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라우눔 전투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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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라우눔 전투'''({{영어|Battle of the Catalaunum}})는 서기 [[451년]]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과 [[서로마제국]]의 장군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지휘하는 서로마 - 게르만 연합군 간에 벌어진 전투로, 그때까지 무적으로 알려진 [[훈족]]이 최초로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투인 동시에 서로마 제국 군대가 군대답게 싸운 마지막 전투로 알려져 있다.
Battle of the Catalaunum
 
서기 451년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과 [[서로마제국]]의 장군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지휘하는 서로마 - 게르만 연합군 간에 벌어진 전투로, 그때까지 무적으로 알려진 [[훈족]]이 최초로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투인 동시에 서로마 제국 군대가 군대답게 싸운 마지막 전투로 알려져 있다.


== 전조 ==
== 전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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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에티우스는 이탈리아를 떠나 갈리아로 진입한다. 그에겐 아틸라와 맞설만한 충분한 병력이 없었으므로 비시고트의 왕인 테오도릭 1세 <ref> 로마 약탈을 주도했던 알라리크 1세의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ref>에게 연합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테오도릭은 아틸라를 두려워하고 있긴 했으나 아에티우스에게 맞설만한 병력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아에티우스는 당시 갈리아에서 영향력이 높았던 원로원 의원 아비투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테오도릭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였으며 테오도릭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아에티우스의 군대와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아에티우스는 이탈리아를 떠나 갈리아로 진입한다. 그에겐 아틸라와 맞설만한 충분한 병력이 없었으므로 비시고트의 왕인 테오도릭 1세 <ref> 로마 약탈을 주도했던 알라리크 1세의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ref>에게 연합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테오도릭은 아틸라를 두려워하고 있긴 했으나 아에티우스에게 맞설만한 병력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아에티우스는 당시 갈리아에서 영향력이 높았던 원로원 의원 아비투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테오도릭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였으며 테오도릭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아에티우스의 군대와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오를레앙을 점령하기 직전이었던 아틸라는 로마와 비시고트의 연합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를레앙과 연합군 사이의 양면공격 가능성을 우려했기에 포위를 풀고 철수키로 결정한다. 곧바로 훈족의 왕과 그의 장군들은 서로마의 연합군과 맞설만한 지대를 찾았고, 트루아로 물러나 그곳의 주교 루푸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탈라우눔 평야에 진을 쳤다.
오를레앙을 점령하기 직전이었던 아틸라는 로마와 비시고트의 연합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를레앙과 연합군 사이의 양면공격 가능성을 우려했기에 포위를 풀고 철수키로 결정한다. 곧바로 훈족의 왕과 그의 장군들은 서로마의 연합군과 맞설만한 지대를 찾았고, 트루아로 물러나 그곳의 주교 루푸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탈라우눔 평야에 진을 쳤다.  


같은 시기 아에티우스는 휘하의 로마군 이외에 테오도릭이 이끄는 서고트군, 로마와 동맹관계에 있던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등과도 연합군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틸라를 요격하기 위해 그가 있는 장소로 진격하였고 [[6월 20일]]에 양진영은 카탈라우눔 평야에서 조우하게 처절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같은 시기 아에티우스는 휘하의 로마군 이외에 테오도릭이 이끄는 서고트군, 로마와 동맹관계에 있던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등과도 연합군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틸라를 요격하기 위해 그가 있는 장소로 진격하였고 [[6월 20일]]에 양진영은 카탈라우눔 평야에서 조우하게 처절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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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날 밤 아틸라는 훈족의 관습대로 전투가 어떻게 될 것인지의 점을 치게 하였다. 점을 친 결과 <ref> 당시 점을 치는 방식은 희생제물의 내장을 검시하는 방식이었다 </ref> 훈족에게 재앙이 일어날 것이고 적의 리더가 죽을 것이다라는 점괘가 나왔는데 이 리더가 아에티우스를 지칭한다고 생각한 아틸라는 전투를 하기로 결정한다.
또 이날 밤 아틸라는 훈족의 관습대로 전투가 어떻게 될 것인지의 점을 치게 하였다. 점을 친 결과 <ref> 당시 점을 치는 방식은 희생제물의 내장을 검시하는 방식이었다 </ref> 훈족에게 재앙이 일어날 것이고 적의 리더가 죽을 것이다라는 점괘가 나왔는데 이 리더가 아에티우스를 지칭한다고 생각한 아틸라는 전투를 하기로 결정한다.


그 평야는 완만하게 경사진 곳이었다. 양측 모두 이 높은 부분을 한쪽 익에 낮은 부분을 다른 쪽 익에 낀 상태로 포진하고 있었으므로 양측 모두 높은 경사의 지리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였다.
그 평야는 완만하게 경사진 곳이었다. 양측 모두 이 높은 부분을 한쪽 익에 낮은 부분을 다른 쪽 익에 낀 상태로 포진하고 있었으므로 양측 모두 높은 경사의 지리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였다.  


이들은 관습대로 군대를 좌익, 중앙, 우익으로 나눠 각각 적과 맡붙게 하였다. 로마-비시고트 연합 측에선 다음과 같이 포진하였다. 비시고트족이 우익을 담당하고 이들은 높은 경사에서 싸우기로 하였다. 아에티우스는 좌익을 맡아 낮은 경사에서 싸우기로 하였고 중앙은 상기반 족이 맡았다. 상기반 족에게 중앙을 맡긴 것은 아에티우스와 비시고트족 모두 상기반 족을 신뢰하지 않았으므로 어느 한쪽 익을 맡기면 달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관습대로 군대를 좌익, 중앙, 우익으로 나눠 각각 적과 맡붙게 하였다. 로마-비시고트 연합 측에선 다음과 같이 포진하였다. 비시고트족이 우익을 담당하고 이들은 높은 경사에서 싸우기로 하였다. 아에티우스는 좌익을 맡아 낮은 경사에서 싸우기로 하였고 중앙은 상기반 족이 맡았다. 상기반 족에게 중앙을 맡긴 것은 아에티우스와 비시고트족 모두 상기반 족을 신뢰하지 않았으므로 어느 한쪽 익을 맡기면 달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틸라는 다음과 같이 포진하였다. 자신의 좌익은 오스트로고트 족에게 맡겨 비시고트족과 상대케 하였다. 우익은 게피드 족과 나머지 게르만 족에게 맡겨 아이티우스의 로마군과 상대케 하였다. 그리고 최정예인 훈족을 중앙에 포진하여 자신이 직접 지휘키로 하였다.
아틸라는 다음과 같이 포진하였다. 자신의 좌익은 오스트로고트 족에게 맡겨 비시고트족과 상대케 하였다. 우익은 게피드 족과 나머지 게르만 족에게 맡겨 아이티우스의 로마군과 상대케 하였다. 그리고 최정예인 훈족을 중앙에 포진하여 자신이 직접 지휘키로 하였다.  


이렇게 배치하는 동안 비시고트 족의 왕 테오도릭 1세의 아들 토르시먼드가 기병을 이끌고 언덕의 꼭대기를 점거한다.
이렇게 배치하는 동안 비시고트 족의 왕 테오도릭 1세의 아들 토르시먼드가 기병을 이끌고 언덕의 꼭대기를 점거한다.  


이 포진에서 양측이 상반된 전략을 엿볼 수 있는데 아이티우스는 양익에 정예를 포진시켜 적을 포위하고자 하였고 아틸라는 정예인 훈족으로 중앙을 돌파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 포진에서 양측이 상반된 전략을 엿볼 수 있는데 아이티우스는 양익에 정예를 포진시켜 적을 포위하고자 하였고 아틸라는 정예인 훈족으로 중앙을 돌파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배치를 마친 뒤 이들은 서로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두 군대가 천천히 접근고 있을 때 아틸라는 갑자기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돌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양 윙이 교전하기 전에 이미 아틸라 군과 상기반 족은 싸우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배치를 마친 뒤 이들은 서로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두 군대가 천천히 접근고 있을 때 아틸라는 갑자기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돌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양 윙이 교전하기 전에 이미 아틸라 군과 상기반 족은 싸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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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전투의 중요성에 대해선 두 가지 시각이 있는데 전통적인 시각은 위의 전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위의 전투의 중요성에 대해선 두가지 시각이 있는데 전통적인 시각은 위의 전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기번의 경우 위의 시각의 옹호자로 그는 위의 전투에서 훈족이 이겼다면 훈족은 갈리아를 통치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는 직접적으로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앞당기는 결말을 낼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훈족의 무적신화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이는 훈족의 멸망이 훨씬 뒤로 미루어지게 되며 이는 서유럽의 기독교 왕조의 성립이 늦춰지는 결말이 초래될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전투는 유럽 역사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에드워드 기번의 경우 위의 시각의 옹호자로 그는 위의 전투에서 훈족이 이겼다면 훈족은 갈리아를 통치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는 직접적으로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앞당기는 결말을 낼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훈족의 무적신화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이는 훈족의 멸망이 훨씬 뒤로 미루어지게 되며 이는 서유럽의 기독교 왕조의 성립이 늦춰지는 결말이 초래될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전투는 유럽 역사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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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J.B Bury의 경우 위의 시각은 과장된 것으로 당시 훈족은 수많은 민족을 통제하고 있었으나 이들 민족은 언제 배신할 지 모르므로 훈족의 입지는 상당히 불안정 하였으며 따라서 아틸라와 같은 능력자가 통치하지 않는 이상 이들이 훈족을 배반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훈족이 설령 위 전투를 이겨 갈리아의 지배를 확립한다 하더라도 훈족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J.B Bury의 경우 위의 시각은 과장된 것으로 당시 훈족은 수많은 민족을 통제하고 있었으나 이들 민족은 언제 배신할 지 모르므로 훈족의 입지는 상당히 불안정 하였으며 따라서 아틸라와 같은 능력자가 통치하지 않는 이상 이들이 훈족을 배반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훈족이 설령 위 전투를 이겨 갈리아의 지배를 확립한다 하더라도 훈족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의 다른 시각과는 별개로 위의 전투에서 아에티우스는 장군으로써의 유능함을 보여주었다. 이때까지 훈족은 무적신화를 자랑하였으며 아틸라가 직접 이끄는 훈족은 매우 용맹한 부대였는데 이들을 약한 보병과 맞붙게 하여 시간을 끄는 한편 그의 부대로 후방을 협공하여 이 훈족을 무력화 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위의 다른 시각과는 별개로 위의 전투에서 아에티우스는 장군으로써의 유능함을 보여주었다. 이때까지 훈족은 무적신화를 자랑하였으며 아틸라가 직접 이끄는 훈족은 매우 용맹한 부대였는데 이들을 약한 보병과 맞붙게 하여 시간을 끄는 한편 그의 부대로 후방을 협공하여 이 훈족을 무력화 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런 후방을 협공을 위해 아에티우스는 상기반 족과 그의 로마군의 포지션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훈족이 밀어붙이면 자연스럽게 로마군에게 그들의 후방을 노출되게끔 하였다. 또한 상기반 족과 훈족의 전투력의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훈족이 상기반 족을 밀어붙이면 어디까지 밀려 후방이 노출 될것인가를 예측하였고 이것이 시기적절한 후방의 협공을 가능케 하였다.
이런 후방을 협공을 위해 아에티우스는 상기반 족과 그의 로마군의 포지션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훈족이 밀어붙이면 자연스럽게 로마군에게 그들의 후방을 노출되게끔 하였다. 또한 상기반 족과 훈족의 전투력의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훈족이 상기반 족을 밀어붙이면 어디까지 밀려 후방이 노출 될것인가를 예측하였고 이것이 시기적절한 후방의 협공을 가능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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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전투]]
[[분류:전투]]
[[분류:고대 로마]]
[[분류:고대 로마]]
[[분류:5세기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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