보일 정도 였다고...

제 1차 스쿠타리 공방전 이후, 1475년 베네치아 공화국과 터키 간의 강화 협상이 진행되기 시작되었다. 처음에 그 결과로 6개월 간의 휴전 을 얻었으나, 그 도중에 터키가 흑해 연안의 타나(현재의 러시아 돈 강 삼각주에 위치했던 도시로 당시 베네치아령)[12], 카파(현재크림 반도에 위치한 페오도시야로 당시 제노바령)[13]가 터키군에 함락되어 러시아-흑해 교역 루트가 막힘과 동시에 강화 역시 물 건너 가게 되었다. 1476년 헝가리가 재 참전하였다. 1477년에는 이스켄데베르가 이끄는 터키 기병대가 베네치아 본토 속령을 다시 유린하기 시작했으며

캉브레 동맹 전쟁, 키프로스 함락, 그리고 레판토 해전

  1. 프랑스 제1공화국이 베네치아를 점령하고 그 영토에 세운 괴뢰국가
  2.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도자 명칭
  3. 오도아케르의 멸망 이후에 세워진 서로마 제국을 의미한다.
  4. 당시의 수도와 지금의 수도는 위치가 달랐다.
  5. 그 돈의 량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프랑스 쪽에서 쪽수 계산 - 왕 급의 제후가 여러 명 참가한다지만 프랑스 왕이 동원 가능한 군데의 몇 배 가량은 되었다. - 을 잘못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덜 오자,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돈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베네치아 인근의 섬에 틀여 박힌 채로 십자군이 공중해체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6. 이 때 교황 특사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베네치아 공화국은 아무것도 아닌 정보를 주고 로마로 보낸 뒤에 목적지를 알려주지도 않고 떠나버렸다. 찾아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7. 이 때문에 자다르를 점령하자 십자군과 베네치아 공화국을 파문에 처한 교황도 이 때에는 다른 카톨릭 도시를 점령하지 않는 조건으로 허가한다. 가는 길에 카톨릭교도의 도시는 없었으니 사실상 아무런 조건도 없었던 셈
  8. http://ko.wikipedia.org/wiki/%EC%95%84%EB%A5%B4%EA%B3%A0%EC%8A%A4
  9. 이 때 베네치아의 수뇌부가 받았던 타격은 꽤나 되었었다.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적에게 오는 보급을 막음과 동시에 요새에 틀어박혀 방어전 때리면 상대가 먼저 GG하리라고 생각했었지만, 해군이 아무것도 못하고 후퇴만 하자, 그대로 함락되어 버린 것. 그 때 해군 제독은 종신 추방형 및 전 재산 몰수를 받았다.
  10. 당시 헝가리는 이슬람 교도 침략을 막는 방파제라는 명목하에 베네치아랑 교황청이 받는 돈으로 정예화 되어 있었다.
  11. http://ko.wikipedia.org/wiki/%EC%8A%88%EC%BD%94%EB%8D%94%EB%A5%B4
  12. http://en.m.wikipedia.org/wiki/Tanais
  13. http://ko.m.wikipedia.org/wiki/페오도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