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사이드 사우스

현대의 리버사이드 사우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영문 명칭은 Riverside South. 미국 뉴욕 맨해탄 어퍼 웨스트사이드 링컨 스퀘어 지역에 재개발된[1] 지역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재개발 전[편집 | 원본 편집]

재개발 전의 리버사이드 사우스

원래 이 곳은 뉴욕 중앙철도의 화물 조차장이었다. 그리고 1880년 강을 매립시켜 거대한 60번가로 만들기 전까지 현재 리버사이드 사우스 지역은 물속에 잠겨있던 상태였다.

뉴욕 중앙 철도의 72번가 북쪽 철도는 1930년대에 로버트 모세의 한 프로젝트로 다뤄졌었는데, 이것은 서쪽 지역의 길이에 걸쳐 철도 노선과 지상 교통을 분리시킨 거대한 웨스트 사이드 개선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1970년까지는 철도 공지 지역은 일반적으로 산업적이었다. 또한 이 지역은 1959년에서 1975년 사이 뉴욕 타임즈의 인쇄공장과 ABC 텔레비전 스튜디오의 본거지였다.

초기 개발 계획[편집 | 원본 편집]

뉴욕 중앙철도는 1968년 펜실베니아 철도와 합병하면서 펜 센트럴이 되었는데 철도 노선 2개 모두 폐선을 고려할 정도로 꽤나 어려운 재정 위기에 처했있었다. 그 후 팬 센트럴은 결국 파산선고를 받고 가지고 있던 자산은 법원에 매각되었다. 매각 이후 땅을 산 사람이 있는데 바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다. 1974년 59-72번가 마당을 1000만 달러로 처음 선택했다.

땅을 산 이유에 대해서는 "재배치 및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위치"라고 이야기 했다. 트럼프는 이 지역에 최대 2만~3만 채의 주택을 짓고 싶어했다. 정치적으로 강력한 부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표하는 제7맨하탄 지역 위원회의 반대로 트럼프는 2번이나 계획을 축소하였다. 그의 제안 중 하나는 12,450채의 아파트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은 예산에 잡은적 없는 공공 자금에 의존했다. 또 다른 제안은 고속도로의 재배치와 인조공원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마르시 기업은 아베 히르쉬펠드와 함께 1972년~1978년에 걸쳐 그 부동산을 샀고 이 곳에 약 68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링컨 웨스트” 계획(거대 거주지 재개발)을 시도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실패했고 이 계획은 엎어졌다. 그 후 트럼프는 1985년 마르시 기업이 가지고 있던 사업권을 9천500만 달러에 사버렸다.

TV시티 계획[편집 | 원본 편집]

1985년 트럼프는 이 땅에 일명 텔레비전 시티라는 것을 만들려 했다. NBC 본부를 중심으로 텔레비전 스튜디오를 짓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144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주택지, 가게, 사무실, 방송 스튜디오가 들어오고 7,600개의 주거용 건물, 주차장, 이스트 코스트에서 가장 큰 쇼핑몰, 호텔, 그리고 다른 공간들을 포함하는 건설 계획이었다.

헬무트 얀이 디자인한 이 프로젝트는 부지 한 가운데 무려 150층 규모의 당시 '최고로 높은 빌딩'이라는 이름을 붙인 빌딩과 그 북쪽과 남쪽으로 76층 규모의 빌딩이 무려 6채나 들어서는 설계 계획이었다. 이 계획을 듣고 일부 웨스트사이드 상류층 주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 맞서 싸우는 웨스트프라이드라는 단체를 결성해 이 지역의 저명한 주민들을 모집하고 수십만 달러를 모금했다. 트럼프와 당시 뉴욕시장 에드 코흐는 NBC에 관해 협상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코흐는 트럼프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대신 NBC에 직접 세금 감면 혜택을 주어 스튜디오의 위치를 결정하게 했다.

트럼프는 승인을 받기 위해 기존 계획가 얀을 해고하고 건축평론가이자 시청 공무원인 알렉산더 쿠퍼에게 재설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수정된 프로젝트 역시 스튜디오와 소매 공간, 7,600채의 주택을 포함하여 거의 같은 공간을 여전히 포함하고 있다. 72층짜리 6개의 빌딩은 45층부터 57층까지 약간 더 작은 고층빌딩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계획은 뉴욕 도시계획부서로 부터 승인받았다. 당연하게도 평론가들로 부터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1987년 NBC는 사업의 장기화를 우려해 이 곳에 들어오겠다던 계획을 취소하며 록펠러 센터에 계속 남기로 한다. 그리고 나서 이 프로젝트는 좀 더 열린 공간에 유리한 스튜디오 공간을 없애고 두 개의 작은 사무실 건물을 추가함으로써 135만 제곱미터로 약간 축소되었다. 트럼프가 '트럼프시티'로 이름을 바꾼 새 프로젝트를 위해 주택 760채를 저렴한 비용으로 지정하고 노인들을 위해 남겨둘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계획 역시 반발이 심했고 계속되는 지연사태로 재정상황도 나빠지고 있었다.

리버사이드 사우스 프로젝트[편집 | 원본 편집]

리버사이드 사우스 지도

트럼프에 계획에 반발한 지역의 7개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개발업자의 개발 프로젝트를 시청, 시민, 전문가, 개발사업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지역사회 공동 프로젝트로 바꾸어 버렸다. 이들은 공동으로 ‘리버사이드사우스 계획협회(RSPC)’라는 조직을 만들고 공공 공간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부지 내 공원의 면적이 절반이 넘는(대지 36%, 도로 12%, 공원 52%) 친환경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성사시켜 도심에 녹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트럼프 역시 이들과 손잡았으며 2005년 6월 트럼프는 북서부 강변을 따라 뻗어있는 토지 77에이커와 건물 3동을 18억달러에 매각했는데 이는 뉴욕시 역사상 가장 비싼 부동산 거래였다. 개발규모를 줄여 공원을 내준 것이다. 이걸 통해 트럼프는 나름 명성도 얻고 돈도 벌었다.[2]

내부 구조[편집 | 원본 편집]

리버사이드 사우스 내부 지도 및 내부 구조 주요 시설에 관한 설명

내부 지도[편집 | 원본 편집]

주요 시설[편집 | 원본 편집]

  • 리버사이드 파크
  • 리버사이드 사우스 센터 빌딩
  • 리틀 엔진 플레이그라운드

기타[편집 | 원본 편집]

리버사이드 사우스 프로젝트는 도시 재개발사에서 주민이 참여, 주도한다는 것에 상당한 의의를 남겼다. 이후 비슷한 사례로 뉴욕 센트럴파크의 센트럴파크관리위원회(Celntral Park Corporation), 베터리파크 시티의 배터리파크 시티개발공사(Battery Park City Authority) 등 주민이 주도하는 재개발 사업이 늘어나고 있다.

각주

  1. 원 리버사이드 사우스 지역만 유일하게 재개발중
  2. 출처
Wikipedia-ico-48px.png이 문서에는 영어판 위키백과의 Riverside South, Manhattan 문서를 번역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