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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민족대회는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김규식 등은 곧장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한국 참가자 대표 자격으로 행한 개회 연설에서 사회주의에 상당히 경도된 모습을 보였다. | 극동민족대회는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김규식 등은 곧장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한국 참가자 대표 자격으로 행한 개회 연설에서 사회주의에 상당히 경도된 모습을 보였다. | ||
{ | {[인용문|모스코바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의 중심지로서 극동 피압박민족의 대표자들을 환영하고 있는데. 워싱턴은 세계의 자본주의적 착취와 제국주의적 팽창의 중심으로 존재하고 있다. (중략) 우리 조선대표들은 하나의 불씨, 세계제국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재로 만들어 버릴 불 | ||
씨를 얻기 위해 모스코바에 왔다.}} | |||
또한 이즈음에 발표한 "아시아 혁명운동과 제국주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또한 이즈음에 발표한 "아시아 혁명운동과 제국주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