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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0일 (월) 20:18 기준 최신판

강경옥.jpg

姜敬玉.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강경옥에 대한 기록은 1927년 동아일보 기사 4건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기사에 따르면, 그녀는 1850년경에 안동군 풍산면 막곡리에서 출생했으며, 17살때 전씨와 결혼했다고 한다. 31세 때 남편이 사망한 뒤 외아들을 키우며 소작인으로 살아갔다. 평소 지주의 무리한 요구에 불만을 품던 그녀는 1923년 풍작소작인회가 창립되자 여기에 가담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8월 28일 풍산소직인회 회관을 건립하는 데 한 몫했으며, 풍산소작인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패물까지 팔아서 지원하였다. 그러던 1927년 9월 17일, 77세의 일기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아일보는 1927년 9월 26일자 기사에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77세의 고령에 소작운동에 분투하였다"고 평가했다.[1]

안동의 각 단체들은 고령의 나이에도 소작운동에 헌신한 공을 높게 평가하여, 단체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1927년 10월 1일 아침 9시 풍산시장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하지만 안동경찰서 고등계는 장례식이 시위로 확대될 것을 우려하여 엄중하게 경계했다. 수천 명이 몰려들자, 경찰은 각 단체로부터 온 조기를 압수한 후 영결식을 시장에서 치르지 못하도록 하고, 풍산소작인회 회관 앞에는 통행을 금지했다. 상여는 경찰의 감시 하에 수동 뒷산으로 옮겨져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영결식이 종료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동아일보 10월 6일자 기사에 기재되었다.[2]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강경옥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