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케임브리지 선언 (feat. 동물의 의식)

Caeruleum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16일 (토) 14:31 판 (일상과학 WiKi - wikidok>dailysciences | 케임브리지 선언 (feat. 동물의 의식)(http://ko.experiments.wikidok.net/케임브리지 선언 (feat. 동물의 의식)))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파일:/api/File/Real/5a4f006ca679e6c4285631be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

The Cambridge Declaration on Consciousness

동물에게도 인간의 그것처럼 의식을 생성하는 신경기질이 있다.

개요[원본 편집]

파일:/api/File/Real/5a4f00dea679e6c4285631c2

훌륭한 집사를 위해, 건배!

2012년 7월 7일, 신경생물학과 인지과학 분야를 선도하는 전문가들이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모여,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에 서명했다. 그 선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의도적인 행동을 보이는 능력과 함께, 의식적 상태를 구성하는 신경해부학적 · 신경화학적 · 신경생리학적 기질들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인간만이 의식을 생성하는 신경기질을 지닌 유일한 생물이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 모든 포유류와 조류, 문어를 포함한 그밖에 많은 생물들을 포함하는 동물들 역시 그러한 신경기질을 지니고 있다."

과학계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에 부응해, 2015년 5월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동물이 감응적 존재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국가가 되었다. 이때 뉴질랜드는 동물복지에 관한 수정조항을 통과시켰다. 이 수정조항은 동물을 감응적 존재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축산업에서 동물들의 복지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명시한다.1

다만 이 선언의 내용에 오해할 만한 구석이 하나 있다. 이 선언은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다.'라고 정확하게 못 박은 것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의식을 만드는 신경기질이 존재한다.'라는 것이다. 즉 '그러한 신경기질이 존재하므로 (아마도) 동물에게도 의식이 존재할 것이다.'가 정확한 선언의 내용이다. 사실 우리가 동물이 되어 그들이 느끼는 것을 경험할 수 없으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또 한 번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일환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 선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할 때는 반드시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The Cambridge Declaration on Consciousness)'이라고 해야 관련 내용들이 나온다. 그냥 케임브리지 선언(The Cambridge Declaration)을 검색할 경우 1996년에 있었던 신앙선언이 나온다.

원문[원본 편집]

이 선언문의 작성자는 캘리포니아 라 호이야(La Jolla)의 신경과학연구소 데이비드 에델만(David Edelman), 스탠포드 대학의 필립 로우(Philip Low), 그리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다.

틀:안내바

아이러니: 동물의 비극[원본 편집]

파일:/api/File/Real/5a4f197ca679e6c42856324a

뇌에 자극을 주어 쥐를 조종하는 일명 '리모콘 쥐'. 특정 자극으로 인해 쥐는 왼쪽으로 돌고 싶은 욕구, 오른쪽으로 돌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물론 쥐는 자신이 원해서 그쪽 방향으로 돈다고 생각한다.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며 살아간다. 적어도 케임브리지 선언은 동물들에게 있어서 승리의 선언처럼 들린다. 실제로 2015년에 뉴질랜드에서 동물복지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기도 했다니 좀더 동물들도 좀더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역사적인 일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동물들도 인간들처럼 모든 것을 느끼며 배부름의 기쁨도, 동료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또 결정적으로 죽음의 공포도 느낀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우리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실험도 계속해서 해왔다. 대표적으로 원숭이 애착 실험과 같은 스킨십에 대한 욕구와 같은 실험이 있었다. 사실 케임브리지 선언은 일종의 과학적인 증거와 함께하는 '공식입장'일뿐 예전부터 우리는 어렴풋이 동물도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동물의 감정을 이용한 것은 항우울제의 개발에 따른 실험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항우울제를 개발하기 위해서 널리 알려진 실험방법은 다음과 같다.

파일:/api/File/Real/5a4f1dd7a679e6c428563263

물을 채운 유리통에 쥐 백 마리를 각각 넣는다. 백 마리나 필요한 이유는 '통계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고작해야 한 두 마리로 실험한다면 아무도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재난을 당한 쥐들은 유리통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15분이 지나면 대부분의 쥐들은 포기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주변 환경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은채 유리통에 둥둥 떠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쥐 백 마리를 집어넣되, 그들이 절망에 빠지기 직전인 14분에 유리통에서 건져내어 구해준다. 그리고는 물기를 말리고, 먹이를 주고, 약간의 휴식을 준다. 그런 다음 다시 유리통에 집어넣으면 이번에는 쥐들이 20분간 발버둥 치다가 포기하게 된다. 이들이 6분이라는 시간을 더 버티는데에는 신경학적 이유가 있다. 지난번에 발버둥치다가 무사히 빠져나온 기억이 뇌에 어떤 생화학 물질을 분비시켜 쥐들에게 희망을 주고 절망의 시점을 뒤로 미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특정 화학물질을 분리해낼 수 있다면 항우울제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는데, 쥐들에게 분비되는 그 많은 화학물질 중 어떤 것이 항우울 물질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알아내려면 또다시 수많은 쥐들을 동원해야한다. 처음의 실험에 참여했던 쥐들에게서 다양한 물질들을 뽑아낸 뒤,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던 새로운 쥐들의 집단에게 이 각각의 물질들을 하나씩 주입한다. 특정 화학물질을 찾아내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집단은 15분이 한계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20분을 버티는 집단이 나올 수 있다. 유레카! 바로 이 물질이 항우울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실험은 쥐들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우울증도 앓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가능한 실험들이다. 그리고 항우울제는 시중에 잘 팔리고 있다.3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므로 동물복지에 관한 법률 통과가 명(明)이라고 한다면 감정이 있으므로 인간 대신 실험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동물의 입장에서) 암(暗)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련 영상(TED)[원본 편집]

한국어 자막이 있다!

해당 강의의 제목은 『Modern Warrior : TEDxSydney의 Damien Mander』로 정확하게 케임브리지 선언에 대한 내용은 아니지만 동물과 감정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