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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 간의 관계== | ==귀족들 간의 관계== | ||
귀족들은 국제 분쟁으로 인해 두 개의 파로 갈렸다. 1808년 마르몽 원수가 라구사로 왔을 때에는, 소르본파와 살라망카파 두 개로 나뉘었다. 이러한 이름은 250년 전에 일어났던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와 [[프랑스]]의 프랑시스 1세 사이에 일어났던 분쟁에서 유래되었다. 1667년 대지진 당시 대다수의 귀족이 죽었고, 그 결과 일부 자유민들이 귀족 계층으로 편입되게 된다. 친 스페인파인 살라망카파는 이들을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았지만, 친 프랑스파인 소르본파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을 받아들이자는 파였다.<ref>당시 소르본파 소속 귀족들은 대지진으로 인해 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신규 귀족들을 빨리 자기 편으로 만들어 권력이나 부를 되찾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ref> | 귀족들은 국제 분쟁으로 인해 두 개의 파로 갈렸다. 1808년 마르몽 원수가 라구사로 왔을 때에는, 소르본파와 살라망카파 두 개로 나뉘었다. 이러한 이름은 250년 전에 일어났던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와 [[프랑스]]의 프랑시스 1세 사이에 일어났던 분쟁에서 유래되었다. 1667년 대지진 당시 대다수의 귀족이 죽었고, 그 결과 일부 자유민들이 귀족 계층으로 편입되게 된다. 친 스페인파인 살라망카파는 이들을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았지만, 친 프랑스파인 소르본파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을 받아들이자는 파였다.<ref>당시 소르본파 소속 귀족들은 대지진으로 인해 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신규 귀족들을 빨리 자기 편으로 만들어 권력이나 부를 되찾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ref> 어찌됬건, 이 두 파벌은 대지진 이전의 세력을 회복하였고, 의회도 서로 반반씩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간에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았다. 거리에서 만나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으며 두 파벌간의 통혼은 계급 간의 통혼과 동일시 취급하였을 정도로 이 두 파벌간의 반목은 심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귀족은 공화국에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는데, 라구사 공화국은 주변의 대제국인 헝가리, 베네치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아왔으며, 이는 소수의 귀족 집단으로 겨우 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 ||
==인구== | ==인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