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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月煥. 호는 송죽(松竹).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羅月煥. 호는 송죽(松竹).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
== 생애 == | == 생애 == | ||
1912년 10월 14일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에서 나종성(羅種成)의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농이 아니었지만 20~30마지기를 경작하고 집 뒤에 죽전 12마지기를 소유해 그런대로 먹고 살만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말주변이 뛰어나 동네 애들과 소꿉장난을 | 1912년 10월 14일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에서 나종성(羅種成)의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농이 아니었지만 20~30마지기를 경작하고 집 뒤에 죽전 12마지기를 소유해 그런대로 먹고 살만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말주변이 뛰어나 동네 애들과 소꿉장난을 할 때마다 항상 앞에 나와서 일장 연설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일제에게 반감을 품고 강직한 성격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어릴 때부터 배일의식을 가슴에 품었다고 한다. | ||
훗날 나월환이 자신의 절친한 동지였던 [[박기성]](朴基成)에게 들려준 일화에 의하면, 한 번은 나월환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몰래 동네 창고에서 멍석을 가져와서 아이들을 멍석에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한 뒤 멍석을 그대로 두고 친구들과 함께 다른 놀이를 하러 갔다고 한다. 이에 멍석 주인이 나종성에게 하소연하자, 나종성은 아들을 찾았다.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들은 나월환은 아버지에게 얻어맞을 것을 두려워하다가 동네 길 모퉁이에서 아버지와 마주치자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나월환은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고 아버지가 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이때 나월환은 문득 길에 널브러진 가느다란 나무막대를 집어들고는 길 앞에 줄을 그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 훗날 나월환이 자신의 절친한 동지였던 [[박기성]](朴基成)에게 들려준 일화에 의하면, 한 번은 나월환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몰래 동네 창고에서 멍석을 가져와서 아이들을 멍석에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한 뒤 멍석을 그대로 두고 친구들과 함께 다른 놀이를 하러 갔다고 한다. 이에 멍석 주인이 나종성에게 하소연하자, 나종성은 아들을 찾았다.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들은 나월환은 아버지에게 얻어맞을 것을 두려워하다가 동네 길 모퉁이에서 아버지와 마주치자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나월환은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고 아버지가 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이때 나월환은 문득 길에 널브러진 가느다란 나무막대를 집어들고는 길 앞에 줄을 그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