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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대가 발전하여 귀족 세력이 민중 세력을 제압하지 못하게 되면서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 귀족들의 수장인 왕들 역시 시대의 변화로 귀족들에게 준 각종 이권을 회수하려 들었고 귀족들은 이를 견제하며 버텼다. 그래도 그들은 몰락하기 전까지 상당히 군사적이라 평민들보다 전쟁에서 유리<ref>양반처럼 상무적인 귀족이 아닌 자들조차 전투는 몰라도 전술, 전략, 보급 같은 전쟁의 지적인 부분에 능하여 일반적으로 평민들을 압도했다.</ref>했다. 통념과 달리 귀족들이 조직한 군대<ref>The decline and fall of the British aristocracy에 의하면 1차 세계대전에서 귀족들이 일반인들보다 전공이 우월함은 물론 다른 사회계층에 비해 전사비조차 2배에 가까웠다. 가치관도 평민들이 보면 전쟁광처럼 보일 정도였다.</ref>는 평민들이 조직한 군대를 능가했다. 평민들이 양적으로 우세하여 평민을 지지하는 주장이 널리 퍼졌으나 문제는 귀족들<ref>실제로 영국은 귀족 출신이 아니면 넬슨처럼 능력이 좋아도 전공과 인기에 의한 압력에 의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할 때까지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으며 웰링턴은 내심 평민들을 쓰레기로 생각했다. 흥미롭게도 세계대전으로 귀족들이 몰락한 후에 서구권에서 대표적으로 평민들을 지지하며 소련군보다도 막강했던 프랑스군을 독일 귀족 출신 장군인 만슈타인이 완전히 박살을 내고 갔다.</ref>은 당연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여 귀족 세력이 민중 세력을 제압하지 못하게 되면서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 귀족들의 수장인 왕들 역시 시대의 변화로 귀족들에게 준 각종 이권을 회수하려 들었고 귀족들은 이를 견제하며 버텼다. 그래도 그들은 몰락하기 전까지 상당히 군사적이라 평민들보다 전쟁에서 유리<ref>양반처럼 상무적인 귀족이 아닌 자들조차 전투는 몰라도 전술, 전략, 보급 같은 전쟁의 지적인 부분에 능하여 일반적으로 평민들을 압도했다.</ref>했다. 통념과 달리 귀족들이 조직한 군대<ref>The decline and fall of the British aristocracy에 의하면 1차 세계대전에서 귀족들이 일반인들보다 전공이 우월함은 물론 다른 사회계층에 비해 전사비조차 2배에 가까웠다. 가치관도 평민들이 보면 전쟁광처럼 보일 정도였다.</ref>는 평민들이 조직한 군대를 능가했다. 평민들이 양적으로 우세하여 평민을 지지하는 주장이 널리 퍼졌으나 문제는 귀족들<ref>실제로 영국은 귀족 출신이 아니면 넬슨처럼 능력이 좋아도 전공과 인기에 의한 압력에 의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할 때까지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으며 웰링턴은 내심 평민들을 쓰레기로 생각했다. 흥미롭게도 세계대전으로 귀족들이 몰락한 후에 서구권에서 대표적으로 평민들을 지지하며 소련군보다도 막강했던 프랑스군을 독일 귀족 출신 장군인 만슈타인이 완전히 박살을 내고 갔다.</ref>은 당연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자신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획득할 최고의 기회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참전한 귀족<ref>사실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던 귀족들도 있었으나 국가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그들 세력이 차지하고 있어 타국 귀족들이 진지하게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전력으로 싸워야 했다.</ref>들은 그 전쟁의 피해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커져서 세력에 회복하기 힘든 손상을 입었고 자본가와 민중들과의 경쟁에서 탈락함에 따라 현재는 과거에 비해 약간의 권리와 유산만을 가진 채 살고 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자신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획득할 최고의 기회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참전한 귀족<ref>사실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던 귀족들도 있었으나 국가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그들 세력이 차지하고 있어 타국 귀족들이 진지하게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전력으로 싸워야 했다.</ref>들은 그 전쟁의 피해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커져서 세력에 회복하기 힘든 손상을 입었고 자본가와 민중들과의 경쟁에서 탈락함에 따라 현재는 과거에 비해 약간의 권리와 유산만을 가진 채 살고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자본가 계층이 등장하지 않은 나라들<ref>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바니야라는 자본가 계층이 귀족들 대신 부를 차지하였으나 자본가 계층이 없던 우리나라에서는 양반 출신들이 대신 자본가 역할을 하여 부를 차지하였다. 공산권은 귀족이든 자본가든 정체성이나 문화 등이 사라지고 진짜 망한 경우가 많다. 가끔 백두혈통 등을 오인하기도 하나 북한의 백두혈통은 근본적인 출신을 따지면 민중 출신이다.</ref>에서는 귀족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더 자본가가 되어 세력<ref>귀족 출신 자본가들은 순수 자본가 출신들과는 사상이나 문화가 다르다. 귀족적 유산이 남아있다고 보면 된다. https://news.nate.com/view/20160713n02728 이것은 이회창 같은 양반 출신 자본가들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을 보면 알 수 있다.</ref>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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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일 (화) 22:40 판

귀족(貴族)은 정치·사회적 특권을 지니는 신분이다. 일반적으로 혈통으로 구분된다.[1]

역사

귀족의 탄생

인류 역사의 초창기에서는 우두머리는 존재해도 귀족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귀족은 고대에서도 존재하였으나 중국 대륙[2] 같은 특이한 지역을 제외하면 유럽에서는 중세[3]에 도달해서야 간신히 완전한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사람들의 인심을 모은 사람들이 귀족[4]이 되었기에 스스로 탄생한 여성 귀족[5]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여러 원인으로 군사귀족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귀족 가문이 남성 귀족들 위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로마 역시 시간이 지나며 평민들이 점점 귀족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결국에는 로마식 귀족제[6]가 되었다. 예를 들자면, 한니발과의 전투에서 로마의 평민들과 그들을 지지했던 귀족들은 비참하게 패배하여 세력을 엄청나게 잃었고 파비우스, 마르켈루스, 스키피오와 같은 로마의 귀족들은 방법을 찾을 때까지 느긋하게 한니발을 연구하여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로마의 평민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했던 정치, 경제, 군사적 시도와 도전은 물거품이 되었다.

귀족들이 평민들을 압도하는데 실패한 중화권[7]에서도 귀족적인 문화가 잔존했을 때는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사무라이라는 군사적 귀족이 탄생하였으나 그 역할을 하던 귀족이 따로 있었고 사무라이는 본래부터 귀족 출신이 아닌 탓인지 다른 귀족들과 달리 위세[8]가 그리 강하지 못하였다. 에도 막부까지 사무라이가 귀족 태생들 앞에서 무례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다이묘[9]조차 할복해야 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귀족들의 힘과 권위가 약해지면 사무라이가 귀족을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귀족 태생인 사무라이들도 있었기에 그들의 세력이 강해지면 그냥 사무라이 태생인 사무라이들은 덴노와 구게(공가)가 권력이 없어도 굴복해야 했다. 신라는 골품제에 의거해 귀족층을 규정했으며 고구려, 백제 역시 고추가, 막리지, 좌평 등에서 귀족 의식이 나타났다. 고려와 발해는 과거 중국식 작위를 도입하여 독자적으로 개조한 후 왕작, 오등작, 군호 등을 사용하였다. 조선은 명나라의 압력과 본격적인 한족식 중화 문물 수용으로 인하여 귀족 문화가 양반 문화로 대체되었다.

몰락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여 귀족 세력이 민중 세력을 제압하지 못하게 되면서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 귀족들의 수장인 왕들 역시 시대의 변화로 귀족들에게 준 각종 이권을 회수하려 들었고 귀족들은 이를 견제하며 버텼다. 그래도 그들은 몰락하기 전까지 상당히 군사적이라 평민들보다 전쟁에서 유리[10]했다. 통념과 달리 귀족들이 조직한 군대[11]는 평민들이 조직한 군대를 능가했다. 평민들이 양적으로 우세하여 평민을 지지하는 주장이 널리 퍼졌으나 문제는 귀족들[12]은 당연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자신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획득할 최고의 기회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참전한 귀족[13]들은 그 전쟁의 피해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커져서 세력에 회복하기 힘든 손상을 입었고 자본가와 민중들과의 경쟁에서 탈락함에 따라 현재는 과거에 비해 약간의 권리와 유산만을 가진 채 살고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자본가 계층이 등장하지 않은 나라들[14]에서는 귀족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더 자본가가 되어 세력[15]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각주

  1. 혈통이 좋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태생적인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않아서 귀족 같은 지위를 누려도 한계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1599년 5월 2일 기사에서 근본이 천하다고 멸시를 당한 한명련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유목민들조차 혈통을 따져서 한족화를 수용한 수당 귀족들까지 한고조의 혈통을 근거로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평하기도 했으며 금나라 귀족들은 정강의 변 당시 송의 황족이 아닌 자는 높은 지위에 있어도 생활 보장이나 처첩 등은커녕 아예 죽게 내버려 두었다. 몽골 제국 역시 자신들과 다른 사회에 회의를 열고 고민을 해서 남송 공제 같은 황족은 귀족 대접을 하기로 결정하였으나 태생적 귀족이 아닌 금이나 송의 관료들은 별로 좋은 대우를 못받았다.
  2. 한족의 경우 유교의 영향으로 고대 이후 혈통에 의해 그 지위를 그냥 보장받는 귀족 계층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서민들도 시험이나 추천 등을 통해 관료가 되면 귀족과 비슷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지역적으로 보면 중국 대륙 역시도 유목민 귀족에 의하여 귀족 세력이 지배했던 기간이 짧지 않다.
  3. 고대에는 귀족들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했던 그리스 도시들이나 귀족 계층과 평민 계층이 대등한 수준으로 대립했던 로마가 있다.
  4. 상무적 귀족들로 유명한 게르만족도 게르마니아를 보면 제사장 등이 귀족 취급이었다.
  5. 고대 일본의 여왕 등
  6. 로마의 귀족들은 시간이 지나며 상당히 유동적이 된다. 본래 로마 귀족들 역시 태생적인 의식이 있었으나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기에 이를 막지 못했다. 사실 동로마와 같은 로마의 후예들을 과거 서유럽에서 별로 인정을 안 했던 이유인데 원래 로마인들과 언어까지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혈통적으로는 로마인들의 후계자인 이탈리아인들조차 언어가 본래 로마어와는 차이가 있다.
  7. 진서를 보면 한나라 때까지는 천자부터가 검을 착용하였으며 관료들까지 심지어 궁중에서도 검을 착용하지 않은 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나라가 망하고 진나라 시대가 되자 진검 대신 목검을 착용했고 사회에 무예에 대한 경시가 퍼졌다고 한다. 한반도 역시 고려까지만 해도 귀족이 대놓고 무력으로 타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모습이 나온다.
  8. 사무라이도 원래부터 귀족 태생인 경우는 위세가 강했다.
  9. 아사노 나가노리
  10. 양반처럼 상무적인 귀족이 아닌 자들조차 전투는 몰라도 전술, 전략, 보급 같은 전쟁의 지적인 부분에 능하여 일반적으로 평민들을 압도했다.
  11. The decline and fall of the British aristocracy에 의하면 1차 세계대전에서 귀족들이 일반인들보다 전공이 우월함은 물론 다른 사회계층에 비해 전사비조차 2배에 가까웠다. 가치관도 평민들이 보면 전쟁광처럼 보일 정도였다.
  12. 실제로 영국은 귀족 출신이 아니면 넬슨처럼 능력이 좋아도 전공과 인기에 의한 압력에 의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할 때까지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으며 웰링턴은 내심 평민들을 쓰레기로 생각했다. 흥미롭게도 세계대전으로 귀족들이 몰락한 후에 서구권에서 대표적으로 평민들을 지지하며 소련군보다도 막강했던 프랑스군을 독일 귀족 출신 장군인 만슈타인이 완전히 박살을 내고 갔다.
  13. 사실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던 귀족들도 있었으나 국가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그들 세력이 차지하고 있어 타국 귀족들이 진지하게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전력으로 싸워야 했다.
  14.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바니야라는 자본가 계층이 귀족들 대신 부를 차지하였으나 자본가 계층이 없던 우리나라에서는 양반 출신들이 대신 자본가 역할을 하여 부를 차지하였다. 공산권은 귀족이든 자본가든 정체성이나 문화 등이 사라지고 진짜 망한 경우가 많다. 가끔 백두혈통 등을 오인하기도 하나 북한의 백두혈통은 근본적인 출신을 따지면 민중 출신이다.
  15. 귀족 출신 자본가들은 순수 자본가 출신들과는 사상이나 문화가 다르다. 귀족적 유산이 남아있다고 보면 된다. https://news.nate.com/view/20160713n02728 이것은 이회창 같은 양반 출신 자본가들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을 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