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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핀의 기증]]으로 성립된 [[로마 교황령]]이 그 기원이다. 교황령은 약 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영토적 변화는 있었지만 이탈리아 중부 최대의 세력으로 존재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한때 사라지긴 했지만 [[빈 회의]]로 교황령은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통일 와중에 로마를 제외한 모든 교황령 영토가 [[이탈리아 왕국]]에게 넘어갔고,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와중에 로마 주둔 프랑스군이 철수한 틈을 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로마까지 점령하고 교황령을 완전히 폐지했다. | [[피핀의 기증]]으로 성립된 [[로마 교황령]]이 그 기원이다. 교황령은 약 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영토적 변화는 있었지만 이탈리아 중부 최대의 세력으로 존재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한때 사라지긴 했지만 [[빈 회의]]로 교황령은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통일 와중에 로마를 제외한 모든 교황령 영토가 [[이탈리아 왕국]]에게 넘어갔고,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와중에 로마 주둔 프랑스군이 철수한 틈을 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로마까지 점령하고 교황령을 완전히 폐지했다. | ||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는 [[교황]]과 이탈리아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인구의 99.9%를 차지하는 카톨릭 교도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자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바티칸 언덕 일대의 0.44km²를 교황의 영토로 인정하면서 현대 바티칸 시국의 역사가 |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는 [[교황]]과 이탈리아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인구의 99.9%를 차지하는 카톨릭 교도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자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바티칸 언덕 일대의 0.44km²를 교황의 영토로 인정하면서 현대 바티칸 시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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