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템킨호 반란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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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일이 지난 후 상식적인 선에서 연구가 진행되면서 길리아로프스키가 진짜 총살형을 집행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이다. 총살형의 권한은 함장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되어 있었고, 부장에게는 사병 징계의 수단으로서 '''태형 및 구류'''만이 가능했다. 즉, 길리아로프스키는 총살형 위협을 하며 사병들의 불만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격이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del>불난 집에 부채질은 군의관이 이미 했다.</del> <del>이건 불난 집에 부채질한 상황에서 기름까지 붓는 격이다.</del>
다만, 시일이 지난 후 상식적인 선에서 연구가 진행되면서 길리아로프스키가 진짜 총살형을 집행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이다. 총살형의 권한은 함장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되어 있었고, 부장에게는 사병 징계의 수단으로서 '''태형 및 구류'''만이 가능했다. 즉, 길리아로프스키는 총살형 위협을 하며 사병들의 불만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격이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del>불난 집에 부채질은 군의관이 이미 했다.</del> <del>이건 불난 집에 부채질한 상황에서 기름까지 붓는 격이다.</del>


결국 이러한 대응이 수병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수병 중 소수 사회주의가 및 선동가들에 의해 무기를 들고 일어서자는 외침이 시작되었다. 부장이 위협용으로 갑판에 배치시킨 위병들조차 부장의 통제를 따르길 거부했고, 격분한 선원들은 즉시 무기고를 접수하고 무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발생한 총격전에서 수병 1명과 길리아로프스키, 그리고 길리아로프스키를 따르던 견습사관 1명이 죽었고 피를 본 수병들은 흥분하며 장교들을 색출해내기 시작했다. 길리아로프스키와 별개로 각자 업무를 보고 있던 장교들은 총성에 당황하여 상황 파악을 위해 뛰쳐나오다가 사살당했다. 일부는 바다에 몸을 던져 어뢰정 N267로 도망치거나 도망치던 중 사살되었다.
결국 이러한 대응이 수병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수병 중 소수 사회주의가 및 선동가들에 의해 무기를 들고 일어서자는 외침이 시작되었다. 부장이 위협용으로 갑판에 배치시킨 위병들조차 부장의 통제를 따르길 거부했고, 격분한 선원들은 즉시 무기고를 접수하고 무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발생한 총격전에서 수병 1명과 길리아로프스키, 그리고 길리아로프스키를 따르던 견습사관 1명이 죽었고 피를 본 수병들은 흥분하며 장교들을 색출해내기 시작했다. 길리아로프스키와 별개로 각자 업무를 보고 있던 장교들은 총성에 당황하여 상황 파악을 위해 뛰쳐나오다가 사살당했다. 일부는 바다에 몸을 던져 어뢰정 N267로 도망치거나 도망치던 중 사살되었다.  


사회주의자 코발렌코 대위는 봉기에 참가하고자 했으나 어설프게 나섰다가 장교라는 신분상 사살될 것을 우려 몸을 숨기고 있었고, 평민 출신 톤 대위는 사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으나 설득에 실패하고 교전 끝에 사살당했다.
사회주의자 코발렌코 대위는 봉기에 참가하고자 했으나 어설프게 나섰다가 장교라는 신분상 사살될 것을 우려 몸을 숨기고 있었고, 평민 출신 톤 대위는 사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으나 설득에 실패하고 교전 끝에 사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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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절묘한 시기에 맞춰서 포템킨이 오데사로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절묘한 시기에 맞춰서 포템킨이 오데사로 온 것이다.'''


포템킨 호는 6월 27일 밤에 오데사 항에 돌아와 외곽에 닻을 내렸다. 시민들이나 군 장교들 모두 포템킨이 훈련을 끝마치고 돌아온 것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 해가 뜨면서 시민들은 똑똑히 보았다. 포템킨에 게양된 깃발이 러시아 해군기와 전혀 다른 '''적기'''라는 사실을.
포템킨 호는 6월 27일 밤에 오데사 항에 돌아와 외곽에 닻을 내렸다. 시민들이나 군 장교들 모두 포템킨이 훈련을 끝마치고 돌아온 것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 해가 뜨면서 시민들은 똑똑히 보았다. 포템킨에 게양된 깃발이 러시아 해군기와 전혀 다른 '''적기'''라는 사실을.                  


오데사의 통치당국은 제대로 멘붕해서 시장은 '''상층부에 직접 이 중대한 사태를 보고'''해야 한다며 기차편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망쳤다.(...) 군정당국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여서 군정장관 콜하노프는 함포사격에 대비해 군부대의 주둔지를 분산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서방국가도 마찬가지여서, 오데사의 영국과 프랑스 공사관은 즉시 본국에 전함의 반란 사실을 타전했고, 해상보험사인 로이드는 흑해를 항해하는 모든 함선들에 대한 해상보험료를 올렸다.
오데사의 통치당국은 제대로 멘붕해서 시장은 '''상층부에 직접 이 중대한 사태를 보고'''해야 한다며 기차편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망쳤다.(...) 군정당국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여서 군정장관 콜하노프는 함포사격에 대비해 군부대의 주둔지를 분산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서방국가도 마찬가지여서, 오데사의 영국과 프랑스 공사관은 즉시 본국에 전함의 반란 사실을 타전했고, 해상보험사인 로이드는 흑해를 항해하는 모든 함선들에 대한 해상보험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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