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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개요== | ||
단양탄광선은 1948년에 단양군 단양읍, 가곡면 일대의 단양탄전을 개발하기 위해 [[중앙선]] [[도담역]]에서 사평간에 계획된 11.7km의 지선 철도이다. 당시 연료 수급의 긴급사정에 의해서 [[영동선|영암선]] [[태백선|영월선]]과 함께 건설에 착수하였으나, 한국전쟁 발발 등으로 인해서 완공을 보지 못한 철도이다. | 단양탄광선은 1948년에 단양군 단양읍, 가곡면 일대의 단양탄전을 개발하기 위해 [[중앙선]] [[도담역]]에서 사평간에 계획된 11.7km의 지선 철도이다. 당시 연료 수급의 긴급사정에 의해서 [[영동선|영암선]] [[태백선|영월선]]과 함께 건설에 착수하였으나, 한국전쟁 발발 등으로 인해서 완공을 보지 못한 철도이다. | ||
==역사==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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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 ==말로== | ||
그러나, 계획안을 제출하기는 하였으나 착공은 계속 지연되었는데, 보도로는 1949년 4월에 착수가 될 예정이었다.<ref>'교통부서 일부착공 팔오억원예산으로'. 경향신문, 1949년 4월 7일 보도.</ref> 그러나 공사는 전적으로 ECA(미국 경제협조처)의 물자원조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그리 빠르게 진척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계획안을 제출하기는 하였으나 착공은 계속 지연되었는데, 보도로는 1949년 4월에 착수가 될 예정이었다.<ref>'교통부서 일부착공 팔오억원예산으로'. 경향신문, 1949년 4월 7일 보도.</ref> 그러나 공사는 전적으로 ECA(미국 경제협조처)의 물자원조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그리 빠르게 진척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
이후 기록은 불명확한데, 한국전쟁에 의해서 사업이 전면 중단된 이후 딱히 재개되지 못하고 포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묻혀있다가 1960년대에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따른 장래계획선 '''사평선'''으로 이름이 다시 거론되었으나<ref>철도건설국(1969)."철도건설사". pp. 391.</ref> 건설에 이르지 못한 검토안 수준으로 종결된다. | 이후 기록은 불명확한데, 한국전쟁에 의해서 사업이 전면 중단된 이후 딱히 재개되지 못하고 포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묻혀있다가 1960년대에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따른 장래계획선 '''사평선'''으로 이름이 다시 거론되었으나<ref>철도건설국(1969)."철도건설사". pp. 391.</ref> 건설에 이르지 못한 검토안 수준으로 종결된다. | ||
{{각주}} | {{각주}} | ||
[[분류:대한민국의 철도 노선]] | [[분류:대한민국의 철도 노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