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모스크 점거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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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이만은 약 500명의 무장 그룹과 함께 그랜드모스크의 점거하면서 “사우디 문화를 서구 문화로 대체하려는 사우디 왕가의 퇴진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야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게다가 이들은 서구세계와의 단절, 여성들에 대한 교육 철폐, TV의 폐지, 비무슬림들의 추방 등도 요구했다.
주하이만은 약 500명의 무장 그룹과 함께 그랜드모스크의 점거하면서 “사우디 문화를 서구 문화로 대체하려는 사우디 왕가의 퇴진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야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게다가 이들은 서구세계와의 단절, 여성들에 대한 교육 철폐, TV의 폐지, 비무슬림들의 추방 등도 요구했다.


무장 점거는 2주동안 지속됐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프랑스 정보부의 도움을 받은 사우디군이 공격하면서 끝을 맺고 주하이만을 포함한 체포된 67명 중 63명에게 참수형이 선고됐다.<ref>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512071801231&code=117 </ref>
무장 점거는 2주동안 지속됐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프랑스 정보부의 도움을 받은 사우디군이 공격하면서 끝을 맺고 주하이만을 포함한 체포된 67명 중 63명에게 참수형이 선고됐다.<ref>[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512071801231&code=117 IS를 말하다(3) 지하드 통해 서구와 단절 노린다], 주간경향, 2015. 12. 07.</ref>


==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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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운전 금지도 이 사건 이후로 생긴 결과이다.
여성의 운전 금지도 이 사건 이후로 생긴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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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4일 (토) 22:26 판

Grand Mosque seizure

1979년 11월 20일에 ‘주하이만 알오타비’의 주도로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를 점거한 사건이다.

개요

주하이만은 약 500명의 무장 그룹과 함께 그랜드모스크의 점거하면서 “사우디 문화를 서구 문화로 대체하려는 사우디 왕가의 퇴진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야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게다가 이들은 서구세계와의 단절, 여성들에 대한 교육 철폐, TV의 폐지, 비무슬림들의 추방 등도 요구했다.

무장 점거는 2주동안 지속됐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프랑스 정보부의 도움을 받은 사우디군이 공격하면서 끝을 맺고 주하이만을 포함한 체포된 67명 중 63명에게 참수형이 선고됐다.[1]

영향

당시 점거에 참가했다가 탈출한 지하드 분자들은 훗날 아프간전에도 참전하면서 지하드운동의 지도자들로 성장했다. 사우디 왕조는 이 사건 이후 권위가 땅에 떨어졌음을 깨닫고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서방세계에 더욱 밀착하고, 더욱 우경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영화관과 공연장을 없애고, 공공장소에서의 영화 관람 마저 아예 불법으로 만들어버렸다.  여성의 운전 금지도 이 사건 이후로 생긴 결과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