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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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배경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서 무리하게 내정개혁(소위 '갑오개혁')을 강요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조선정부는 1895년 8월에는 민영환을 주미 전권공사로 등용하는 동시에 친일계인 어윤중·김가진 등을 면직시키고 이범진·이완용 등 친러파를 기용하였다. 그리고 9월에는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손잡고 친일세력 제거 차원에서 친일파의 거두 박영효를 축출하였다. 이로써 제3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됐는데 조정은 친미·친러파가 주축이 되었고 이들은 명성황후 민씨와 가까운 사이였다. 이로써 조정에서 친일파들이 몰락하자 위협을 느낀 일본은 급기야 그해 10월 8일 명성황후 살해사건, 즉 '을미사변'을 강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