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편집하기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

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당신의 편집
1번째 줄: 1번째 줄:
{{작성중}}


{{좌우이동
'''박근혜 정부'''(朴槿惠政府, 2013년 2월 25일 ~ 2016년 12월 9일)는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6번째 정부이다.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를 국가 수반으로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2월 25일]]부터 대통령 탄핵 표결이 가결된 [[2016년]] [[12월 9일]]까지 존속하였다.
|가운데= 제6공화국
}}
{{좌우이동
|왼쪽= 이명박 정부
|오른쪽 = 문재인 정부
|가운데= 박근혜 정부
}}


'''헌정 역사상 최초로 탄핵이 인용되어 불명예 퇴진한 대통령'''
== 외교안보 ==
 
=== [[미국]] ===
==개요 ==
'''박근혜 정부'''(朴槿惠政府, 2013년 2월 25일 ~ 2017년 3월 10일)는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6번째 정부이다.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를 국가 수반으로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2월 25일]]부터 차기 대통령 취임일인 [[2018년]] [[2월 24일]]까지가 정해진 임기였으나, 2016년 10월말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대통령에 대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탄핵|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2016년]] [[12월 9일]]부터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는 날까지 권한이 정지되었으며,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수행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8명 재판관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탄핵을 인용하였으며, 인용이 발표된 시점부터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이 결정된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역사==
 
==정치==
 
==경제==
 
==외교==
===남북 관계===
[[북한]]은 [[2013년]] 3월 [[개성공단]]의 폐쇄를 위협하며 "개성공단의 존폐는 남측 태도에 달렸다"는 입장을 밝혔다.<ref>전수진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53&aid=0000013316 北 “우리 존엄 훼손하면 개성공단 폐쇄”], 중앙SUNDAY, 2013년 3월 31일</ref> 급기야 [[4월 8일]] 북한에 의해 개성공단의 가동이 잠정 중단되었으며 4월 30일까지 7명을 제외한 모든 남측 근로자가 개성공단에서 철수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4088560g 北 "개성공단 가동 잠정 중단…북한 근로자 철수"], 한국경제, 2013년 4월 8일</ref><ref>김연지·김지수 기자, [http://www.nocutnews.co.kr/news/1027648 개성공단 43명 심야귀환…잔류 7명 귀환은 언제?], 노컷뉴스, 2013년 4월 30일</ref>
 
2013년 5월에는 북한이 [[라오스]]로 탈북한 청소년을 강제 북송한 것에 대하여 새누리당, 북한 인권 단체 등이 "납치 사건"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ref>김희진 기자,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41294 황우여, “라오스 탈북 청소년 강제 북송은 북한에 의한 우리 국민 납치사건”], 이투데이, 2013년 5월 31일</ref>
 
2013년 7월에는 북한 측에서 [[금강산]] 관광·이산가족 회담을 제의하였으며 8월에는 북한 [[노동신문]]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등 남북간 화해의 물꼬가 트였지만 한미 간의 키 리졸브 훈련 직전인 [[2014년]] 2월 지속적인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며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의 길을 걸었다.<ref>이광효 기자, [http://www.ajunews.com/kor/view.jsp?newsId=20130710000774 북한, 금강산 관광·이산가족 회담 제의], 아주경제, 2013년 7월 10일</ref><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101547191&code=910303 북한 노동신문, ‘남북관계 개선’ 연일 강조], 경향신문, 2013년 8월 10일</ref><ref>이재호 기자,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4937 북한 미사일 발사, 남한에 대한 엄중한 도발?], 프레시안, 2014년 2월 28일</ref> [[3월 3일]] 경 탄도미사일 발사, [[3월 16일]] 경 단거리 로켓 25발, [[3월 22일]] 새벽 단거리 로켓 30발 발사, [[3월 31일]] NLL 근처 해안포 사격 등 북측의 도발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청와대]]는 NSC 상임위원회를 긴급 소집하였으며, 미 국방장관과의 통화에서 "북한 위협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3238089g 북한 무력시위 계속 왜?…주말새벽 이틀연속 단거리로켓 발사], 한국경제, 2014년 3월 23일</ref><ref>이현수 기자, [http://news.ichannela.com/politics/3/00/20140331/62153109/1 청와대, 북한 포격 끝난 뒤 NSC ‘긴급’ 소집], 채널A, 2014년 3월 31일</ref><ref>김의중 기자,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899438 한미 국방장관 전화통화… “북한 핵·미사일 개발 불용”], 이투데이, 2014년 4월 10일</ref>
 
한편 [[2014년]] [[9월 19일]]부터 열린 [[2014년 아시안 게임|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150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11개의 금메달, 11개의 은메달, 14개의 동메달을 따냈다.
 
2014년 10월에는 남북 군사접촉이 성사되어 천안함 사태, 5.24 조치 해제 등이 다루어졌지만 별다른 합의사항을 도출하지 못한 채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다.<ref>장용훈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187808 남북군사접촉 '천안함' 거론…5·24 해제 첫발 떼나], 연합뉴스, 2014년 10월 15일</ref><ref>[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41015.99002180809 남북 군사당국 접촉…합의 사항 도출 실패, 입장차만 확인], 국제신문, 2014년 10월 15일</ref>
 
[[2014년]] [[12월 29일]] 정부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고위급 대화를 요청하였지만 북한은 국회에서 결의한 남북대화 촉구 결의문조차 거부하며 대남 선전과 비방을 이어갔다.<ref>백민정 기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8989508&code=61111611&cp=nv &#91;정부, 북한에 고위급 대화 제의&#93; 새로운 대화채널로 남북관계 활로 모색], 국민일보, 2014년 12월 29일</ref><ref>문경근 기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110004014 北, 남북대화 촉구 국회결의문 거부], 서울신문, 2015년 1월 10일</ref>
 
[[2015년]] [[6월 15일]]에 북한은 "남북 당국간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그 조건으로 남북관계의 자주적 해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남북 교류를 가로막는 법적 장치 철폐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은 부당한 전제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측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였다.<ref>김외현 기자,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96127.html 북, 6·15 ‘정부 성명’ 발표…“남북대화 못할 이유 없다”], 한겨레, 2015년 6월 15일</ref>
 
같은해 [[8월 4일]] 군사분계선 근처에 매설되어 있던 목함지뢰가 폭발하여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사건 6일만에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으나 북한은 4일 뒤인 [[8월 14일]]에 부인 성명을 발표하였다.<ref>하윤아 기자, [http://www.dailian.co.kr/news/view/521474/?sc=naver 북 나흘 만에 '지뢰 폭발' 부인…천안함 사건 때는...], 데일리안, 2015년 8월 15일</ref>
 
[[8월 15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경축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여 "북한은  도발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밝히고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f>이상일 기자, [http://www.mediapen.com/news/view/88133 박 대통령 “우리 국민 위협하는 북한도발 단호히 대처할 것”], 미디어펜, 2015년 8월 15일</ref>
 
[[8월 20일]]에는 북한이 서부전선에 해당하는 연천, 파주 지역을 포격하였으며, 이로 인해 [[연천군]], [[파주시]], [[김포시]], [[강화군]]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군 최고 경계 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ref>손현규·권숙희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20/0200000000AKR20150820150053060.HTML?input=1195m '北포격' 연천·파주·김포·강화 주민 2천명 대피(종합2보)], 연합뉴스, 2015년 8월 20일</ref><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8/20/20150820005261.html?OutUrl=naver 북한 사격, 진돗개 발령…연천 횡산리 삼곶리 대피], 세계일보, 2015년 8월 20일</ref>
 
[[2016년]] [[1월 6일]]에는 [[북한]]의 [[북한 4차 핵실험|4차 핵실험]]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은 세계 평화 안정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면서 강력히 비판하고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ref>[http://www.mediapen.com/news/view/111660 박근혜 대통령 "북한 핵실험, 세계 평화 안정에 정면 도전"], 미디어펜, 2016년 1월 6일</ref> 또한 [[1월 8일]]부터 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었다.<ref>[http://sports.khan.co.kr/culture/sk_index.html?cat=view&art_id=201601071832333&sec_id=562901&pt=nv “8일 정오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재개”…북한 핵실험 대응], 스포츠경향, 2016년 1월 7일</ref>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이후 북한의 대남전단(일명 ''삐라'') 살포는 더욱 활발해져 [[1월 19일]]에 서울 [[도봉구]]와 [[마포구]]에서, [[1월 20일]]에는 [[경기도]] [[용인시]]에서 삐라가 발견되었다.<ref>임기창·이효석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19/0200000000AKR20160119037952004.HTML?input=1195m 서울 도봉구·마포구에서 '삐라' 잇따라 발견(종합2보)], 연합뉴스, 2016년 1월 19일</ref><ref>강희청 기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275344&code=61121111&cp=nv 북한 삐라가 용인까지 날아와 한때 소동], 국민일보, 2016년 1월 20일</ref>
 
[[4월 7일]]에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이 집단 탈북하여 대한민국 국내로 입국하였으며 북한은 "유인납치"라고 주장하면서 비난 수위를 높였다.<ref>최태범 기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410010004481 ‘한편의 첩보영화 같았던’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아시아투데이, 2016년 4월 10일</ref><ref>안윤석 기자, [http://www.nocutnews.co.kr/news/4584384 北,집단탈북 내부는 '비공개'…대남엔 "유인납치"], 노컷뉴스, 2016년 4월 25일</ref>
 
[[6월 10일]]에는 북한이 '전민족적인 통일 대회합' 행사를 개최하자는 제안을 밝혔으나 통일부는 이에 대해 "통일전선 공세의 일환"이라고 일축하였다.<ref>강정숙 기자, [http://www.ajunews.com/view/20160610115304818 통일부 "북한 '통일대회합' 개최제안은 기만적 선전 공세"], 아주경제, 2016년 6월 10일</ref>
 
이후 대한민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배치하기로 한미 양국이 합의하자 북한은 [[7월 9일]] [[함경남도]] 신포 동남쪽 해상에서 SLBM을 발사하였다.<ref>박성진·김재중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02240005&code=910302 &#91;사드 배치&#93;한·미 “사드 배치” 다음날 SLBM 무력시위한 북한], 경향신문, 2016년 7월 10일</ref>
 
[[9월 9일]]에는 [[북한 5차 핵실험]]이 북한 핵 역사상 최대 규모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신 상태는 통제불능"이라며 북한을 높은 수위로 비판하였다.<ref>이용욱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92244005&code=910302 &#91;북한 5차 핵실험&#93;박 대통령 “김정은 정신상태는 통제불능”], 경향신문, 2016년 9월 9일</ref>
 
북한의 언론들은 대한민국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11월부터 연일 촛불 집회 관련 소식을 보도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발전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광화문광장 주변에 즐비한 고층 건물은 모자이크한 것으로 알려졌다.<ref>이봉석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08/0200000000AKR20161208144500014.HTML?input=1195m 北TV, 촛불집회 보도하며 고층건물 등 모자이크 처리], 연합뉴스, 2016년 12월 8일</ref>
 
===한미 관계===
박 대통령 취임 후인 [[2013년]] [[4월 13일]]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이 방한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으며 "비핵화 조건으로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f>이재철·김성훈 기자,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282852 케리 "北과 대화 원해, 비핵화가 조건"], 매일경제, 2013년 4월 12일</ref> 같은 해 7월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DC]] 내의 [[한국 전쟁]] 참전 기념공원에 방문해 한미동맹 강화를 약속하는 등 양국 정상은 돈독한 관계를 가져왔다.<ref>손균근 기자,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30729.22001213233 오바마 "6·25 한국의 승리"…박근혜 "북, 핵개발 포기해야"], 국제신문, 2013년 7월 28일</ref>
박 대통령 취임 후인 [[2013년]] [[4월 13일]]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이 방한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으며 "비핵화 조건으로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f>이재철·김성훈 기자,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282852 케리 "北과 대화 원해, 비핵화가 조건"], 매일경제, 2013년 4월 12일</ref> 같은 해 7월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DC]] 내의 [[한국 전쟁]] 참전 기념공원에 방문해 한미동맹 강화를 약속하는 등 양국 정상은 돈독한 관계를 가져왔다.<ref>손균근 기자,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30729.22001213233 오바마 "6·25 한국의 승리"…박근혜 "북, 핵개발 포기해야"], 국제신문, 2013년 7월 28일</ref>


63번째 줄: 11번째 줄: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중국 외교에 적극적인 모습을 취함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이러한 박 대통령의 행보를 우려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ref>남지원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032215005&code=910302 &#91;한·중 정상회담&#93;미 언론 “박근혜는 오바마보다 시진핑을 좋아하나”], 경향신문, 2014년 7월 3일</ref>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중국 외교에 적극적인 모습을 취함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이러한 박 대통령의 행보를 우려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ref>남지원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032215005&code=910302 &#91;한·중 정상회담&#93;미 언론 “박근혜는 오바마보다 시진핑을 좋아하나”], 경향신문, 2014년 7월 3일</ref>


[[2015년]] 6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방미를 취소하였고 대신 20분간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ref>박순표 기자, [http://www.ytn.co.kr/_ln/0101_201506122203066228 박근혜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과 통화..."충분히 이해...빠른 시간 안에 방미"], YTN, 2015년 6월 12일</ref>
[[2015년]] 6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방미를 취소하였다.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한 양국간의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져 [[2016년]] [[7월 13일]]에 배치가 결정되었다.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한 양국간의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져 [[2016년]] [[7월 13일]]에 배치가 결정되었다.


[[북한 5차 핵실험]]이 이루어진 2016년 9월에는 두 정상 간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으며 오바마는 유사시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ref>이상배 기자, [http://the300.mt.co.kr/newsView.html?no=2016090913067682634 한미 정상 '北 5차 핵실험' 통화…오바마, '핵우산' 약속], 머니투데이, 2016년 9월 9일</ref>
=== [[중국]] ===
 
한국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자 미 정부는 '탄핵 정국을 예의주시하겠다'면서도 '한미 동맹과 사드 배치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ref>송은세 기자, [http://www.focus.kr/view.php?key=2016121000141758119 美 정부, 탄핵 정국 '예의주시'… "한미 동맹·사드 배치는 영향없다"], 포커스뉴스, 2016년 12월 10일</ref>
===한중 관계===
박근혜는 2013년 6월 말 [[중국]]을 방문하여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며 한반도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ref>안홍욱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302221595&code=910302 시진핑과 신뢰 다졌지만 북핵 문제 등 ‘숙제’ 남겨], 경향신문, 2013년 6월 30일</ref>
 
이후 한국 전쟁 참전 중국군 유해송환이 이루어지는 등 한중 양국 관계는 급격히 발전하였다.<ref>김정욱 기자, [http://news1.kr/articles/?1459339 중국군 유해송환…발전된 한중관계 과시], 뉴스1, 2013년 12월 19일</ref>
 
2014년 7월에도 두 정상이 만나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며,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이전보다 더욱 명확히 표명하였다.<ref>강병철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995940 한중, 북핵 반대…6자회담 재개조건 마련에 공감], 연합뉴스, 2014년 7월 3일</ref>
 
이후에도 한중 국방부 간 핫라인이 개통되고 양국 총리 간의 회담도 성사되는 등 양국 간의 교류와 외교는 계속되었다.<ref>이영재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30/0200000000AKR20151230157900014.HTML?input=1195m 한중 국방부 핫라인 개통…"北 돌발사태에 긴밀공조"], 연합뉴스, 2015년 12월 31일</ref><ref>홍근진 기자,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1035294&thread=11r02 황교안 국무총리, 리커창 국무원 총리와 한중 총리회담], 아시아뉴스통신, 2016년 6월 29일</ref>
 
한편 방공식별구역과 사드 배치 등의 현안에 대해서는 갈등이 지속되었으며 특히 사드 배치에 관해서는 중국 측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며 마찰음이 계속되었다.<ref>김효정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27/0200000000AKR20160727005200014.HTML?input=1195m 사드 갈등에 냉기 확인한 한중…시험대 오른 한국외교] 연합뉴스, 2016년 7월 27일</ref> 중국 측은 사드 배치 이후 경제적 보복 방침을 밝혔으며, 규제 대상에 K-POP 등 한류도 포함되면서 한국 드라마, 가요 등의 중국 수출도 고비를 맞았다.<ref>신경진 특파원,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3274 &#91;현지 리포트&#93; 사드 후폭풍, 중국 내 혐한(嫌韓) 수위는?], 월간중앙, 2016년 9월 17일</ref>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중국 언론들이 관련 소식들을 쏟아내며 큰 관심을 보였다.<ref>정은지 기자, [http://news1.kr/articles/?2835627 中언론, 국정농단 검찰 발표 타전…"朴대통령 공범"], 뉴스1, 2016년 11월 20일</ref>
 
===한일 관계===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1월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근혜에게 특사를 파견하는 등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일본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하도록 하는 등 독도 등의 문제에 대해서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ref>김민찬 기자, [http://news.ichannela.com/politics/3/00/20130104/52063159/1 &#91;뉴스 와이드&#93;박근혜, 日 아베 특사단 접견…‘신뢰외교’ 강조], 채널A, 2013년 1월 4일</ref><ref>최현미 기자,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219010314320230040 독도 도발 계속…‘아베 꼼수’], 문화일보, 2013년 2월 19일</ref>
 
4월경 일본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계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자 [[대한민국 외교부]]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비판하기도 하였다.<ref>손제민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232105171&code=910302 외교부 “아베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 폄하” 비판], 경향신문, 2013년 4월 23일</ref>
 
아베 총리는 지속적 우경화 행보를 이어갔으며, [[2013년]] [[8월 15일]] '패전기념일' 연설에서 침략 사과와 가해에 대한 반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ref>유세진 기자,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0815_0012290842&cID=10102&pID=10100 아베 총리, 패전기념일 연설에서 가해에 대한 반성 일절 언급 안해], 뉴시스, 2013년 8월 15일</ref><ref>김지아 기자,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15/2013081590239.html 아베 '반성' 대신 '전범 찬양'…사상 최다 참배], TV조선, 2013년 8월 15일</ref> 이에 대해 외교부는 경고 메시지를 던졌으며, 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ref>남혁상 기자, [http://news.kukinews.com/news/article.html?no=154353 "외교부 日에 경고, "아베 내각 관료 야스쿠니 참배 안 돼""], 쿠키뉴스, 2013년 8월 5일</ref>
 
2013년 [[11월 14일]] 일본의 보수 잡지 '주간문춘'에서는 "아베 일본 총리가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나라'라고 말했다"고 밝혔다.<ref>이상배 기자,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111508090712166&outlink=1 日 아베 총리 "한국은 어리석은 나라" 망언], 머니투데이, 2013년 11월 15일</ref> 그러나 일본 정부에서는 "주간문춘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으며 대한민국 외교부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ref>박태훈 기자,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1/15/20131115001752.html?OutUrl=naver 외교부, "일본, 아베 망언 사실 없다고 펄쩍 뛰었다".], 세계일보, 2013년 11월 15일</ref>
 
또한 아베 총리는 2013년 [[12월 17일]]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에 [[독도]]의 영유권을 명기하였고,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안보전략'이 발표되자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몰역사적"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ref>강병철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54976 정부 "日 독도영유권 주장은 몰역사적…철회해야"], 연합뉴스, 2013년 12월 17일</ref> 그러나 아베 총리가 한술 더 떠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단독 제소하는 것도 검토중"이라고 밝히자 정부는 "무의미한 짓"이라며 강력 비난하였다.<ref>우성규 기자, [http://news.kukinews.com/news/article.html?no=181879 외교부, 아베의 독도 ICIJ 제소 움직임에 “무의미한 짓” 강력 비난], 쿠키뉴스, 2014년 1월 31일</ref>
 
냉각되었던 한일 관계는 [[2014년]] [[3월 14일]] 아베 일본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긍정적 입장을 내놓으면서 조금씩 풀어지는 듯 하였지만,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 한국이 개입하였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3달만에 과거사 반성 입장을 번복하면서 한일관계는 다시 경색의 길로 접어들었다.<ref>김종원 기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0315010007699 朴대통령, 아베 긍정평가…한일정상회담 단초되나], 아시아투데이, 2014년 3월 15일</ref><ref>임상균·김기정 기자,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911267 아베 `과거사 반성` 결국 뒤집기], 매일경제, 2014년 6월 20일</ref>
 
[[2014년]] [[8월 15일]]에는 아베 일본 총리가 패전기념일을 맞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 중국 국민들에게 공분을 샀다. 다만 아베 총리는 직접 참배 대신 공물료를 보내는 간접적 참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815000087&md=20140818003747_BL 아베 내각 야스쿠니 참배, 아베는 직접 참배 대신에…‘공분’], 헤럴드경제, 2014년 8월 15일</ref>
 
같은 해 [[9월 14일]],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의 문제점을 담은 [[아사히신문]]의 기사에 대해 '오보'라며 강력히 비판하였다.<ref>유동근 기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786041&code=11141700&cp=nv 아베 “아사히신문 오보 책임져라”… 위안부 보도에 날선 비판], 국민일보, 2014년 9월 15일</ref> 그러면서도 아베 총리는 친서를 통해 한일 정상회담을 제안하였으며 박 대통령은 "과거사 인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하였다.<ref>김창우 기자, [http://www.kwnews.co.kr/nview.asp?s=101&aid=214091900080 아베 총리 친서 통해 `한일 정상회담' 제의], 강원일보, 2014년 9월 20일</ref><ref>송현수 기자,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40920000029 아베 "11월 만납시다" 박 대통령 "과거사 치유부터…"], 부산일보, 2014년 9월 20일</ref>
 
그 이후로 한일관계는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여 [[10월 15일]] 아베 일본 총리가 "우리의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면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때 박근혜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며, [[11월 1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중일 정상회담 제의에 아베 총리도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ref>이세원 특파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7187703 아베 "ASEM 때 朴대통령과 얘기할 기회 있으면 좋겠다"], 연합뉴스, 2014년 10월 15일</ref><ref>조준형 특파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1/14/0200000000AKR20141114033400073.HTML?input=1195m 아베 총리도 "한·중·일 정상회담 희망"], 연합뉴스, 2014년 11월 14일</ref>
 
[[2015년]] [[2월 19일]] 아베 일본 총리는 일명 '아베 담화'의 문안 등을 검토할 전문가 16명을 발표하였고, 정부는 대변인을 통해 "이번 아베 담화가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에서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ref>김효정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2/24/0200000000AKR20150224128900043.HTML?input=1195m 정부 "아베담화 역사인식 후퇴 불가" 거듭 강조], 연합뉴스, 2015년 2월 24일</ref> 그러나 같은 해 [[8월 7일]] 발표된 담화 최종보고서에는 [[대만]]의 식민지화 경위가 언급되었지만 한반도 식민지화 경위는 전혀 언급되지 않아 "부실한 담화 내용"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758845 아베담화보고서, 식민지화 경위 대만만 언급…한국은 안 다뤄], 매일경제, 2015년 8월 7일</ref>
 
[[8월 14일]], 최종적으로 다듬어진 전후 70주년 담화문을 아베 일본 총리가 낭독하였다. 담화문에는 위안부에 대한 간접적 표현이 포함되기는 하였으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명시하지 않았다.<ref>이재준 기자,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814_0010225452&cID=10101&pID=10100 &#91;종합&#93;아베 전후 70주년 담화서 식민지 지배·침략 명시 안해], 뉴시스, 2015년 8월 14일</ref> 다음날 정부는 논평을 통해 담화문을 비판하였지만, 한일 관계를 의식한 듯 비판보다는 미래의 양국 관계에 더 중점을 두는 모양새를 보였다.<ref>이귀원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15/0200000000AKR20150815043000043.HTML?input=1195m 정부, 아베담화에 '절제된 비판'…관계개선 염두 고심 흔적], 연합뉴스, 2015년 8월 15일</ref>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5년]] [[11월 2일]] 한일정상회담 자리에서 만나 위안부 문제 등 각종 한일 갈등 요인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위안부 문제 조기 타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하였으나 상세한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입장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f>주진 기자, [http://www.ajunews.com/view/20151102123558775 &#91;한일정상회담&#93; 박근혜 대통령-아베 총리, 위안부 조기 타결 협의 가속화 합의], 아주경제, 2015년 11월 2일</ref> 이외에도 박 대통령은 '[[중국]]의 남중국해 평화 위협에 맞서 공동 대응하자'라는 아베 총리의 제안에 대해서 "남중국해의 평화가 깨지면 안될 것"이라며 "남중국해 평화에 위협을 끼치는 행동 자제를 국제 사회에 촉구해오고 있다"고 밝혔다.<ref>김경택 기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023124&code=61111111&cp=nv 아베 “남중국해 공동대응” 언급에 朴 대통령 ‘국제규범’ 강조], 국민일보, 2015년 11월 2일</ref>
 
[[2016년]] [[8월 15일]], 아베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하였고, 일부 각료와 의원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였다.<ref>송원형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5/2016081501168.html 日 아베 총리 야스쿠니 공물료 납부, 추도식선 '가해' 언급 안해…일왕은 '반성'언급], 조선일보, 2016년 8월 15일</ref> 이는 아키히토 일왕의 과거사 반성 행보와 대비되는 것으로, 정부는 아베 총리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하여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하였다.<ref>정은지 기자, [http://news1.kr/articles/?2747620 일왕 "과거 깊은 반성"…가해 언급 안한 아베와 대비], 뉴스1, 2016년 8월 15일</ref><ref>이지선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51441001&code=910100 정부, 아베 야스쿠니 봉납·정치인 참배에 "깊은 우려와 유감"], 경향신문, 2016년 8월 15일</ref>
 
==사건/사고==
 
==이 시기를 다룬 대중매체==
 


{{각주}}
{{각주}}


[[분류:제6공화국]]
[[분류:박근혜 정부| ]]
[[분류:박근혜 정부| ]]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