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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ndesarchiv RM 25 Bild-02, Flugzeugträger "Graf Zeppelin", Bau.jpg|180픽셀|섬네일|그라프 체펠린의 용골]] | [[파일:Bundesarchiv RM 25 Bild-02, Flugzeugträger "Graf Zeppelin", Bau.jpg|180픽셀|섬네일|그라프 체펠린의 용골]] | ||
1939년, 나치 집권하 독일국은 베르사유 조약이 채워놓았던 군비 제한을 끊어 내며 국방군의 | 1939년, 나치 집권하 독일국은 베르사유 조약이 채워놓았던 군비 제한을 끊어 내며 국방군의 본격적인 재무장을 시작하였다. | ||
이에 해군 [[크릭스마리네]] | 이에 해군 [[크릭스마리네]]는 기조에 맞춰 독일의 해양력 확장을 위한 해군 함대 전력의 재건에 들어가며 전함을 비롯, 대형함들의 건조에 들어가게 되는데, 당시 해전은 거함거포주의에 입각한 포격전 양상이었고 전함의 제해권 장악은 당시 해양력과 해상 전력의 기본 내용이었다. | ||
당시 해전은 거함거포주의에 입각한 포격전 양상이었고 전함의 제해권 장악은 당시 해양력과 해상 전력의 기본 내용이었다. | |||
그러나 1차대전 이후 새롭게 대두된 항공기의 존재로 해상에서 비행기를 이용한 작전과 항공모함은 주류 열강 해군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런 시류에 맞춰 크릭스마리네 역시 항모 부대를 편성하고자 하는 Z계획을 입안한다. | 그러나 1차대전 이후 새롭게 대두된 항공기의 존재로 해상에서 비행기를 이용한 작전과 항공모함은 주류 열강 해군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런 시류에 맞춰 크릭스마리네 역시 항모 부대를 편성하고자 하는 Z계획을 입안한다. | ||
그러나 1차대전의 패전으로 대형 함정들의 건조, 운용 능력을 상실당했던 독일국은 항공모함이란 신예 함종을 시행 착오를 거치며 건조해 본 경험이 없기에 후발 주자로써 외국 항공모함과 기술을 참고 도입하는 방향으로 항공모함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고 세계 최초의 항모였던 영국 해군의 커레이저스를 참고하여 개발에 들어간다. | 그러나 1차대전의 패전으로 대형 함정들의 건조, 운용 능력을 상실당했던 독일국은, 항공모함이란 신예 함종을 시행 착오를 거치며 건조해 본 경험이 없기에 후발 주자로써 외국 항공모함과 기술을 참고 도입하는 방향으로 항공모함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고 세계 최초의 항모였던 영국 해군의 커레이저스를 참고하여 개발에 들어간다. | ||
거기에 마침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이 | 거기에 마침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이 항모의 원조 국가였던 영국만큼 항모 건조와 운용에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기에 독일은 제트 엔진 기술을 비롯한 자국의 우월한 항공 기술과 기갑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항모 관련 기술 중 부족한 부분을 도입하기로 한다. | ||
크릭스마리네의 Z계획은 가칭 항모 'A'부터 시작해 항모 B와 C,D (Flugzeugträger A,B,C,D)까지 4척을 건조하여 북해에서 영국 해군을 견제할 목적으로 개발은 진행되었다. | 크릭스마리네의 Z계획은 가칭 항모 'A'부터 시작해 항모 B와 C,D (Flugzeugträger A,B,C,D)까지 4척을 건조하여 북해에서 영국 해군을 견제할 목적으로 개발은 진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