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4번째 줄: | 4번째 줄: | ||
|배경색 = | |배경색 = | ||
|글자색 = | |글자색 = | ||
|그림 = [[파일: | |그림 = [[파일:Roh_Moo-hyun presidential portrait.jpg|150px]] | ||
|그림설명 = 공식 초상화 | |그림설명 = 공식 초상화 | ||
|본명 = | |본명 = | ||
44번째 줄: | 44번째 줄: | ||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 출신이다.{{ㅈ|그래서 그런지 이 이후 김해는 영남권에서 민주당계 정당 지지율이 높은 편}} 노무현 정권의 별칭으로는 [[참여 정부]]이다. |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 출신이다.{{ㅈ|그래서 그런지 이 이후 김해는 영남권에서 민주당계 정당 지지율이 높은 편}} 노무현 정권의 별칭으로는 [[참여 정부]]이다. | ||
2002년 기적같은 노풍의 힘에 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권이후 부침에 시달리며 다사다난한 재임 기간을 보냈다. 이때 있었던 굵직한 사건만 하더라도 헌정 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 소추, 국군 [[이라크]] 파병, 미군기지 이전 사업 추진, | 2002년 기적같은 노풍의 힘에 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권이후 부침에 시달리며 다사다난한 재임 기간을 보냈다. 이때 있었던 굵직한 사건만 하더라도 헌정 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 소추, 국군 [[이라크]] 파병, 미군기지 이전 사업 추진, 한미 FTA 체결, 대북 송금 [[특별검사|특검]] 실시, 행정수도 이전 계획 추진, 남북 [[정상 회담]], 탈권위주의 시도 등이 있다. | ||
== 당선과정 == | ==당선과정== | ||
{{유튜브|mcdOlDgMNx4}} | |||
2002년 초 도입된 국민 경선 제도에 노무현은 최대 수혜자였지만 사실 그는 반대자였다. 참모들이 국민 경선제도를 긍정적으로 타진하자 노무현은 "등산화와 돈을 이길 수 있겠느냐? 정치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 말하면서 반대하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의견을 바꾸었다. | 2002년 초 도입된 국민 경선 제도에 노무현은 최대 수혜자였지만 사실 그는 반대자였다. 참모들이 국민 경선제도를 긍정적으로 타진하자 노무현은 "등산화와 돈을 이길 수 있겠느냐? 정치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 말하면서 반대하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의견을 바꾸었다. | ||
이후 새천년민주당 국민 경선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등 메이저 신문들의 1면은 노무현 아니면 [[민주당]] 경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노무현과 [[조중동]]간의 신경전은 첨예했다. | 이후 새천년민주당 국민 경선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등 메이저 신문들의 1면은 노무현 아니면 [[민주당]] 경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노무현과 [[조중동]]간의 신경전은 첨예했다. | ||
특히 4월 4일 터진 과거 노무현의 언론 국유화 발언은 그야말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조중동은 이 사건을 중점적으로 보도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0&aid=0000122388 동아 일보 관련 보도][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0&aid=0000123017 동아 일보 시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47&aid=0000001714 오마이 뉴스] 그러나 노무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보다는 긍정적인 여론이 우세했다. 특히 4월 10일 한국 경영자 총협회 조남홍 부회장이 노무현 후보를 매력적인 정치인이라 칭했을 정도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1&oid=001&aid=0000151901] 당연히 조중동은 경악했고 | 특히 4월 4일 터진 과거 노무현의 언론 국유화 발언은 그야말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조중동은 이 사건을 중점적으로 보도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0&aid=0000122388 동아 일보 관련 보도][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0&aid=0000123017 동아 일보 시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47&aid=0000001714 오마이 뉴스] 그러나 노무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보다는 긍정적인 여론이 우세했다. 특히 4월 10일 한국 경영자 총협회 조남홍 부회장이 노무현 후보를 매력적인 정치인이라 칭했을 정도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1&oid=001&aid=0000151901] 당연히 조중동은 경악했고 한겨례, 경향은 기뻐했다. | ||
결국 4월 27일 노무현은 1만 7568표로 72.2%의 지지를 받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15&aid=0000501685] | 결국 4월 27일 노무현은 1만 7568표로 72.2%의 지지를 받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15&aid=0000501685] | ||
이후 월드컵 시즌이였기에 정치적인 이슈는 묻혔다.<ref>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 발생한 효순이, 미순이 사건도 월드컵의 열풍 속에 조용히 사라졌고,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도 묻혔다. 당연히 대선관련 뉴스도 묻혔다. 슬픈 것은 연평해전 소식이 6월 30일자 신문 1면에 보도되었지만[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0&aid=0000138199][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5&aid=0000109064] 사람들의 시선은 월드컵에 있었고 결국 아무도 보지 않았다. 물론 효순이 미순이 사건도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0187106]</ref> | 이후 월드컵 시즌이였기에 정치적인 이슈는 묻혔다.<ref>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 발생한 효순이, 미순이 사건도 월드컵의 열풍 속에 조용히 사라졌고,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도 묻혔다. 당연히 대선관련 뉴스도 묻혔다. 슬픈 것은 연평해전 소식이 6월 30일자 신문 1면에 보도되었지만[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0&aid=0000138199][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5&aid=0000109064] 사람들의 시선은 월드컵에 있었고 결국 아무도 보지 않았다. 물론 효순이 미순이 사건도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0187106]</ref> | ||
98번째 줄: | 96번째 줄: | ||
=== 진상규명 작업 === | === 진상규명 작업 === | ||
또한 군사독재 시절에 벌어진 탄압과 사법살인 조작간첩 사건, 친일파 청산 등을 최초로 시도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 진상규명위원회 작업으로 명예를 회복한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 또한 군사독재 시절에 벌어진 탄압과 사법살인 조작간첩 사건, 친일파 청산 등을 최초로 시도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 진상규명위원회 작업으로 명예를 회복한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 ||
== 퇴임 이후 == | == 퇴임 이후 == | ||
107번째 줄: | 103번째 줄: | ||
==== [[5월 23일]] ==== | ==== [[5월 23일]] ==== | ||
* | * 결국 봉하마을 뒷편 봉화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뤄졌고 [[검찰]]수사는 '''뇌물 혐의가 인정되지만'''[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20&newsid=20090612150112913&p=yonhap #], 수사대상자가 사망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 ||
==선거이력== | ==선거이력== | ||
155번째 줄: | 151번째 줄: | ||
{{주석}} | {{주석}} | ||
[[분류:노무현| ]] | [[분류:노무현| ]] | ||
{{대한민국의 대통령 목록}} | {{대한민국의 대통령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