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역보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4월 21일 (화) 23:23 판

서애 류성룡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상황부터 이후의 처리과정에 대해 적은 책으로 국보 제 132호이다. 징비록의 '징비'는 징계할 징(懲), 삼갈 비(毖)로 시경의 予其懲而毖後患(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가치

사실 징비록은 실록같은 정식사료도 아니며 개인이 쓴 1차사료인데다 유일한 기록도 아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참조하는 이유에는 저자인 류성룡의 직책에 있다. 류성룡은 당시에 올라온 전쟁 상황과 공적을 알 수 있는 장계들을 봐왔으며 임금 선조를 호송하며 당시 조정 상황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체험한 인물이다. 또한 도체찰사가 되어 조정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있어서 징비록은 그가 얻고 체험한 정보들로 적힌 책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전쟁 이전 상황과 이후 대처 상황까지 묘사함으로 단순히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 아닌 이러한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후대에 경고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 조정의 대처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에 숙종 38년(1712) 징비록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금하기도 하였다.

비판

개인이 쓴 1차사료이기 때문에 객관성에서 비판을 받는다. 같은 동인인 김성일이 통신사로 온 직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발언에 대해 "백성들이 혼란에 빠질까봐 전쟁이 일어난다는 발언을 피한 것이다"라고 옹호하였으나 반대파인 서인 윤두수같은 이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을 가한다는 점에서 1차사료의 단점이 들어나므로 참조할 때는 실록이나 다른 사료들과의 교차검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