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이

姜福伊.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9년 12월 28일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강덕이(姜德伊)'이다. 그는 1919년 4월 6일 박재필, 박영화 등이 주도한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주민 3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했다. 마을을 일주한 시위대는 우곡면사무소 앞으로 몰려가 독립의 의지를 전달하였다. 밤 12시를 넘겨 시위가 계속되자 면장이 나와 이들의 해산을 간청하였고 시위대는 해산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1] 이후 고령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3년 2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강복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2008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2]

각주

  1.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2. 이때 이명인 '강덕이'의 이름으로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