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24번째 줄: | 24번째 줄: | ||
[[파일:금충.jpeg|thumb|200픽셀|백두산에 산다는 금충의 그림]] | [[파일:금충.jpeg|thumb|200픽셀|백두산에 산다는 금충의 그림]] | ||
{{인용문2|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慎氏之國。有蜚蛭,四翼。有蟲,獸首蛇身,名曰琴蟲。<br | {{인용문2|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慎氏之國。有蜚蛭,四翼。有蟲,獸首蛇身,名曰琴蟲。<br> | ||
대황(大荒)의 한가운데에 불함(不咸)이라는 산이 있고 숙신씨국(肅愼氏國)이 있다. 이곳에 비질(蜚蛭)이 있는데 날개가 넷이다. 짐승의 머리에 뱀의 몸통을 한 것이 있는데 금충(琴蟲)이라 한다.|《산해경》, 장수철 옮김, [[2005년]], 현암 출판사<ref>번역문에서 '짐승의 머리에 뱀의 머리'라고 하였는데 이는 원문과 비교하면 오류가 분명하므로 '뱀의 몸통'이라고 바꾸었다.</ref>}} | 대황(大荒)의 한가운데에 불함(不咸)이라는 산이 있고 숙신씨국(肅愼氏國)이 있다. 이곳에 비질(蜚蛭)이 있는데 날개가 넷이다. 짐승의 머리에 뱀의 몸통을 한 것이 있는데 금충(琴蟲)이라 한다.|《산해경》, 장수철 옮김, [[2005년]], 현암 출판사<ref>번역문에서 '짐승의 머리에 뱀의 머리'라고 하였는데 이는 원문과 비교하면 오류가 분명하므로 '뱀의 몸통'이라고 바꾸었다.</ref>}} | ||
35번째 줄: | 35번째 줄: | ||
백두산이란 호칭은 [[고려]]시대 문헌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고려사]]》 성종 10년(991년) [[10월]]조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 백두산이란 호칭은 [[고려]]시대 문헌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고려사]]》 성종 10년(991년) [[10월]]조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 ||
{{인용문2|逐鴨綠江外女眞於白頭山外<br | {{인용문2|逐鴨綠江外女眞於白頭山外<br>[[압록강]] 바깥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백두산 너머로 쫓아내어 그곳에 거주하게 했다.|《국역 고려사》, [[2008년]], 경인문화사(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온라인 제공)}} | ||
하지만 《[[삼국유사]]》에서도 백두산이란 이름이 언급되므로, 백두산이란 호칭이 [[통일신라]]시대나, 혹은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개연성이 있다. 한국역사학회 송용덕의 논문에서는 [[고구려]] 건국신화 등에서 나타나는 [[태백산]](太白山) 역시 백두산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으나, 북쪽 지방의 진산(鎭山)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일 가능성도 있다고 서술하였다. | 하지만 《[[삼국유사]]》에서도 백두산이란 이름이 언급되므로, 백두산이란 호칭이 [[통일신라]]시대나, 혹은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개연성이 있다. 한국역사학회 송용덕의 논문에서는 [[고구려]] 건국신화 등에서 나타나는 [[태백산]](太白山) 역시 백두산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으나, 북쪽 지방의 진산(鎭山)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일 가능성도 있다고 서술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