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 803호 살인사건

개요[편집 | 원본 편집]

2016년 6월 19일(현지 시각) 인도양에서 조업 중이던 참치잡이 어선 광현803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안전 및 인건비 문제 등으로 한국인들이 원양어선 등에 탑승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해지자 각 선사는 외국인 선원들을 많이 고용하게 되었다. 외국인 선원들은 열악한 대우를 받는 한편, 범죄 역시 많이 저지르고 있는데 지난 3년 6개월간 외국인 선원에 의해 발생한 선상 범죄는 67건에 달했다.[1] 앞으로도 개선될 가능성이 요원한만큼, 유사사건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기사가 있다.

경과[편집 | 원본 편집]

사건 발생 전[편집 | 원본 편집]

2015년 2월 선장 양모씨(43)와 기관장 강모씨(42), 항해사 이모씨(50) 등 한국인 3명과 베트남 선원 7명, 인도네시아 선원 8명 등 모두 18명은 광현 803호(이하 '광현호')승선하여 부산 감천항을 출항하였다.

피의자들은 동갑내기 친척 사이이고 평소 작업이 서툴러 선장 등으로부터 욕설과 구박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의자들은 해경 수사에서 선장 및 기관장의 학대 등에 앙심을 갖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하였다. 임금 또한 광동해운 소속 선원들은 기본급 180만~230만 원가량을 받고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추가로 받는 것으로 알려진 것에 비교되는, 선내 최저 수준인 월 60만원 선이었다.[2]

사건 당일[편집 | 원본 편집]

사건을 요약하면 선상 회식 도중 베트남 선원의 건배사를 오해한 선장이 해당 선원과 다툼을 벌였고, 평소 선장에게 무시당했던 베트남 선원 두명은 이에 앙심을 품고 선장 및 기관장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3]

6월 19일 오후 5시 경, 인도양에서 어장이동 중이던 광현호에서 선상 회식이 열렸다.

선장 양모씨(이하 '선장')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양주 몇 병을 꺼냈고,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회식 도중 베트남 선원 A(32)씨(이하 'A')가 선장에게 삿대질을 하며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요요요∼, 선장 넘버원"이라고 반복했다.

선장은 베트남어로 건배를 뜻하는 '요'를 욕설로 오해하여 A에게 화를 냈다. 이에 둘은 한 차례 몸싸움을 벌였다.

둘은 잠시 진정하였으나 A가 다시 선장에게 '요요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선장이 격분하면서 폭발하였다.

선장과 A는 다시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을 벌였고 이를 말리던 다른 선원을 A가 걷어차면서 회식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화가 난 선장은 조타실로 올라가 선내 방송으로 A 등 베트남 선원 7명 전원을 집합시켰다.

조타실로 가기 전 A는 B씨(이하 'B')와 함께 동료 베트남 선원 5명에게 선장을 죽이자고 공모했다.[4] 식당에서 흉기 2개를 들고 온 A는 그중 하나를 동료 선원에게 주며 조타실에서 선장을 찌르라고 했다.

A는 다른 선원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며 선장을 죽이는데 동참하라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선장을 죽이지 못하면 강제로 하선(下船) 조치를 당할 수 있는데, 항해 도중 강제로 배에서 내리면 3백만 원의 담보금을 못 받게 된다고 한다.[5]

하지만 흉기를 건네받은 선원은 겁이 나서 갑판으로 던졌고 결국 A만 흉기를 들고 나머지 6명의 베트남 선원과 조타실로 올라갔다.

조타실에서 선장과 말다툼을 시작한 A는 선장이 "유 하우스 고(You house go)"라는 말을 하자 본격적으로 몸싸움을 시작하였다. 선장이 몸싸움 끝에 A를 바닥에 눕히고 위에 올라탔으나 그때 B가 선장의 뒷머리와 상체를 흉기로 내려쳤다. 이 과정에서 A는 오른손을 다쳤고 흉기를 피하려는 선장이 도망가지 못하게 끌어안았다.

한편, 조타실에 있던 A, B씨를 제외한 나머지 베트남 선원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나 창고 속에 숨어 문을 잠갔다. 일부 선원은 당직 근무 후 쉬던 항해사 이씨(이하 '항해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항해사는 서둘러 조타실로 이동하였으나 이미 선장은 응급조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상태였다. 끝내 선장은 과다출혈로 사망하였다.

항해사가 선장을 살피는 사이 선실에서 잠을 자던 기관사 강씨(이하 '기관장')마저 살해한 A와 B는 항해사를 발견하자 항해사마저 죽이려 했다. 항해사가 선장을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항해사는 태권도 4단, 합기도 2단 등 상당한 무도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A와 B를 제압하는데 성공하였다.자세한 제압 과정은 참조[6]

항해사는 이때부터 세이셸로 귀환할 때까지 살인 피의자들을 비롯한 선원들을 무리없이 통솔하여 추가 피해없이 귀환하였다. 기사에 따르면 항해사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선사 및 해경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항해사는 선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하여 1) 칼을 감추고, 2) 술을 모두 버리는 한편, 3) A와 B도 구속하지 않고 대신 선원들에게 감시를 맡겼다. 4) 한편 범행 도중 손을 다친 B의 손을 '사용을 불편하게 할 겸' 붕대로 꽁꽁 감아두기도 했다.

한편 해경은 이씨로부터 사건 발생 소식을 전해듣고 수사팀을 급파하여 배가 빅토리아 항에 도착하기 직전에 배를 장악하고 피의자들의 신원을 구속하였다.

원인[편집 | 원본 편집]

국내에서의 수사 및 재판과정[편집 | 원본 편집]

수사 과정[편집 | 원본 편집]

  • 피의자들은 친척지간으로 해경에게 체포되기 전에 A씨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B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였으나, 이후 B의 손에서 상처가 발견되자 결국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였다. [7]
  • 7월 4일, 해경은 세이셸에 가서 광현호에서 직접 현장검증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하여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들과 참고인 대질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광현호와 비슷한 구조의 어선을 빌려 7월 6일 부산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범인들 간의 공모 여부와 관련, 해경은 1시간 여 만에 공모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일단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9]
  • 해경은 피의자들에 대한 현장검증 등을 끝으로 수사를 마무리 지은 다음, 이번 주말 즈음 이들의 신병을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다.[10]
  • 해경은 7월 5일 피의자들과 베트남 선원 1명, 이씨를 데리고 현장검증을 벌였다.
  • 해경은 7월 8일, 피의자 A씨와 B씨를 특수폭행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였다.[1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