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통치

3.1 운동을 계기로 일제는 헌병 경찰을 동원한 강압적인 무단 통치의 한계를 깨닫고 식민 통치를 바꾸었다.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1]를 내새워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인의 반발을 무마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도 일부 허용하였고 다양한 사회 운동 단체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공업이 빠르게 발달되어, 공업화로 인해 도시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농업 생산량은 이에 미치지 못하였다. 결국 부족한 쌀을 한국에서 충당하고자 하였다. 또한, 3.1 운동 이후 한국인들의 반일 정신과 독립 정신이 높아졌다. 또한 비폭력시위로 진행된 3.1 운동을 강압적으로 일제가 탄압하자 이에 대해 불만이 강화되었다.

정책[편집 | 원본 편집]

  • 문관도 총독 임명 가능: 식민 통치가 끝날 때까지 문관 총독은 단 한 명도 임명되지 않았다.
  • 보통 경찰제 실시: 경찰 관서와 인원, 비용 등이 3.1 운동 이전보다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일제는 1군 1경찰서와 1면 1주재소 체제를 확립하였고, 고등 경찰제를 실시하였다.
    헌병 경찰제와 보통 경찰제의 경찰 제도를 비교한 그래프
  • 태형 제도와 관리/교원의 제복 착용 폐지
  •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도 일부 허용: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발간이 되었다. 하지만 검열을 통해 기사를 삭제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 압수/정간하기도 하였다. 또한 치안 유지법[2]을 이용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 민족 분열 정책: 일제는 한국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선전하며 지방 제도를 개편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설치한 기구들은 의결권이 없는 자문 기구일 뿐이었고, 일본인이나 친일 인사로 구성되었다. 또한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교육 기회의 확대를 표방하면서 보통학교의 교육 연한을 늘리고 학교 수를 일부 증설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 수가 많이 부족하고 학비가 비쌌기 때문에 한국인의 취학률은 일본인에 비해 낮았다. 일제는 제한된 자유를 허락하여 일제 협력자를 양성하였고 문화 통치에 동조한 일부 지신인들은 민족 개조론, 자치론, 참정권론 등을 주장하고 민족 운동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 산미 증식 계획 실시(1920~1934): 일제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확 품종으로 벼종자를 개량하고 비료 사용의 확대하였으며, 농토를 개간하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또한 저수지와 제방을 만들기 위해 전국 각지에 수리 조합을 조직하였다. 하지만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량은 그다지 늘지 않았으나, 일본으로 이출되는 쌀의 양은 해마다 증가하였다. 토지 회사나 지주들은 일본으로 쌀을 팔아 더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은 높은 소작료뿐만 아니라 종자 개량비, 비료 대금, 수리 조합비 등까지 떠맡게 되어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 회사 설립 허가제를 신고제로 변경: 1920년 회사 설립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어 더 쉽게 만들었다. 신고제는 형식적인 심사만 거쳐 허가제보다 쉽다. 조선 거주 국민의 회사 설립을 쉽게 한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인의 회사 설립이 사실상 유리해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 경제 정책 변화: 또 일제는 1923년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 관세를 폐지하여 일본 상품이 조선에서 더 싼값에 팔릴 수 있도록 하였다. 1928년에는 신은행령을 발표하고 한국인 소유의 은행을 합병하는 등 금융 분야에서도 일본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한국인이 세운 공장 수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공장 수와 비슷하였으나, 한국인 기업은 대부분 유통이나 제조업 분야의 소규모 회사였기 때문에 생산액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1. 3.1 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통해 “조선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한다”라며 문화 통치를 내새웠다.
  2. 일제의 국가 체제나 사유 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자를 단속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로, 일제는 이를 통해 사회주의 운동뿐만 아니라 농민, 노동 운동, 항일 민족 운동을 탄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