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Tohomania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5월 25일 (월) 19:06 판

신분

동아시아의 전근대 사회에 존재하였던 최하층 신분이다.


중원(中原)의 노비

노비에 대한 기록은 거슬러 올라가 《주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노비 신분은 세습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또한, 노비는 70세가 지나면 양인으로 삼았다.


만주, 한반도 유역의 노비

이른바 팔조법금이라 일컫는 고조선의 8개조 법에 노비 제도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도둑질을 한 자 중 남자는 노(奴)로 삼고 여자는 비(婢)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를 해석하여 노비의 노는 남자 종, 비는 비는 여자 종이라 표현한다는 설이 있으나 정설은 아니다(노(奴)에도 계집녀부가 붙어있지 않은가?). 또한, 고조선의 노비는 돈을 내면 신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1] 부여에서는 살인자를 사형시킴과 동시에 그 가족을 노비로 삼는다는 기록이 있었으니 이는 연좌제(緣坐制)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국 시대에는 잦은 전란으로 전쟁 포로가 많이 생겨났고 대부분을 노비로 삼았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굳이 노비가 된 전쟁 포로를 양인으로 풀어 주니 사람들이 이를 마땅히 칭찬했다는 내용이 있다. 삼국을 신라가 통일하면서 이러한 전쟁포로는 감소하였으나 빚을 갚지 못해 노비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등 노비의 수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도 노비 제도는 건재했다. 본래 노비는 양인과의 통혼을 금지하였으나, 이후에는 일천즉천(一賤則賤)이라 하여 부모 중 한 쪽이 노비이면 그 자손도 노비라는 법을 마련해 노비의 세속을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이 원칙은 이리저리 일관성이 없어 부모 한 쪽이 양인이면 그 자식도 양인으로 삼는 등의 법을 제정했다가 없애는 등 조령모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비란 대개 귀족의 권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기에, 이는 보통 호족 세력과 왕권의 대립 관계에서 나타나는 힘겨루기라고 해석된다. 가령 광종은 억울하게 노비된 자를 풀어준다는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는데 이러한 정책들은 호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는 양인들에 대한 세금이 너무나도 막중하여 스스로 노비가 되는 일도 있었다. 노비는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렇게 노비가 되는 자들은 대개 사노비가 되었으므로 국가재정 악화와 동시에 귀족세력의 강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조선의 노비는 토지를 소유할 수도 있었고 따라서 노력 여하에 따라 양반보다도 부유해질 수도 있어, 경제력을 통하여 신분상승을 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는 국가재정을 벌어들이려는 정부의 의해와 일치하여 가령 납속책을 발행하는 등 면천의 기회가 생기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갑오개혁 이후 공식적으로 폐지된다.


조선은 고대 노예제 사회?

일부 서양의 사학자들이나 일본의 학자들은 조선을 고대 노예제 사회로 간주하고는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소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노비(奴婢)와 노예(Slave)는 절대로 일대응대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의 수드라(Sudra)를 노예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되겠다. 일반적인 자유민이 없이 대부분의 인구가 농노(Serf)였던 서양의 중세 사회를 생각해 보면, 서양사학자들이 외려 조선을 노예사회 취급하는 건 실로 헛웃음이 나오는 일이라 하겠다.


노비는 땅을 소유할 수도 있었고 일부 공노비는 문무잡직, 유외잡직이라 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이들은 일반 관리와는 철저하게 구분되었지만 품계를 하사받고 녹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농노는 관직에 나아가긴 커녕 토지를 소유할 수도 없었고 토지를 거래할 때 감자튀김에 딸려나오는 케첩마냥 토지의 부산물로서 거래되었다. 노비는 다양한 신분상승책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농노는 도시민, 부르주아 개념이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없었다. 과연 노비(奴婢)와 농노(Serf)중 어떤 쪽이 노예(Slave)에 가까울까? 생각해보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미국의 경우 19세기에나 간신히 연방법에서 노예제가 사라졌고 2013년까지 미시시피 주에는 법적으로 노예제가 남아있었는데 대체 누가 누구를 노예제 사회라고 비난해야 할지...본래 서양사학자들이 유럽사를 제외한 다른 문화권의 역사를 제멋대로의 잣대로 이상하게 왜곡, 비난하는 것은 유명한 일이다. 현대에 들어와서야 문화의 상대성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부분이 완화되고 있긴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을 고대 노예제 사회로 분류한다면 법적으로 노예제가 남아있는 개척시대의 미국도 노예제 사회라고 분류가 가능하다.


게다가 애초에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서양의 노예들[2]과는 달리 동아시아의 노비는 일단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 고려 시대 공양왕 3년의 상소에는 「말이나 소가 노비보다 비싸다. 사람 가격이 마소보다 못하다니 이게 뭐하자는 거냐?」며 한탄하는 내용이 있다. 사람을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막장인 것 같은데?


  1. 중국의 기록인 《한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2. 이들은 생물학적으로 인간 취급을 받지 않았다. 인간처럼 생기긴 했는데 좀 다른 것, 말할 수 있는 물건 정도로 취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노예제 사회로 유명한 이집트나 로마의 노예는 이류시민이긴 했어도 일단 노예를 인간 취급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