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Terrazergtoss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5월 19일 (화) 12:30 판

大院君

개요

조선시대에 국왕의 생부가 생존해있을 때, 해당 생부가 상왕이 아니라는 상황 하에 해당 생부에게 내리는 칭호.

설명

본래대로 말하자면 '아버지가 살아있는 채로 왕이 되는 경우'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세자가 국왕이 되려면 우선 현재 국왕의 자리에 올라있는 아버지가 먼저 승하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이 힘으로 왕위를 빼앗았거나 혹은 아버지가 스스로 왕위에서 은퇴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서 생부가 살아있는채로 국왕이 만들어질수는 있다. 참고로 이 예시를 둘 다 해낸 인간이 바로 이방원이다. 전자는 자기 아버지에게, 후자는 자기 아들에게 시전했다. 오오 태종 오오 다만 이 경우 그 물러난 국왕도 어쨌든 한 때는 국왕이였으니만큼 보통 '상왕'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때문에 대원군이 될 수 없다. (애초에 '군'이라는 표현 자체가 왕보다 낮은 표현이다. 조선시대에 폐위된 왕 두명이 다른 왕들처럼 '~종' 이나 '~조'가 아닌 각각 연산군, 광해군 등 '~군'으로 불리게 된 것을 생각해보자)

따라서 대원군이라는 개념이 성립되려면 다음과 같은 발동 조건(?)을 필요로 하는데...

  • 1) 국왕의 슬하에 왕위를 물려받을 아이가 없어야 한다 (아들 한정. 딸의 경우는 어차피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니 상관없다)
  • 2) 국왕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받을만한 친척이 있어야 한다
  • 3) 다음 왕위를 물려받는 친척의 친아버지가 살아있어야 한다

...라는 건데 사실 저 3개 중 한개 맞추기도 더럽게 힘든것이 현실이였다. 우선 평균 수명이 짧은 국가들은 빨리 죽기 때문에 빨리 후대를 보기 위하여 결혼을 10대 즈음에 행하곤 했는데 이는 조선도 예외가 아니라서 사실 국왕들은 국왕이 되기도 전부터 이미 혼인을 한 몸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그 사이에 자식이 안생길리가 없다. 게다가 국왕은 특별히 후궁들을 들여서라도 자식을 볼 수 있었기에 자식 보는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게다가 국왕의 친척들은 상술했듯 왕위 계승권을 일단 갖고는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국왕에게 있어 잠재적인 왕권의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이에 수차례 각종 정치적인 과정을 거쳐 숙청당하거나 아예 계승권을 포기하고 떠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따라서 국왕의 주변에는 왕권을 계승할만한 친척이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왕의 생부라는 존재의 부담감으로 일부러 생부가 없는 왕족을 양자로 선택하는 경우도 대다수였다. 예를 들어 선조의 부친 덕흥대원군[1]이 일찍이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아들 하원군, 하릉군, 하성군 삼형제가 명종의 양자로 들어갈 것이라 주목받고 있었다. 즉 하성군 균이 선조로 즉위한 것이 명종의 독단적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역시 상술했듯 평균 수명이 짧았기에 보통 자식이 20대 정도만 되어도 부모는 골골해져 오늘내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고 따라서 어떻게 친척이 왕위를 대신 계승해도 정작 친아버지가 살아있지 않아 대원군이 되는 경우 또한 없었다. 계산을 해보자면, 국왕이 다음 왕위 계승자를 고민할때 즈음이라는 것은 국왕 또한 나이를 먹어 매우 골골한 상태라는 점이다. 하여 친척을 후계자로 삼게 된다면 그 후계자는 당연히 최소 10대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즈음이면 그 후계자의 친아버지도 국왕처럼 나이를 먹어 골골한 상태... 이러니 살아서 아들이 왕이 되어 대원군 칭호를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하응은 어떻게 대원군이 되었나?

때문에 현재 '대원군' 하면 연결되는 사람은 현재 흥선대원군, 즉 이하응이 전부이다. 여기서 이하응이 대원군이 된 것은 그야말로 여러 타이밍이 겹치고 겹친 신의 타이밍과 그것을 적절히 이용한 정치적 계산 덕분이였다고 볼 수 있다. 위의 대원군 발동 조건과 이하응의 당시 행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 1) 국왕의 슬하에 왕위를 물려받을 아이가 없어야 한다
당시 조선 왕조는 24대 국왕인 헌종이 슬하에 자식이 없이 사망한 상태인데다가 왕족 계보가 거의 다 끊겨서, 왕권을 계승할만큼 나이가 되고 판단력이 되는 사람이 이원범(철종) 밖에 없는 사람이였다. 그나마 결국 철종조차 후대를 보지 못하였다.
  • 2) 국왕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받을만한 친척이 있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왕족 중 하나인 이하응이 살아있었고, 그는 비밀리에 신정왕후와 접선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인 이명복을 신정왕후의 양자로 찔러넣어두었다. 참고로 이 때 이명복은 아직 10대도 안된 어린아이였다. 말인즉 이하응은 펄펄 뛰던 시기.
  • 3) 다음 왕위를 물려받는 친척의 친아버지가 살아있어야 한다
결국 철종은 후대를 보지 못하고 단명하였고 이렇게 되자 철종의 전 국왕인 헌종의 어머니가 되는 신정왕후의 아들 이명복(헌종과 이명복 둘 다 신정왕후의 아들이니 항렬로 따지면 결국 헌종과 동급이 된다)이 자연스럽게 왕위를 계승하여 고종이 된다. 물론 이 때도 이하응은 살아있었다.

이러한 경위로 왕이 후대가 없음 + 나이 어린 아들을 왕위로 옹립하는 호재의 연속으로 이하응은 살아서 대원군이 되어 오늘날 '대원군'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흥선대원군이 된 것이다.

각주

  1. 창빈 안씨 소생, 중종의 7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