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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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곳. 차를 마시는 다구를 파는 가게는 아니다. 카페와는 약간 개념이 다른 곳이다.

상세

차 다가 들어가긴 하지만 다방의 주력 상품은 차보다 커피다. 카페와의 차이점은 카페는 원두커피를 직접 로스팅을 해서 핸드드립을 해주지만 다방은 커피믹스를 타서 준다. 카페는 손님과 점원간의 접점이 없지만 다방은 손님과 점원간의 접점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커피 이외에는 쌍화차, 율무차, 주스 정도가 있다.

커피도 커피믹스를 타주고, 차류도 티백을 우려주고, 주스도 PET에 있는 기성품을 따라주는 정도여서 최근의 젊은 사람들은 이쯤되면 저기서 뭔가 돈 주고 사마시는게 이해가 안간다.

역사

한반도 최초의 근대식 다방은 구한 말기인 1902년 정동에 있었던 손탁호텔(sontag hotel)에 부설된 곳이지만 정작 본격적인 다방 문화가 시작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당시의 경성 곳곳에 '끽다점'[1]을 차리면서 부터다. 남대문에 위치한 끽다점과 1923년 종로에 생겨났던 후타미 등이 있었다. 당시 조선인이 차린 다방도 없진 않았는데 복혜숙이란 사람이 운영했던 '비너스'와 시인 이상이 자신의 생계와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제비다방'을 차렸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는 끽다점 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였지만 해방 이후에는 사라지게 되었고 카페라는 표현은 군사정권 시기에는 외래어 사용이 금지되어서 사용할 수 없었고 90년대가 되서야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이건 지금의 커피전문점에게 뺏겼다.

지금은 '나이든 아저씨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지금의 커피전문점과 같이 젊은 층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으로 많은 젊은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곳으로 전후 당시 프랑스의 지성인들이 형성했던 카페의 문화와 견줄수 있을 정도였다.

19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의 커피전문점 문화, 패스트 푸드 체인점, 멀티 플렉스 극장 문화 등이 발달하기 이전이고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 핸드폰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할 곳이 마땅치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방이나 지역의 랜드마크에서 약속을 잡곤 했었다. 이 때문인지 '약속다방' 으로 명칭을 정하는 곳도 많았고 현재까지도 다방에 혼자 들어가면 사람을 만날 약속이 있는지 물어보는 관례가 남아있다.

당시의 매체를 보면 다방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장면, 애인과 약속을 잡았는데 혼자서 연거푸 커피만 마시고 돌아가거나 오지도 않을 사람을 혼자서 외로이 기다리는 장면, 무엇인가 어두운 거래(...)를 하거나 흉계를 모의하는 장면을 다룰 정도였다.

한국에서 다방=쌍화차 라는 이미지가 각인된건 군사정권 집권시기 커피 수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팔만한 대체품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이 당시 대체해서 홍차와 코코아도 팔았지만 그마저도 금지되서 콩을 태워서 '콩피' 라는 괴악한 물건을 만드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고 몰래 팔다가 걸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카페와 같은 대형 프렌차이즈 전문점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개성있는 카페가 등장하면서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장소가 바뀌게 되어 쇠퇴하게 된다. 지금은 도시의 변두리 지역이나 시골의 읍내 지역으로 가야 볼 수 있는 정도다. 일본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로 외곽 지역에 가야 볼 수 있다.

변종업소

오늘날 다방이라면 예전의 지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어렵고

  1. 일본어로 '다방' '카페'를 부르는 일본식 한자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