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민군

Freirepublik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6월 18일 (목) 20:52 판

개요

과거 존재했던 독일민주공화국의 군대이다. 독어 Nationale Volksarmee(나치오날레 폴크스아르미)의 약자를 따 NVA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선 동독군이라는 호칭이 일반적이다. 사회주의국가의 군대이므로 국가의 군대가 아닌 당의 군대이나 이름에 국가(Nationale)가 붙은 레어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역사

정규군은 약 17만명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독일 통일 전날인 1990년 10월 2일 독일연방군에 편입되어 해체되었다.

통일기(1989~1990)

라이프치히에서의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동독인민의 시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독일 통일사회당 서기장 이었던 에리히 호네커는 국가인민군을 동원한 무력진압을 원했으나 통일사회당 내부반발과 소련의 제지[1]로 무산되었다. 다만 소련의 묵인과 통일사회당 내부의 반대가 없었더라도 진압이 이루어 졌을지에 대해서는 불명확 했다. 당시 국가인민군은자신의 당의 동반자이자 조력자로 한정했으며 초급장교와 병사들은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공격하는 상황"에 대해 부정적 이었고 국가인민군 수뇌부는 일찍이 무력진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한 장성은 "당의 명령에 따를 원로장성들이 몇 있었으나 이미 무력진압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라고 회고했다. 한편 1989년만해도 통일은 점진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었으므로 국가인민군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점진적인 통일과정에서 국가인민군의 체질개선에 성공하고, 인민을 위한 군대로서 존속하거나 혹은 연방군에 대등하게 통합될 것이라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급속한 흡수통일이었고 국가인민군은 해체되어 일부만이 연방군에 편입될 것이란 결정이 내려졌다. 그 상황에서 국가인민군은 한건의 총기사고나 쿠데타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해체직전까지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다만 국가인민군 전차부대가 동베를린으로 진격한 적이 있었는데, 국가인민군 임금인상문제로 시위하러 온 것이었다(...) 이후 연방군 통합 때에도 국가인민군 구성원들은 연방군의 이념인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의 군인과 임무형지휘체계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면서 연방군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장비

국가인민군은 바르샤바조약기구 소속 군대로 대부분의 장비가 소련제이거나 소련제를 자체개량한 장비를 운용하였다. 다만 광학과 같은 몇몇 분야에선 자체개발한 장비를 운용하였다.

통일후의 처리

국가인민군의 장비는 독일통일 당시 군축협약에 따라 대부분이 폐기되었고 소수의 장비나 해외로 판매되었다. 수출으로 얻은 이익보다 폐기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이 더 많았기에 이익을 보진 못했다.

국가인민군과 한반도통일

독일통일은 미래 한반도통일 상황에서 많은 사례들을 남기면서 여러가지 교훈을 주었는데, 군 해체는 국가인민군이 워낙에 모범적으로 해체당해(...) 별 도움이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선 당시 동독은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북한과 달리 군대가 그다지 정치에 관여하려 들지 않았고, 군 기강이나 상황이 임금인상 시위좀 한거 빼곤 아주 열악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은 당이 개혁개방 의지가 있어도 군의 친위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곳이므로 상황이 다른 편이다.

  1. 당시 소련은 통일독일이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남아있기만 하면 통일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 소련에게 동독의 무력행사는 협상에 불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