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후원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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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세계에 알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 최고의 [[원림]].'''<br />
==개요==
창덕궁의 궁중 원림으로 조선 시대 임금의 산책로로 지어진 후원이다. 원래는 [[1405년]] [[10월]]에 [[조선 태종|태종]] 때 별궁으로 지은 것인데, 이후 [[1592년]]에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1609년]] [[광해군]] 때 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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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세계에 알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 최고의 [[원림]].'''</br>
창덕궁의 궁중 원림으로 조선 시대 임금의 산책로로 지어진 후원이다. 원래는 [[1405년]] [[10월]]에 [[태종(조선)|태종]] 때 별궁으로 지은 것인데, 이후 [[1592년]]에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1609년]] [[광해군]] 때 중수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이 후원을 보고 후원의 아름다움에 핡핡대며(...) 창덕궁 후원이라는 엄밀한 이름이 존재함에도 비밀 속의 정원이라는 오그라드는 뜻인 비원(祕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외국에는 이 이름을 영어로 직역한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s>응?</s>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이 이름은 광복한 후에도 유지되었으며, 이후 일제의 잔재를 없애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원래의 이름인 창덕궁 후원이라는 명칭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이 후원을 보고 후원의 아름다움에 핡핡대며(...) 창덕궁 후원이라는 엄밀한 이름이 존재함에도 비밀 속의 정원이라는 오그라드는 뜻인 비원(祕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외국에는 이 이름을 영어로 직역한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s>응?</s>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이 이름은 광복한 후에도 유지되었으며, 이후 일제의 잔재를 없애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원래의 이름인 창덕궁 후원이라는 명칭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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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관람을 예약하고 해설사의 해설 하에 이동하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후원 답사 코스의 시작이다. 우선 예약하는 장소에서 후원까지 가려면 꽤 걸어야 하는데 이때 양옆의 흙담이 눈을 끈다. 특이하게 양쪽 흙담을 장식하는 타일이 무늬가 다른데 왼쪽은 마름모무늬, 오른쪽은 정사각형무늬로 덮여있다. 원래부터 있던 길은 아니고 원래 여긴 세자가 거처하던 동궁인 중희당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ref>http://www.dapsa.kr/blog/?p=1858</ref>
후원 관람을 예약하고 해설사의 해설 하에 이동하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후원 답사 코스의 시작이다. 우선 예약하는 장소에서 후원까지 가려면 꽤 걸어야 하는데 이때 양옆의 흙담이 눈을 끈다. 특이하게 양쪽 흙담을 장식하는 타일이 무늬가 다른데 왼쪽은 마름모무늬, 오른쪽은 정사각형무늬로 덮여있다. 원래부터 있던 길은 아니고 원래 여긴 세자가 거처하던 동궁인 중희당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ref>http://www.dapsa.kr/blog/?p=1858</ref>
=== 영춘문 (永春門) ===
[[파일:영춘문.jpg|500px]]<br>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갈 수 있는 관문. 물론 지금은 창경궁 관람을 위해선 추가적으로 요금을 내서 다른 경로로 가야 하기 때문에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 없다. 저 멀리 창경궁 식물원이 보인다.


==구조==
==구조==
=== 부용지 (芙蓉池) ===
=== 부용지 (芙蓉池) ===
[[파일:부용정.jpg|500px]]<br />
[[파일:부용정.jpg|500px]]</br>
'''창덕궁 후원이라고 하면 대부분 생각하는 이미지.'''
'''창덕궁 후원이라고 하면 대부분 생각하는 이미지.'''


창덕궁 후원에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연못. 주변엔 다양한 활엽수들이 절묘한 모양으로 자라있어 가을에 단풍이 들면 주변을 오색 찬란하게 물들인다.
창덕궁 후원에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연못. 주변엔 다양한 활엽수들이 절묘한 모양으로 자라있어 가을에 단풍이 들면 주변을 오색 찬란하게 물들인다.  


[[천원지방]] 사상에 입각해서 부용지 연못의 전체 형태는 네모난 형태이고 연못 중앙의 섬(?)은 동그란 모양이다.
[[천원지방]] 사상에 입각해서 부용지 연못의 전체 형태는 네모난 형태이고 연못 중앙의 섬(?)은 동그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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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보면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죄다 딱 봐도 가격이 장난 아닐 것 같은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각자의 사진 좀 찍어본 솜씨를 뽐내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하나같이 부용지의 '''네모난 곳의 꼭짓점 부분에 위치한 건물 바로 앞'''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하나같이 절묘한 자세로 찍어대는데 이게 관광객인지 사진작가인지... 참고로 이들이 서 있는 위치가 '''부용정을 가장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위치'''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감으로 어디에서 찍어야 하는지 대충 아는 듯.
직접 가보면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죄다 딱 봐도 가격이 장난 아닐 것 같은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각자의 사진 좀 찍어본 솜씨를 뽐내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하나같이 부용지의 '''네모난 곳의 꼭짓점 부분에 위치한 건물 바로 앞'''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하나같이 절묘한 자세로 찍어대는데 이게 관광객인지 사진작가인지... 참고로 이들이 서 있는 위치가 '''부용정을 가장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위치'''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감으로 어디에서 찍어야 하는지 대충 아는 듯.


[[파일:부용지.jpg]]<br />
[[파일:부용지.jpg]]</br>
특히 가을에 진짜 끝내주는 각도에서 찍힌 사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특히 가을에 진짜 끝내주는 각도에서 찍힌 사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파일:창덕궁야14-06-1-2.jpg|섬네일|창덕궁 후원의 야간 모습.]]
[[파일:창덕궁야14-06-1-2.jpg|섬네일|창덕궁 후원의 야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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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정 (芙蓉亭) ====
==== 부용정 (芙蓉亭) ====
[[파일:부용정2.jpg|500px]]<br />
[[파일:부용정2.jpg|500px]]<br>
부용지에 위치한 정자.
부용지에 위치한 정자.


다른 정자들의 형태와는 차별성을 추구해 한국 정자치곤 가장 화려한 편이지만 최대한 자연 속에 묻혀놓아 주변 경관과의 괴리가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다른 정자들의 형태와는 차별성을 추구해 한국 정자치곤 가장 화려한 편이지만 최대한 자연 속에 묻혀놓아 주변 경관과의 괴리가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수수하지 않고 화려한 디자인이라 자연 경관에 비해 지나치게 튀지도, 너무 묻히지도 않게 딱 적당히 자연 경관에 어울린다. 마치 원래 자연에 있었던 나무나 바위같이 자연스러운 느낌. [[조선 정조|정조]]가 여기서 낚시를 즐겼다는 일화가 전해져온다.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수수하지 않고 화려한 디자인이라 자연 경관에 비해 지나치게 튀지도, 너무 묻히지도 않게 딱 적당히 자연 경관에 어울린다. 마치 원래 자연에 있었던 나무나 바위같이 자연스러운 느낌. [[정조 (조선)|정조]]가 여기서 낚시를 즐겼다는 일화가 전해져온다.


==== 영화당 (暎花堂) ====
==== 영화당 (暎花堂) ====
[[파일:영화당.jpg|500px]]<br />
[[파일:영화당.jpg|500px]]<br>
왕이 친히 과거시험을 주관하던 곳이다. 영화당에선 춘당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여기서 과거 시험을 주관했던 것.
왕이 친히 과거시험을 감시하던 곳이다. 영화당에선 춘당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여기서 과거 시험을 주관했던 것.


참고로 영화당에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 춘당대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뒷쪽의 부용지도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여기서 사진 찍어도 정말 잘 나온다.
참고로 영화당에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 춘당대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뒷쪽의 부용지도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여기서 사진 찍어도 정말 잘 나온다.


==== 춘당대 (春塘臺) ====
==== 춘당대 (春塘臺) ====
[[파일:춘당대.jpg|500px]]<br />
[[파일:춘당대.jpg|500px]]<br>
과거시험을 보던 뜰이다. 문과 시험을 치르러 온 사람들은 여기 앉아서 문과 시험을 치렀으며 무과 시험을 치르러 온 사람들은 여기서 저 멀리 담장 너머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곳까지 활을 쏘는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
과거시험을 보던 뜰이다. 문과 시험을 치르러 온 사람들은 여기 앉아서 문과 시험을 치렀으며 무과 시험을 치르러 온 사람들은 여기서 저 멀리 담장 너머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곳까지 활을 쏘는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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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합루 (宙合樓) ====
==== 주합루 (宙合樓) ====
[[파일:주합루.jpg|500px]]<br />
[[파일:주합루.jpg|500px]]<br>
주합루는 창덕궁의 [[규장각]]이 위치했던 곳으로 왕실 도서관으로 쓰였다.
주합루는 창덕궁의 [[규장각]]이 위치했던 곳으로 왕실 도서관으로 쓰였다.


참고로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서향각(書香閣)이라는 건물로, 왕비가 손수 누에를 치면서 백성들에게 양잠 산업을 장려했다고 한다.<ref>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3qjd&articleno=5306605</ref> 후술하겠지만 왕이 몸소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을 장려했다면, 왕비는 몸소 누에를 치면서 잠업을 장려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조선시대엔 왕들이 왕이라는 위치에서 결코 백성들의 삶에 관심없이 마냥 호의호식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서향각(書香閣)이라는 건물로, 왕비가 손수 누에를 치면서 백성들에게 양잠 산업을 장려했다고 한다.<ref>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3qjd&articleno=5306605</ref> 후술하겠지만 왕이 몸소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을 장려했다면, 왕비는 몸소 누에를 치면서 잠업을 장려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조선시대엔 왕들이 왕이라는 위치에서 결코 백성들의 삶에 관심없이 마냥 호의호식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영춘문 (永春門) ====
[[파일:영춘문.jpg|500px]]<br />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갈 수 있는 관문. 물론 지금은 창경궁 관람을 위해선 추가적으로 요금을 내서 다른 경로로 가야 하기 때문에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 없다. 저 멀리 창경궁 식물원이 보인다.


=== 애련지  ===
=== 애련지  ===
[[파일:애련지.jpg|500px]][[파일:창덕궁 뽕나무.jpg|섬네일|200px|관람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뽕나무.]]<br />
[[파일:애련지.jpg|500px]][[파일:창덕궁 뽕나무.jpg|섬네일|200px|관람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뽕나무.]]<br>
과거 조선시대엔 이 애련정 바로 앞의 연못인 애련지에서 [[연꽃]]을 키웠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조선시대엔 이 애련정 바로 앞의 연못인 애련지에서 [[연꽃]]을 키웠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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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련정 (愛蓮亭) ====
==== 애련정 (愛蓮亭) ====
[[파일:애련정.jpg|500px]]<br />
[[파일:애련정.jpg|500px]]<br>
화려한 부용지에 비교되는 상당히 수수한 연못과 마찬가지로 정자도 굉장히 수수한 편이다. 그러나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음에도 너무 화려해서 자연에 비해서 비교적 튀는 느낌이 있는 부용정에 비해서 더 자연에 파묻히기 때문인지 더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화려한 부용지에 비교되는 상당히 수수한 연못과 마찬가지로 정자도 굉장히 수수한 편이다. 그러나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음에도 너무 화려해서 자연에 비해서 비교적 튀는 느낌이 있는 부용정에 비해서 더 자연에 파묻히기 때문인지 더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 불로문 (不老門) ====
==== 불로문 (不老門) ====
[[파일:창덕궁 불로문.jpg|200px]]<br />
[[파일:창덕궁 불로문.jpg|200px]]<br>
말 그대로 늙지 않는 문. 애련정을 정면에서 보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담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말 그대로 늙지 않는 문. 애련정을 정면에서 보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담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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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두합 (倚斗閤) ====
==== 의두합 (倚斗閤) ====
[[파일:의두합.jpg|500px]]<br />
[[파일:의두합.jpg|500px]]<br>
[[조선 순조|순조]]의 맏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공부하던 곳이다. 효명세자는 어린 나이부터 이미 후원에 여러 건물을 지으며 정치를 구상했다.<ref>http://www.dapsa.kr/blog/?p=1939</ref>
[[순조 (조선)|순조]]의 맏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공부하던 곳이다. 효명세자는 어린 나이부터 이미 후원에 여러 건물을 지으며 정치를 구상했다.<ref>http://www.dapsa.kr/blog/?p=1939</ref>


그 중에서도 공부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인 의두합은 편리함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물이 결코 아니고, '''오직 독서와 사색을 위하여 지어진 건물'''로 그 건축양식은 그야말로 '''기와집 최악의 싸구려 양식.''' 단청을 하지 않아 정말 단촐하고 소박하며, 궁궐 내 유일한 북향건물로 되어 있다(!). 북향건물이 왜 문제가 되냐 하면, 원래 집을 지을 땐 낮에 햇빛이 잘 들게 하기 위해 남향으로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일부러 북향으로 지은 것. 이렇게 하면 겨울에 개춥고 여름에 개덥다.
그 중에서도 공부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인 의두합은 편리함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물이 결코 아니고, '''오직 독서와 사색을 위하여 지어진 건물'''로 그 건축양식은 그야말로 '''기와집 최악의 싸구려 양식.''' 단청을 하지 않아 정말 단촐하고 소박하며, 궁궐 내 유일한 북향건물로 되어 있다(!). 북향건물이 왜 문제가 되냐 하면, 원래 집을 지을 땐 낮에 햇빛이 잘 들게 하기 위해 남향으로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일부러 북향으로 지은 것. 이렇게 하면 겨울에 개춥고 여름에 개덥다.  


이렇게 한 이유는 '''일부러 공부하기 힘든 환경에서 독서를 하면서 더 큰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토록 총명했던 효명세자는 순조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으나 결국 요절하고 만다.
이렇게 한 이유는 '''일부러 공부하기 힘든 환경에서 독서를 하면서 더 큰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토록 총명했던 효명세자는 순조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으나 결국 요절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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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정 (觀纜亭) ====
==== 관람정 (觀纜亭) ====
[[파일:관람정3.jpg|500px]]<br />
[[파일:관람정3.jpg|500px]]<br>
독특하게 지붕이 부채꼴 모양으로 생겼다.
독특하게 지붕이 부채꼴 모양으로 생겼다.  


여담이지만 정자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이 정자 옆에서 관람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굉장히 잘 나온다.
여담이지만 정자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이 정자 옆에서 관람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굉장히 잘 나온다.


==== 존덕정 (尊德亭) ====
==== 존덕정 (尊德亭) ====
[[파일:존덕정.jpg|500px]]<br />
[[파일:존덕정.jpg|500px]]<br>
우리나라의 정원치고는 특이하게도 이중지붕과 이중기둥의 형태이다. 별로 튼튼해보이지도 않은데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몹시 화려하다.
우리나라의 정원치고는 특이하게도 이중지붕과 이중기둥의 형태이다. 별로 튼튼해보이지도 않은데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몹시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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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관람정2.jpg|섬네일|500px|left|존덕정 앞에서 관람지를 찍은 사진.]]{{-}}
[[파일:관람정2.jpg|섬네일|500px|left|존덕정 앞에서 관람지를 찍은 사진.]]{{-}}


[[파일:창덕궁 은행나무.jpg|300px]]<br />
[[파일:창덕궁 은행나무.jpg|300px]]<br>
존덕정 바로 뒤에는 짱 큰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궁궐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25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ref>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6833</ref>
존덕정 바로 뒤에는 짱 큰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궁궐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25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ref>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6833</ref>


==== 승재정 (勝在亭) ====
==== 승재정 (勝在亭) ====
[[파일:승재정.jpg|500px]]<br />
[[파일:승재정.jpg|500px]]<br>
관람지 연못 너머 언덕 위의 숲 속에 위치한 정자.
관람지 연못 너머 언덕 위의 숲 속에 위치한 정자.  


정자 자체의 디자인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언덕 위에 계단까지 쌓고 지어서 상당한 위압감을 준다.
정자 자체의 디자인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언덕 위에 계단까지 쌓고 지어서 상당한 위압감을 준다.


==== 폄우사 (砭愚榭) ====
==== 폄우사 (砭愚榭) ====
[[파일:폄우사.jpg|500px]]<br />
[[파일:폄우사.jpg|500px]]<br>
작은 집같이 생긴 건물.
작은 집같이 생긴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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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암 (逍遙岩) ====
==== 소요암 (逍遙岩) ====
[[파일:옥류천.jpg|500px]]
[[파일:옥류천.jpg|500px]]
[[파일:옥류천 인조 친필.jpg]]<br />
[[파일:옥류천 인조 친필.jpg]]<br>
위 사진의 커다란 바위의 이름은 소요암으로,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하단의 옥류천(玉流川)이라는 글씨는 [[조선 인조|인조]]가 쓴 것이고 상단의 4줄의 시는 [[조선 숙종|숙종]]이 쓴 것이다.
위 사진의 커다란 바위의 이름은 소요암으로,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하단의 옥류천(玉流川)이라는 글씨는 [[인조 (조선)|인조]]가 쓴 것이고 상단의 4줄의 시는 [[숙종 (조선)|숙종]]이 쓴 것이다.


위쪽에 새겨진 숙종의 어제시(御製詩)의 내용은다음과 같다.
위쪽에 새겨진 숙종의 어제시(御製詩)의 내용은다음과 같다.


{{인용문|飛流三百尺, 삼백 척 높이에서 날아 흐르니<br />遙落九天來. 저 멀리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듯.<br />看是白虹起, 바라볼 땐 흰 무지개 일어나더니,<br />?成萬壑雷. 갑자기 온 골짜기 우레 소리 이루었네.<ref>[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gXqaH6icNVNJj6UhzT2oHONNQZuoa6CPRsfYcwK62Wa89IWcOzLoBUUo6Z8SEDWf?nttId=3836&bbsId=BBSMSTR_1006&pageIndex=25&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1_09_02 출처.]</ref>}}
{{인용문|飛流三百尺, 삼백 척 높이에서 날아 흐르니<br>遙落九天來. 저 멀리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듯.<br>看是白虹起, 바라볼 땐 흰 무지개 일어나더니,<br>?成萬壑雷. 갑자기 온 골짜기 우레 소리 이루었네.<ref>[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gXqaH6icNVNJj6UhzT2oHONNQZuoa6CPRsfYcwK62Wa89IWcOzLoBUUo6Z8SEDWf?nttId=3836&bbsId=BBSMSTR_1006&pageIndex=25&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1_09_02 출처.]</ref>}}


==== 태극정 (太極亭) ====
==== 태극정 (太極亭) ====
[[파일:태극정.jpg|500px]]<br />
[[파일:태극정.jpg|500px]]<br>


==== 청의정 (淸義亭) ====
==== 청의정 ====
[[파일:청의정.jpg|500px]]<br />
[[파일:청의정.jpg|500px]]<br>
기와로 지붕을 만든 다른 정자들과는 달리 볏짚으로 지붕을 만들어서 정자보다는 원두막에 가까워보이는 디자인이 특징.
기와로 지붕을 만든 다른 정자들과는 달리 볏짚으로 지붕을 만들어서 정자보다는 원두막에 가까워보이는 디자인이 특징.


뭔 정자가 이렇게 초라하냐고? <s>[[페이크다 이 병신들아]]</s> 겉으로만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밑에 보면 화려한 단청 쩐다.<ref>http://i.imgur.com/nZTDub1.jpg</ref>
뭔 정자가 이렇게 초라하냐고? <s>[[페이크다 이 병신들아]]</s> 겉으로만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밑에 보면 화려한 단청 쩐다.<ref>http://i.imgur.com/nZTDub1.jpg</ref>


하단의 갈아엎어진 흙들은 뭐냐고? 왕이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서 직접 농사를 짓던(!!!) 곳이다. 상술했듯이 왕비가 서향각에서 직접 누에를 쳤다면, 왕은 청의정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
하단의 갈아엎어진 흙들은 뭐냐고? 왕이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서 직접 농사를 짓던(!!!) 곳이다. 상술했듯이 왕비가 서향각에서 직접 누에를 쳤다면, 왕은 청의정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  


참고로 지금도 그 뜻을 이어받아(?) 여기서 농사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창덕궁관리소에서 행사 비슷하게 하는 것.
참고로 지금도 그 뜻을 이어받아(?) 여기서 농사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창덕궁관리소에서 행사 비슷하게 하는 것.


==== 농산정 (籠山亭) ====
==== 농산정 (籠山亭) ====
[[파일:농산정.jpg|500px]]<br />
[[파일:농산정.jpg|500px]]<br>
정자보다는 [[행랑채]]에 가까운 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방 2칸, 마루 2칸, 부엌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r0Q&articleno=15853821</ref>
정자보다는 [[행랑채]]에 가까운 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방 2칸, 마루 2칸, 부엌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r0Q&articleno=15853821</ref>


왕이 신하들과 함께 옥류천에 들러 제례를 베풀 때 음식과 다과 등을 대접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왕이 신하들과 함께 옥류천에 들러 제례를 베풀 때 음식과 다과 등을 대접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조선 정조|정조]]가 옥류천에서 유독 좋아하던 정자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으로 행차할 준비를 할 때, 창덕궁 후원에서 혜경궁이 타고 갈 가마를 메는 연습 등을 한 후 농산정에서 신하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ref>http://dunggu.com/Palace/changdeokgung12.htm</ref>
또 [[정조 (조선)|정조]]가 옥류천에서 유독 좋아하던 정자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으로 행차할 준비를 할 때, 창덕궁 후원에서 혜경궁이 타고 갈 가마를 메는 연습 등을 한 후 농산정에서 신하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ref>http://dunggu.com/Palace/changdeokgung12.htm</ref>


==== 소요정 (逍遙亭) ====
==== 소요정 (逍遙亭) ====
[[파일:소요산.jpg|섬네일|가운데|소요정의 모습]]
[[파일:소요산.jpg|섬네일|가운데|소요정의 모습]]
정사각형의 작고 아담한 정자로, [[1636년]] [[조선 인조|인조]] 때 지어져 처음에는 탄서정(歎逝亭)이라 불리다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여러 왕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1636년]] [[인조 (조선)|인조]] 때 지어져, 처음에는 탄서정(歎逝亭)이라 불리다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여러 왕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인용문2|<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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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은 3백척 나르고,
흐르는 물은 3백척 나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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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이를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온 골짜기에 천둥과 번개를 이룬다
온 골짜기에 천둥과 번개를 이룬다
</poem>|[[조선 숙종|숙종]]이 [[1690년]]에 쓴 오언시}}
</poem>|[[숙종 (조선)|숙종]]이 [[1690년]]에 쓴 오언시}}
{{인용문2|<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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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을 씻은 듯한 청류(淸流)
옥을 씻은 듯한 청류(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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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량<ref>濠梁; 해자와 도랑.</ref>에는 전부터 관어<ref>觀魚; 물고기를 구경한다는 뜻으로, [[장자]]가 물고기가 노니는 즐거움을 노래한 고사.</ref>의 즐거움 있나니
호량<ref>濠梁; 해자와 도랑.</ref>에는 전부터 관어<ref>觀魚; 물고기를 구경한다는 뜻으로, [[장자]]가 물고기가 노니는 즐거움을 노래한 고사.</ref>의 즐거움 있나니
난정<ref>蘭亭; 중국의 유명한 명필가 왕의지가 유상곡수연을 하던 정자이다.</ref>의 술잔에 대신 할만 하도다
난정<ref>蘭亭; 중국의 유명한 명필가 왕의지가 유상곡수연을 하던 정자이다.</ref>의 술잔에 대신 할만 하도다
</poem>|[[조선 정조|정조]]의 시 소요정유상(逍遙亭流觴)}}
</poem>|[[정조 (조선)|정조]]의 시 소요정유상(逍遙亭流觴)}}


==== 기타 ====
==== 기타 ====
[[파일:창덕궁 주목.jpg|500px]]<br />
[[파일:창덕궁 주목.jpg|500px]]<br>
옥류천에서 낙선재로 가는 길목에는 거대한 [[주목]]이 하나 자라고 있는데 그 거대한 규모와 희한할 정도로 삐딱하면서도 곧게 자란 형태는 경이로운 느낌을 준다.
옥류천에서 낙선재로 가는 길목에는 거대한 [[주목]]이 하나 자라고 있는데 그 거대한 규모와 희한할 정도로 삐딱하면서도 곧게 자란 형태는 경이로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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