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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폴란드공|우주에 갈수없다]] [[카더라]]</del> | <del>[[폴란드공|우주에 갈수없다]] [[카더라]]</d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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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폴란드는 파리 강화 회의의 결과로 독립하게 된다. | [[1918년]] 폴란드는 파리 강화 회의의 결과로 독립하게 된다. 소련과의 전쟁([[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을 통해 벨라루스와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 상당수를 획득하며 동부 국경을 확정했다. 이후 독립과 구국의 영웅이었던 피우수트스키가 독재정치를 펼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리투아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독일]], [[소련]] 등 많은 이웃나라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 ||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폴란드의 상황은 극적으로 바뀐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1933년]] 폴란드에 불가침조약을 제의, 폴란드는 이를 수락하면서 양국간 평화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히틀러는 독폴 불가침조약으로 시간을 번 이후 호시탐탐 영토를 늘릴 생각을 하였고,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흡수하는데, 폴란드는 이 순간 동맹국 프랑스를 저버리고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에 가담하여 자그마한 영토(톄신 지방)를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강탈하였다. |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폴란드의 상황은 극적으로 바뀐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1933년]] 폴란드에 불가침조약을 제의, 폴란드는 이를 수락하면서 양국간 평화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히틀러는 독폴 불가침조약으로 시간을 번 이후 호시탐탐 영토를 늘릴 생각을 하였고,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흡수하는데, 폴란드는 이 순간 동맹국 프랑스를 저버리고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에 가담하여 자그마한 영토(톄신 지방)를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강탈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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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은 영토를 획득한 대가로 독일은 대놓고 단치히 회랑을 요구<s>가 아닌 협박</s>했고 폴란드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에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독일군의 총공격에 폴란드군은 용감히 맞섰지만, 결국 독일과 밀약을 맺었던 소련이 참전하면서 1달만에 전 국토가 유린되고 정부는 영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폴란드 영토는 독일과 소련이 분할하였으며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침략자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특히 소련에 의해 폴란드 고위층 및 지식인이 집단학살당한 [[카틴 학살]]은 오늘날까지도 폴란드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 그러나 작은 영토를 획득한 대가로 독일은 대놓고 단치히 회랑을 요구<s>가 아닌 협박</s>했고 폴란드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에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독일군의 총공격에 폴란드군은 용감히 맞섰지만, 결국 독일과 밀약을 맺었던 소련이 참전하면서 1달만에 전 국토가 유린되고 정부는 영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폴란드 영토는 독일과 소련이 분할하였으며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침략자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특히 소련에 의해 폴란드 고위층 및 지식인이 집단학살당한 [[카틴 학살]]은 오늘날까지도 폴란드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 ||
이후 폴란드 영토는 [[1944년]] 소련군의 하계 대공세([[바그라티온 작전]])와 뒤이은 추가공세 속에 완전히 해방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에 독일과 야합한 침략자인 소련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정한 해방일 리 없었다. 소련은 폴란드 자유주의 및 우파 진영을 철저히 탄압하고 영국의 망명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괴뢰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는 동부 영토를 소련에 빼앗기고 반대급부로 독일의 동부 영토를 | 이후 폴란드 영토는 [[1944년]] 소련군의 하계 대공세([[바그라티온 작전]])와 뒤이은 추가공세 속에 완전히 해방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에 독일과 야합한 침략자인 소련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정한 해방일 리 없었다. 소련은 폴란드 자유주의 및 우파 진영을 철저히 탄압하고 영국의 망명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괴뢰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는 동부 영토를 소련에 빼앗기고 반대급부로 독일의 동부 영토를 획득했눈데, 이 과정에서 수도 바르샤바가 국토의 중심부가 아닌 동쪽으로 치우쳐지게 된다. 그러다가 [[1956년]] 비에레투가 사망하면서 변화의 물결이 찾아왔고, 포즈난 항쟁과 고무우카의 집권기를 거치면서 소련의 영향력에서 상당히 벗어나기는 하였지만 고무우카는 후에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변모하면서 인민들의 지지를 잃게되었고 [[1970년]]의 파업으로 기에레크에 의해 사실쌍 쫓겨나게 된다. 기에레크는 집권후에 경제개방정책을 펼치면서 인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차관을 들여보냈고, 그 차관이 후에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의 숨결을 끊어놓게 된다. | ||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후반기 오일쇼크가 닥쳐오면서부터이다.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고, 동구권의 맹주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폴란드에서도 마침내 민주선거를 통해 |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후반기 오일쇼크가 닥쳐오면서부터이다.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고, 동구권의 맹주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폴란드에서도 마침내 민주선거를 통해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폴란드는 [[유럽 연합]]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하며 빠르게 서구 세계에 편입되고 있다. | ||
==지리== | ==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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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 | ||
폴란드는 [[폴란드어]]를 사용한다. | 폴란드는 [[폴란드어]]를 사용한다. 주류 민족은 폴란드인이며, 소수민족들도 약간 있다. | ||
==문화== | ==문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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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프 클로제]]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 폴란드 오폴레 출신. 단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경우 폴란드 출신이긴 하지만 원래 독일계 혈통으로, 폴란드 공산화 이전부터 자리잡고 살던 독일계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독일로 돌아온 케이스. | *[[미로슬라프 클로제]]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 폴란드 오폴레 출신. 단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경우 폴란드 출신이긴 하지만 원래 독일계 혈통으로, 폴란드 공산화 이전부터 자리잡고 살던 독일계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독일로 돌아온 케이스. | ||
*[[루카스 포돌스키]]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 폴란드 글리비체 출신. 클로제와는 달리 혈통도 폴란드인, 모국어도 폴란드어다. 심지어 '''본인의 조국도 폴란드'''라고 생각하지만 프로 선수로서 갖는 소속 국가대표팀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감으로 활약하고 있는 듯. | *[[루카스 포돌스키]]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 폴란드 글리비체 출신. 클로제와는 달리 혈통도 폴란드인, 모국어도 폴란드어다. 심지어 '''본인의 조국도 폴란드'''라고 생각하지만 프로 선수로서 갖는 소속 국가대표팀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감으로 활약하고 있는 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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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폴란드| ]] | [[분류:폴란드| ]] | ||
{{리브레 맵스 마커|53.18186878820461|19.744150936982066|4|폴란드}} | {{리브레 맵스 마커|53.18186878820461|19.744150936982066|4|폴란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