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구치 렌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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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s>정말놀랍내요</s> 이 말의 경우 "일본인은 주로 채식을 하기 때문에 식량이 떨어지면 초근목피로 어느정도 버틸 수 있다" 또는 "일본군은 원래 초식동물인 고로 주위를 둘러보면 풀이 이토록 많으니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그 말이 그 말이다. 당시의 참전했던 군인들 중 한 명은 풀을 가리키면서 "식량이 사방에 널려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풀을 뜯어먹으면서 전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남겼다. 조금 전에는 분명 길가의 풀은 소나 말을 먹인다고 했던 것 같다면 제대로 본 거다 인간과 동물을 같이 대우하는 선진 병영 일본군 참고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식량이 떨어지자 주변의 식물을 아무거나 집어먹다가 전멸한 사례는 흔하다. 게다가 정글은 사람들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녹색 사막이라고 부를 정도로[3] 생산력과 인구부양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지역인데 사람이 먹을 만 하거나 많이 나는 식물은 적지만 독성을 가진 식물은 많다.[4] 식물에서 눈을 돌려 벌레나 작은 동물을 사냥한다고 쳐도 그걸로 사단을 이루는 1만 명 이상의 식량이 될 리가 있겠는가? 애초에 저런 것만 먹으면 몸이 버틸 수가 없다. 애초에 군인들은 보급을 잘 받고 식량을 잘 챙겨먹고 해야 전투력이 생긴다. 그리고 극지생활하는 사람들처럼 전투도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평상시 성인 섭취량보다 배는 먹어야 한다. 근데 이분은 보급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거기에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데 군인들이 잘 버티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정글에서는 전투력 유지와 생존을 위해 잘 먹고 체력을 보존하는 게 더더욱 중요한데 풀만 뜯어먹으라는 것은 이미 그 시점에서 전투력을 포기한 수준의 발언이다.
<s>정말놀랍내요</s> 이 말의 경우 "일본인은 주로 채식을 하기 때문에 식량이 떨어지면 초근목피로 어느정도 버틸 수 있다" 또는 "일본군은 원래 초식동물인 고로 주위를 둘러보면 풀이 이토록 많으니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그 말이 그 말이다. 당시의 참전했던 군인들 중 한 명은 풀을 가리키면서 "식량이 사방에 널려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풀을 뜯어먹으면서 전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남겼다. 조금 전에는 분명 길가의 풀은 소나 말을 먹인다고 했던 것 같다면 제대로 본 거다 인간과 동물을 같이 대우하는 선진 병영 일본군 참고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식량이 떨어지자 주변의 식물을 아무거나 집어먹다가 전멸한 사례는 흔하다. 게다가 정글은 사람들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녹색 사막이라고 부를 정도로 생산력과 인구부양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지역인데 사람이 먹을 만 하거나 많이 나는 식물은 적지만 독성을 가진 식물은 많다. 식물에서 눈을 돌려 벌레나 작은 동물을 사냥한다고 쳐도 그걸로 사단을 이루는 1만 명 이상의 식량이 될 리가 있겠는가? 애초에 저런 것만 먹으면 몸이 버틸 수가 없다. 애초에 군인들은 보급을 잘 받고 식량을 잘 챙겨먹고 해야 전투력이 생긴다. 그리고 극지생활하는 사람들처럼 전투도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평상시 성인 섭취량보다 배는 먹어야 한다. 근데 이분은 보급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거기에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데 군인들이 잘 버티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정글에서는 전투력 유지와 생존을 위해 잘 먹고 체력을 보존하는 게 더더욱 중요한데 풀만 뜯어먹으라는 것은 이미 그 시점에서 전투력을 포기한 수준의 발언이다.

2015년 5월 12일 (화) 17:49 판

개요

아! 저 초롱초롱한 눈을보아라!

일본의 3대오물중 하나이자 가장유명한 팀킬러. 일본 극우익세력들도 극혐하는사람. 상사가 이상하면 아래쪽이 개고생한다는걸 보여준 증인

무타구치 렌야 1888년 10월 7일 ~ 1966년 8월 2일

태평양전쟁당시 일본 제 15군 사령관이였으며 그의 행적을 보자면 어째서 이딴새끼가 사령관이됬는지 궁금해질지경이다. 덕분에 독립이 앞당겨졌지만.그가 이렇게까지 올라갈수있었던이유는 빽이있었기 때문이였다.일본의 병신짓으로 잘알려져있는 임팔작전의 주모자였으며 그는 조국을위해싸웠는대뭐? 오히려 조국을 패망을로이끈 존재였다.

생애

초반

1888년 10월 7일 일본 시가 현에서 태어나 22살에 육군사관학교를 29세의나이로 육군대학교를 졸업했다.시베리아 침공에 참전했고 이후 캄차카 반도라는곳에 잠입하여 홀로 정탐활동을 벌였다고한다.이쯤까지는 그냥 '아 평범한대?'라고 생각할수도있다.

중일전쟁을 열다

루거우차오사건(노구교)사건때 무타구치렌야는 중일전쟁의 시발점을 알렸다 이유인 즉슨 렌야의 병사 A가 '아 똥마려'라면서 밖에나갔는대 렌야가 병사를세어본순간 한명이 부족하다는걸알아체고 '아! 중국의짓이구나'창의력 S급이신 렌야선생이라고생각하고 중국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내렸었다 그리고 이걸 빌미로 나중에 중일전쟁이 일어난것이였다. 게다가 그는 참여를하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열어지는 작전회의에서 열심히한것처럼보이기위해 붕대를(!!)팔에감고 나와 다친척을했다.

그리고 이사건뒤 렌야는 소대장으로진급 뭐요?했고 제 4군 참모총장이되었다.

맛보기를 보여준 싱가포르전투

1940년엔 중장으로 진급했고 18사단 사단장으로 싱가포르 전투에 참전했다. 여기서 무타구치는 수류탄 파편에 맞아 다쳤다. 이 부상도 엄청나게 황당한데, 부대에서 술 잔치 벌이다 갑자기 날아온 포격을 피하려고 도망가다 하수구를 대피소로 착각해서 숨다가 겪었다.아~ 역시 모전구렴야 중장니뮤~ 그리고 18사단은 싱가포르 함락 뒤 필리핀의 바탄 반도에 갔으며 1942년 4월에는 버마 전선으로 다시 왔다. 1943년 3월에는 제15군의 사령관으로 승진했다.

이 때 대본영의 인도진공 계획을 충격적이게도 밀림과 산악에서는 작전 수행이 어렵다며 바로 반대해, 끝내 대본영이 인도진공을 미뤘다. 여기서 천하의 개쌍놈이자 희대의 인간 쓰레기인 도조 히데키가 이 일을 냉철한 판단력을 지녔다고 극찬했으니 웃기다.(...) 그런데 이때는 버마 함락의 후유증으로 인도 국경 쪽 영국군의 상태가 엉망진창이라서 오히려 이때 공격했으면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았다. 도조 히데키도 임팔 작전을 1942년에는 했어야 했다고 나중에 땅을 쳤다.

이랬던 그가 버마를 지키는 제15군의 사령관이었을 때 인도의 영국군이 버마를 공격하자, 생각을 바꿔 인도진공을 계획했다. 조지프 스틸웰이 버마 탈환 노래를 부르며 병력을 모으고 있고 인도군, 영국군이 전열을 정비한 상태가 되서 말이다.(...)

태평양전쟁때의 그의활약과 명언

전쟁이전 무타구치의 상황은 자신이 속한 계파가 정치적으로 대패하면서 노구교 사건 당시 중국으로 부임한 시점에서 이미 좌천당한 신세였다. 노구교 사건 당시 이 일을 계기로 좌천당한 자기 신세를 만회해보려는 심산으로 공격 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은 역시 일본군의 전매특허인 파벌주의. 이 '실책'을 만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얼마뒤 버마 북부에서 영국군의 게릴라 부대가 출몰하자 '좋아 이걸이용하는거다!'라고생각했지만 이 영국군은 걸어서온것이아니라 비행이기로온것이였지만 무타구치는 임팔 작전을 강행한다

몇몇 병사들은 '아니 식량도없고 무기도 안좋은대 그냥 퇴각합시다 예?'라고 반대를했지만 무타구치는 다음과 같은말을했다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물론 저말이 틀린것은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인데다가 적들도 멍청하지가않아서 식량을 그대로 남겨둘리가없다.

그리고 히로히토 덴노의 동생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무다구치렌야에게 '보급어떻게하시게요?'라는 말을들을정도로 막장이였던것이였다 [1].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라는 말도남겼었는데 소나 코끼리,말같은 건 먹이도 제대로안주고 부려먹기때문에 질하고맛도떨어지고 영양소도 없었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현대전에서 항공기의 중요성을 망각했다는 것은 둘째로 치고라도 정작 영국군은 포위된 진지에 계속 항공 보급으로 각종 물자를 쏟아부었다. 당시 굶주린 일본군들까지 그 항공물자가 자기 쪽으로 떨어지기만을 고대하면서 운 좋게 손에 넣으면 처칠급여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게다가 당장 이 작전의 원인이 된 영국 게릴라들도 당연히 공수된 부대다. 그리고 항공지원이 없는 보병은 적의 제공권 하에서는 보통 큰 피해를 입고 위축되어 작전을 하는데 그 상황이 실제 일어났다. 반면 연합군이나 독일군의 경우는 항공지원이 잘 결합되어 큰 전과를 올린 경우가 많아 심하게 대조된다.

"'뭐라고? 그딴 걱정은 하지 마. 적을 만나면 총구를 하늘에 대고 3발만 쏘아 보라고. 그러면 자동으로 항복하게 되어있어.'"

15군 사령부 작전회의에서 '보급이 원활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지하게 염려하는 의견을 제시한 15군 보급참모 우스이에게 농담이랍시고 한 소리다. 무다구치가 적인 영국군을 얼마나 터무니없이 얕보고 방심하고 있었는지 더 설명이 必要韓紙?

그러나 이보다도 더 심한 명언이 있었으니, 일선 부대에서 보급품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하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정말놀랍내요 이 말의 경우 "일본인은 주로 채식을 하기 때문에 식량이 떨어지면 초근목피로 어느정도 버틸 수 있다" 또는 "일본군은 원래 초식동물인 고로 주위를 둘러보면 풀이 이토록 많으니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그 말이 그 말이다. 당시의 참전했던 군인들 중 한 명은 풀을 가리키면서 "식량이 사방에 널려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풀을 뜯어먹으면서 전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남겼다. 조금 전에는 분명 길가의 풀은 소나 말을 먹인다고 했던 것 같다면 제대로 본 거다 인간과 동물을 같이 대우하는 선진 병영 일본군 참고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식량이 떨어지자 주변의 식물을 아무거나 집어먹다가 전멸한 사례는 흔하다. 게다가 정글은 사람들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녹색 사막이라고 부를 정도로 생산력과 인구부양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지역인데 사람이 먹을 만 하거나 많이 나는 식물은 적지만 독성을 가진 식물은 많다. 식물에서 눈을 돌려 벌레나 작은 동물을 사냥한다고 쳐도 그걸로 사단을 이루는 1만 명 이상의 식량이 될 리가 있겠는가? 애초에 저런 것만 먹으면 몸이 버틸 수가 없다. 애초에 군인들은 보급을 잘 받고 식량을 잘 챙겨먹고 해야 전투력이 생긴다. 그리고 극지생활하는 사람들처럼 전투도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평상시 성인 섭취량보다 배는 먹어야 한다. 근데 이분은 보급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거기에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데 군인들이 잘 버티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정글에서는 전투력 유지와 생존을 위해 잘 먹고 체력을 보존하는 게 더더욱 중요한데 풀만 뜯어먹으라는 것은 이미 그 시점에서 전투력을 포기한 수준의 발언이다.

  1. 다가히토는 육군대위기는했지만 후방사령부에서만 근무하고 실전경험도없는 신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